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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Dec 24. 2020

너는 지금 '너'로 살고 있니?

프롤로그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린다. 이따금 말에서 내려 자신이 달려온 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한다. 말을 쉬게 하려는 것도, 자신이 쉬려는 것도 아니었다. 행여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 봐 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려주는 배려였다. 그리고 영혼이 곁에 왔다 싶으면 그제야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어릴 땐 어른들이 다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는 줄 알았다. 나도 어른이 되면 그렇게 되리라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어른들 또한 줄을 맞추어 피리 소리를 따라가는 멍청한 쥐들이었다.



나는 선천적으로 대열 이탈이 잦은 불량 쥐였다. 피리 소리가 가까이 들리기 전까진, 떼를 써서라도 먹고 싶은 과자를 입에 넣고야 마는 아이였다. 한 손은 아빠를 다른 한 손은 엄마를 잡고 공중에 붕 떠서 보는 세상은 예쁘고 쉬웠다. 호기로운 아빠와 너그러운 엄마의 손을 놓고 비로소 두발이 땅에 닿았을 때, 멀리서 피리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학교에 들어가 줄을 서고 열을 맞추는 법을 배웠다. '하고 싶어도 하면 안 되는 일'과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의 가짓수가 점점 늘어갔다. 내가 분방한 천성을 발휘하여 하면 안 되는 일을 하고 싶어서 해 버리거나, 해야만 하는 일을 하기 싫어서 안 해 버렸을 때, 그 대가는 늘 예상보다 가혹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뺏기거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움받는 일을 감수해야 했다. 아무도 아빠처럼 업어 주거나 엄마처럼 안아 주지 않았다.  


피리 소리가 점점 커지며 내 머릿속에는 낯설지만 안전한 질서가 생겼다. 더 이상 좋아하는 것을 뺏기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해 "네."라고 말하며 얌전히 고개를 숙이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오와 열이 정확히 맞춰진 정연한 줄 속에 하나의 점으로 앉아, 최대한 다른 점들과 비슷한 표정을 짓는 연습을 오래도록 했다. 세상이 좋다고 하는 걸 나도 좋아하고, 세상이 싫다고 하는 건 나도 외면했다.


다른 점들과 거의 똑같아진 나는 안전했다. 피리 소리가 들리는 쪽만을 주시했다. 잠깐씩 옆을 보면 모두가 같은 쪽을 보고 있었다. 다행스러웠다. 피리 소리는 우리가 같은 박자에 같은 발을 내딛도록 했다. 가끔 발을 반대로 내밀 땐 차가운 야유가 들려왔다. 똑같은 발과 똑같은 손을 내밀며 똑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사람들은 좀처럼 손을 잡지 않았다. 손을 잡으면 줄에서 낙오될까 두려워했다. 닿지 않은 채 대열의 일부로만 존재하는 삶은 안전하지만 지루했다.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표정으로 최선을 다해 속도를 맞추어 오로지 '뛰기 위해 뛰는' 사람들. 변주 없는 기계음 같은 피리소리가 귀를 찌르고, 찍어낸 것 같은 회색 쥐들의 뒤통수만 눈에 가득했다.


동의할 수 없는 기준으로 상과 벌을 주며 나를 길들이던 학교에서 벗어날 무렵,  호기심 많은 나의 천성은 자주 옆을 보았다. 뛰기를 멈추고 걷기도 했다. 줄에서 튀어나온 사람들. 옆을 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가끔 마주 보고, 속도를 맞췄다. 그러면 그 사람도 나에게 속도를 맞춰 주었다. 손을 잡고 걷고, 때론 함께 대열에서 빠져나왔다. 마주한 눈 속에는 처음 보는 내가 있었다. 그것은 대열 속에선 볼 수 없었던 나의 영혼이었다. 나는 마주한 이의 눈 속에서 반짝이는 내 영혼을 보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마주한 이의 얼굴과 내 얼굴이 가까이 닿으면 닿을수록  나는 내가 누구인지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우리는 입을 맞춰 서로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말해 주었다.


*왼쪽 이미지 출처: 영화 '비포 선라이즈'


우리는 투시력을 가진 외계의 존재들처럼, 열 맞춰 뛰느라 딱딱해진 몸속에 숨은 말랑말랑한 서로의 영혼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꺼내어 서로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우리는 각자의 영혼을, 서로의 영혼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서로의 영혼은 각각 다른 생김을 하고 있었고, 아무리 솜씨가 좋은 조각가도 모조품을 만들 수 없을 정도로 굴곡이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우리는 다시 대열의 일부가 될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다르게 생겨도, 아니 다르게 생겼기 때문에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뛰기를 멈추면 할 수 있는 것이 많았다. 우리는 손을 잡고 해변에 누워 노을을 보았고, 발가벗고 풀냄새가 알싸한 숲에서 뒹굴었다. 대열의 밖에는 다른 영혼으로 다른 사랑을 하는 마주 보는 쌍들이 수없이 많았다. 이따금씩 그이들과 따스한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다시 세상은 아름다워지고, 쉬워졌다. 나는 옷을 입지 않은 채, 사랑하는 이의 팔을 베고 달콤한 오수 속에 꿈꾸기를 즐겼다. 우리는 더 이상 같은 목적지를 향해 앞만 보고 가야 한다는 거짓말을 믿지 않았다. 우리는 어디로 갈 필요가 없는 존재들이었다. 우리는 분방한 천성을 지키며 이곳에 즐거이 머물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늙은 수 없는 노인이 되었을 때  영혼만을 손에 쥔 채, 이 세상의 나무와는 전혀 다른 색깔의 나무가 자라는 세상으로 옮겨갈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눈 속에서 발견한 내 영혼을 내 속에서 꺼내어 깨끗이 씻었다. 허욕과 두려움의 더께가 어느 정도 씻겨 형체가 드러난 내 영혼을 소중히 끌어 안아 구석구석 들여다보았다.


 브런치는 그렇게 들여다본  영혼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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