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일기] 1. 또 나를 살리고

『살리고 살리고』이나래, 향출판사, 2024

by 홍열매

누구에게나 연말, 연시는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게 한다. 나를 기쁘게 한 것, 나를 슬프게 한 것, 분노하게 한 것, 행복하게 한 것. 수많은 것들이 길게 늘어선 필름처럼 지나가기도 하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흐릿한 점처럼 남아있기도 하다. 2025년을 나는 잘 살았다. 1년간 스쳐간 많은 사건들보다 나에겐 그 사실 하나가 중요했다. 왜 사는가, 어떻게 사는가에 집착하며 방황해 온 시간이 꽤 길기에 2025년 한 해 동안 사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들지 않는 게 중요했다.

그다음 건너온 생각은 왜였을까, 였다. 나는 살리고 또 살려낸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나래 작가의 『살리고 살리고』그림책을 넘겨보며 입가에 퍼지는 미소를 멈추지 못했다. 무심코 던져진 공 하나, 땅에 떨어질 듯 한 공은 계속 무언가에 의해서 죽지 않고 살아난다. 이젠 끝났겠다, 싶은 순간에도 예상하지 못한 누군가에 의해 또 한 번 공은 새롭게 살아난다.

올해 나에게도 예상하지 못한 누군가가 있었다. 바로 '야구 친구'. 야구가 너무 좋은데,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롯데 자이언츠가 너무 좋은데 이걸 같이 좋아해 주는 친구가 없었다. 그래서 야구 이야기가 너무 하고 싶을 때마다 나는 오픈 채팅방이라는 곳에 들어갔었다. 거기서 있었던 모든 사연을 말하자면 길지만, 현재 나에게는 단단한 9명의 야구친구가 있다. 남편은 온라인에서 친구를 사귄다며 핀잔을 줬지만 이 채팅방의 사람들은 2025년의 나를 살리고 또 살려준 사람들이다. 한 팀의 최고의 순간과 절망의 순간을 함께하며 울고 밤새 이야기한 시간들은 그저 단순한 놀이에 그치지 않았다. 살고 싶다는 감각은 거창한 이유에서 오지 않는다. 다음 경기를 함께 기다릴 사람이 있다는 것, 이기면 같이 웃고 지면 같이 욕할 수 있다는 것. "내일도 같이 야구 봐요"라는 그 단순한 약속들이 나를 하루 더 살게 했다.

『살리고 살리고』 속 공처럼, 우린 늘 땅에 떨어질 듯한 순간들을 지나온다. 당시에는 잘 모르지만 돌이켜 보면 그때마다 누군가가 무심히, 그러나 분명히 우리를 다시 쳐 올렸다. 2025년의 나는 야구 친구들로 인해 꺼질듯한 마음 속에서도 다시 올라왔고, 지독히 외로운 타지생활 안에서 다음 날을 기다리는 즐거움을 알았다. 살리고, 또 살렸던 둥근 사람들. 그들 덕에 나의 2025년은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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