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일기] 2. 이름 없는 돌봄

『할아버지 천사』,유타 바우어, 비룡소, 2002

by 홍열매

부산에 와서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내가 내 발로 직접 교회에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모태신앙이다. 엄마 아빠가 예배당 강단 위에 나를 안고 올라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목사님이 내 머리맡에 손을 얹고 기도해주고 있는 사진을 본 적 있다. 그 사진 아래께에는 하얀 글씨로 '유아세례기념'이라고 적혀있었다.

나는 교회에서 자랐다. 신앙심이 깊어서가 아니라, 집안 형편이 좋지 못해서였다. 아마도 둘째까지 유치원에 보낼 형편이 되지 않았던 엄마는 나를 선교원에 보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름만 선교원이지, 그냥 교회에 맡겨진 거였다. 빛 한점들지 않던, 아주 작은 문을 통과해서 들어간 창고 같은 공간에서 나는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볕이 좋으면 교회의 작은 앞마당에서 철쭉꽃을 따거나 분꽃을 따며 소꿉놀이를 했다. 어설프게 발라져 있는 시멘트 바닥에는 분필로 그림을 그려 땅따먹기도 열심히 했다.

누군가는 측은하게도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나에게는 그렇지 않다. 나는 선교원에서 꽤 잘 자랐다. 주기도문을 외우는 미션으로 한글을 뗐고, 바쁜 부모를 대신해서 나를 무릎에 앉혀 예뻐해 주는 권사님이 계셨다. 일과를 마치면 봉고로 집까지 데려다주던 집사님은 우리 동네 마을버스 기사님이시기도 했는데, 그분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마을버스를 타고 학교를 갈 때 차비 100원을 받지 않으셨다. 누가 보면 안 되니까 집사님은 꼭 내게 윙크를 하시며 그냥 타라는 고갯짓을 해주셨다. 그럼 나는 그 100원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떡꼬치나, 아폴로 같은 불량식품을 사 먹었다.

나는 성인이 되며 여러 이유로 교회를 멀리 떠나고, 이 많은 것들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 그림책 전문가 과정을 배우다 만나게 된 『할아버지 천사』를 읽고 몇 날 며칠을 울었는지 모르겠다. 손자에게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의 모든 순간순간에는 보이지 않는 천사가 있었다.

딱 어느 한 사람이 떠올라서 라기보다는 현재 내가 책을 읽고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고 있는 이 삶이 온전히 나 스스로가 잘 살아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것 같은 그 묘한 감정 때문이었다.

그러다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우연이라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악기를 하는 아이 덕분에 약 20년 만에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때부터 잃어버린 퍼즐을 찾은 것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이 기억이 났다. 길을 가다가도, 책을 보다가도, 계속 교회에서 받았던 어린 시절의 돌봄이 내 곁을 맴돌았다. 까맣게 잊었던 많은 교회 사람들과의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지금 내가 누리고 사는 많은 것들을 나는 운과 복이라는 표현을 써왔다.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나만의 운과 복은 없었다. 할아버지 천사처럼, 내게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절망에 빠질 수도 있었던 가정형편이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돌봄으로 나는 엇나가지 않고 제법 꿋꿋한 청소년기도 보냈다. 그 모든 순간들이 그림책 속의 천사처럼 날개를 달고 나타난 적은 없었지만 내가 넘어질 때마다 아주 사소한 방식으로 나를 받쳐주었다.

그림책 속의 할아버지는 "난 정말 운이 좋았단다."라고 마지막 말을 남긴다. 할아버지 말하는 '운'도 아마 나와 비슷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운과 복이라고 부르던 것들 사이에는 늘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들 사이에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의지가 있었다. 나는 이제 그것을 함부로 혼자 가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도 이 할아버지처럼, 훗날 손자에게 명명할 수 없었던 많은 돌봄들을 들려주며 참 아름다운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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