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 2

by 그런인생

나는 캐나다에서 20년이 조금 넘게 일했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은 항공 우주회사였다. 당시에는 전통적인 엔지니어링 분야에서는 소프트웨어 전공자가 그렇게 대접을 받지는 못했다. "회로 디자인에 문제가 있음 그냥 펌웨어 (칩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에서 때워"라는 말을 자주 들었고 전자나 기계 엔지니어들은 프로그래머들을 자주 폄하하기도 했었다. 대학에서 컴퓨터를 배운 졸업생들이 제일 희망하는 회사는 주로 컨설팅 회사나 IBM, Microsoft였다. 나는 직장을 잡으려면 필수라는 코업도 하지 않았었고 특출 나게 실력이 좋은 것도 아니어서 그냥 되는 대로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었는데, 어쩌다 운 좋게 우주에서 사용하는 로봇 팔 Canadarm을 NASA에 납품하는 회사에 입사했다. 여기서 7년을 버티다 다른 곳으로 이직했고 지금까지 내가 다닌 회사는 여덟 군데다. 여기저기 떠돌며 느낀 건 꼭 복지나 급여가 좋은 회사가 오래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트위터에 들어가 보니 여기는 예전 다니던 회사들에 비해 돈을 태우는 스케일이 달랐다.


입사해서 오리엔테이션에서 제일 먼저 들은 얘기는 여러 종류의 보조금이 나오니 해당되는 건 모두 신청해서 타먹으라는 것이었다. 우선 일하는 데 필요한 걸 사라고 "재택근무 지원금"이 나왔다. 휴대폰과 인터넷 요금도 비용처리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매년 "건강관리 보조금"이 나오는데 혹시 운동하기를 싫어해서 그 돈을 안 쓰는 사람이 있을까 봐 안내문에 친절하게 애플워치도 비용처리를 할 수 있다고 쓰여 있었다.


휴가는 무제한이었다. 직원의 생일날은 개인 휴일이다. 게다가 창업자인 잭 도시가 코로나가 터지고 난 후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며 Personal Day of Rest라고 매달 첫째 월요일을 회사 휴일로 정했다. 물론 그 외에도 아프기라도 하면 하루 이틀쯤은 언제든지 쉴 수 있다. 직원들이 자기 회사를 리뷰하는 사이트들을 가면 트위터는 WLB (work-life balance, 워라밸) 이 뛰어나다는 게 장점이고, 단점은 뭐 하나 제대로 일이 마무리되는 게 없다고 쓰여 있었다. 돈 많이 주고 일 조금 준다니 이런 좋은 데가 어디 있겠는가.


물정 모르는 사람들은 역시 IT 인재들은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창의력과 천재성을 마음껏 발휘하는구나 하고 생각한다. 유튜브나 페이스북을 보면 미국은 인재를 이렇게 대우하는데 우리는 아직 멀었다고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이 많았다. 서울 안 가본 놈이 이긴다는 말처럼 어디 방구석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소셜미디어에 빅테크를 칭송하면서 최고의 인재들이 모인 곳이니만큼 창의성을 펼칠 수 있도록 모두 자율에 맡기고 돈을 퍼부어 주면 훌륭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떠드는데 난 그걸 보고 역시 한국은 아는 척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걸 느꼈다.


사실 개발자들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하는 건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1993년에도 마이크로소프트 임원이 직원들에게 쓰는 돈을 좀 절제하자고 메모를 돌리기도 했었다. 꼭 테크 쪽만 그런 것도 아니다. 금융계를 보더라도 상위 티어 투자은행 같은 곳에서 일하게 된다면 거만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러나 과한 연봉이나 복지는 다음 세 가지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내 경험으로는 물정 모르는 신입이 처음부터 돈맛을 알게 되면 "아, 회사가 나에게 거는 기대가 크구나, 그럼 난 열심히 일해야지" 이렇게 생각하기보단 "와, 난 진짜 대단한 사람이구나, 중소기업에 다니는 돌대가리들보다 난 확실히 나은 인간이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주니어 개발자의 경우 작은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큰 회사의 직원들보다 나은 경우가 많다. 실전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어디에 취직이 되는가는 그때그때의 상황과 운이 실력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직원 5만 명이 있는 회사서 연 15만 불 버는 영희가 보기에는 직원 20명짜리 회사에서 연 8만 불 버는 철수가 가소로워 보이기 마련이다. 평생 좋은 회사만 다닌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사람 사는 게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다. 이런 선입견을 방지하려면 콘퍼런스나 밋업 등을 통해서 외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실력을 계속 연마하는게 중요하다.


앉으면 눕고 싶은 게 사람 본성이라 한 달에 이틀 쉬게 해 주면 삼일 쉬고 싶어 하고 아침 열 시까지 출근하라 하면 열한 시에 가고 싶어 한다. 업계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이나 일을 너무 좋아하는 직원들은 몰라도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다 그렇다. 워라밸 좋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일이 없다는 소리다. 일이 없다는 소리는 뭐냐면 조만간 누가 잘릴 거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그렇게 탱자탱자 노는 직원들일수록 이 하와이 라이프가 평생 갈 거라고 착각을 했다. "Rest and Vest" (놀면서 주식이나 받자)라는 말이 트위터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트위터는 연봉이나 복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회의가 너무 많았고, 일이 진척되는 속도가 다른 대기업에 비교해 봐도 두세 배 정도 느렸다. 만일 프로젝트가 실패하더라도 그냥 묻어버리고 자화자찬하는 경우가 잦았다. 누가 보더라도 망한 프로젝트도 '개념적 성공' 혹은 '후기 프로젝트를 위한 탄탄한 디딤돌' 이딴 미사여구를 붙여서 성공으로 포장했다. 부서마다 다르겠지만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일을 하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업무량이 널널했다. 매니저에게 일 좀 더 달라고 몇 번 얘기했지만 그렇다고 더 바빠진 적은 없었다. 아마 딴 데도 마찬가지니까 인스타니 틱톡에 "빅테크에 다니는 나의 하루" 이딴 브이로그들을 만들어 올리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놀면서 자리를 보전하고 게다가 월급까지 올려 받으려니 자연스럽게 정치질이 난무했다. 부서장들은 자기 세력을 넓히려고 경쟁적으로 사람들을 뽑아댔고 일보다 사람이 많으니 한가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전 동료들과 이야기해 보면 구글이니 페이스북이니 아마존이니 다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비슷한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지금 빅테크들이 다들 직원들 모가지 치느라 바쁜데 그 이면에는 쓸데없이 사람들을 뽑아댄 과거가 있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다. 어떤 사람은 "야, 대기업은 다 그래"라고 말할지 모른다. 사실 그렇다. 하지만 비능률적이라도 자기 힘으로 흑자를 내는 기업에서는 그게 어느 정도 용인되지만 만년 투자자들 등골이나 빼먹으면서 그 돈으로 흥청망청 하는 건 문제가 있다. 트위터, 위워크, 다 호구 같은 투자자들 가지고 국 끓여 먹으려던 회사들이다. 자기 돈이었으면 절대 직원이 노는 꼴을 용납하지 못한다. 워라밸 강조하는 회사는 일단 의심하는 게 장기적으로 이롭다. 연봉이 높고 복지가 좋은 회사가 오래가려면 인사고과 과정이 투명해야 하고 저성과자는 빨리빨리 내보내야 한다. 그런 쪽으로 정평이 나 있던 애플이나 넷플릭스는 비교적 적은 수를 감원하고도 아직까지 별 문제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는 구글도 직원 복지를 축소한다고 한다. 아마존은 원래부터 그런 거 별로 없었지만 그나마 주식으로 직원들 돈 샤워를 시켜주었으나 이제 그것도 앞으로는 신통찮아 보인다. 페이스북도 한창 감원 중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Leetcode 좀 공부하고 빅테크에 입사하던 트렌드는 좀 시들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다음에는 이 Leetcode 이야기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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