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키우기,《이웃집 식물 상담소》
아마도 아이들이 어린이집이란 곳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주기적으로 집에 작은 식물이 집에 찾아왔다. 제법 그럴싸한 화분에 담겨올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빈약해보는 일회용 테이크아웃 커피컵에 식물이 담겨 집으로 온다. 사실 식물이라 말하기도 뭐 한.. 씨앗이 심어진 상태로 오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는 기관에서 배운 대로 집안을 돌아다니며 식물의 자리를 찾는다.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을 찾아 하루에도 몇 번씩 자리를 옮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스프레이로 토양을 촉촉하게 젖혀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고요한 토양 표면에 아이는 물을 뿌려대면 늘 궁금해한다. 정말 자랄까? 호기심 많은 둘째 아이는 종종 흙을 파서 속을 들여다보고 싶어 했다. 어떤 게 맞는 교육법인지는 모르겠으나, 남의 방문을 함부로 여는 게 아니라는 비유를 늘 대면서 나는 흙을 걷어내 보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며칠을 기다리면 초록색의 귀여운 이파리가 뿅 하고 나타나 났다. 며칠 간 해오던 아침 패턴대로 스프레이를 들고 식물에게 다가갔던 아이는 탄성을 지른다.
“엄마!!! 싹이 났어!!!” 기다림 끝에 만나는 초록이에 아이는 더할 나위 없이 기뻐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우리 집에 왔던 식물들 중 현재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렵게 중력을 거슬러 땅을 뚫고 나왔던 초록이들은 모두 다시 땅속으로 돌아갔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나름의 정성을 다해 키우는 데도 늘 꽃을 피운다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고 끝이 났다. 한 잎, 두 잎 시들기 시작하다 이내 큰 줄기마저 꺾여버렸다. 그렇게 떠날 때마다 아이는 슬퍼했다. 그리고 때로는 그 슬픔을 달래주는 것이 내 몫이 되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들이 집에 식물을 들고 오는 게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결말을 뻔히 아는데, 그냥 가져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지배적이었다. 무언가를 키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아이들이 할 때마다 매번 시체가 되어 떠나는 초록이들을 들먹이며 생명을 키우는 거란, 쉽지 않은 거라고 아이들에게 설교를 해댔다.
아이들에게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심 마음속으로는 늘 식집사들을 부러워했다. 코로나 이후로 집에서 무언가를 키우는 게 유행처럼 번지며 더욱 그랬던 거 같다. 지인이 집에서 민트와 로즈메리를 키워서 음식에 올려놓는다고 이야기해 주자, 늘 실패하는 우리의 식물 키우기 일대기를 들려주었다. 지인은 나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이웃집 식물 상담소》책을 건네주었다. 책의 내용보다는 책의 저자인 신혜우 박사의 매력이 크다는 첨언과 함께. 어쩜 이렇게 매력적인 제목을 지었을까, 하며 책을 받았다.
식물 상담소라길래 당연히 식물에 대한 식집사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식물을 통해서 보는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중 우리 집에서 초록이들과 오랜 시간 함께하지 못한 이유를 찾았다.
"사랑한다면 사랑을 줄여보세요"
듬뿍 주세요, 아낌없이 표현하세요. 도 아닌 줄여보라니. 한 줄의 제목만 보고도 아차 싶었다. 그리고 해당 제옷을두고 있는 챕터의 첫 문장을 보자마자 마시고 있던 차를 뿜었다.
"간혹 분무기로 잎에 물을 뿌려 식물에 물을 주려는 초보 식집사(식물을 키우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가 있다. 그런데 그건 식물이 물을 흡수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중략...) 분무기로 잎에 물을 뿌리면 뿌리는 사람이야 촉촉하고 상쾌한 기분이 들겠지만 식물에 정말 물을 주려면 뿌리에 줘야 한다."
아침마다 분무기를 찾아 초록이들에게 다가가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라 입에 머금고 있던 따듯한 차를 주르륵 흘리고 말았다. 맞다. 아이들은 집에 새롭게 오는 초록이들을 너무 사랑했다. 그래서 넘치게 주고 싶어 했다. 정말 식물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우리는 한 번도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찾아보지 않았다. 그저 식물은 햇빛을 좋아하지, 물을 좋아하지.라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그렇게 했다. 사랑하는 마음과 기대만으로는 제대로 자랄 수 없다는 걸 뒤늦게야 깨달았다. 그녀는 "상대를 알기 전 상대에게 내가 아는 얕은 지식으로 다가가는 행동"을 언급하며 강렬하게 마무리한다.
"상대"라는 대상을 인간관계로만 볼 것이 아니라 식물과 여러 살림의 대상으로 보자 내 삶에 대한 시야가 넓혀지는 기분이 들었다. 가득 사온 식재료를 정리하고 보관할 때 나는 식재료가 어떠한 환경에서 오래 유지될 수 있는지 알아본 적이 잘 없었다. 나중에 우연히 유튜브나 TV 프로그램에서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아차, 싶을 때가 많았다. 무언가를 대할 때 항상 나만의 얕은 관심과 지식이 아닌,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자세가 있다면 후회하고 아쉬울 일이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다소 귀찮다고 느껴질 테지만 그런 사소한 관심 하나가 더 큰 열매를 맺게 해 준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책을 보다 가장 놀란 부분은 그림이었다. 식물 그림이 예뻐서 액자가 있다면 집에 걸어두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데 책 표지부터 그 안의 그림이 모두 작가인 신혜우 작가가 직접 그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느 무언가를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 보고 세밀하게 그릴 수 있을 정도의 관심. 나는 무엇을 세밀하게 그릴 수 있을까. 그게 내 마음이라면 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