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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Sep 13. 2018

악필, 하지만 마음이 보여요

우리 학과의 T.A는 담당 수업의 출결을 주로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아직 학부 학생들의 얼굴을 잘 모르고, 어색하기 때문에 이전 결석자의 이름을 칠판에 썼는데... 참 글씨를 못 쓴다는 생각을 했다. 뭔가 학생들이 내 글씨를 보면서 '정말 악필이네...' 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교실을 나오고 부끄러워졌다.


그러고 보니, 연필을 들고 본격적으로 글이란 것을 쓴지가 참 오래됐다는 생각을 했다. 어렸을 때는 잘 깎이는 연필 깎이를 모셔두고, 연필 깎을 때의 드르륵- 하는 소리를 경쾌하게 여기곤 했었다. 엄마가 손수 칼로 깎아주는 연필의 정교함을 내심 신기해하기도 했었다. 문방구에서도 일제 샤프와 국산 샤프를 두고 어떤 것이 글씨가 잘 써지는 지 고민을 하곤 했었는데 - 


연필 잡은지가 오래됐다. 모든 일상 생활은 다 마우스와 키보드이다. 사소한 메모도 윈도우에 있는 메모장을 켜놓고, 원노트에 자주 정리를 한다. 필통은 어느새 '필요없는 통'이 되버려서 가끔 쓸 때 필요한 펜만 간단하게 가방에 넣어놓는다. 오히려 급하게 쓸 때면 이제 아이패드와 펜 기기를 사용한다. 머지않아, 샤프와 연필을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는 물건이 되지 않을까? 오늘날 할머니들이 아이들에게 옛날에는 다리미 대신 인두를 썼다고 회상하듯 얘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컴퓨터가 입력하는 글씨체와 사람이 입력하는 글씨가 어떻게 같을 수 있을까. 사랑을 꾹꾹 눌러담아 뒷장에까지 자국이 남은 것을 보며 어렴풋이 미소짓는 순간이, 컴퓨터를 통해 온 이메일과 같을 수 있을까. 


아, 역시 연필과 종이는 없어지면 안되겠다. 아니 없어지게 하면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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