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와 절망은 내 운명이었어요. 문학은 슬픔의 축적이지, 즐거움의 축적은 아니거든요. 젊은 날 나는 무의식적으로, 충동적으로, 비명(悲鳴)처럼 시를 써왔어요. 세상이 따뜻하고 정상적으로 보이면 시를 못 쓰게 되지요. 그건 보통 사람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니까요. 이제는 시를 의식적으로 씁니다. 그럴 나이가 됐어요. 나도 살아가야 하니까요."
...
―우리 시대와 사회가 시인에게 상처를 준 것일까요? 오늘 찾아온 것은 사실 이 때문입니다.
"그건 틀린 말입니다. 자기 삶을 사회나 남에게 전가할 수는 없어요. 괜히 '우리 시대가 저 친구를 버려놓은 것이 아닌가' 말하는데, 이는 내가 선택한 삶이었어요. 나 혼자 겉돌았고 그런 공부를 했고 병원에 들어가 있었을 뿐입니다."
내가 국민학교 6학년이었던 1988년에는 맥도널드가 서울 압구정에 막 상륙했었고, 서울 올림픽이 치러졌었고, MBC 뉴스데스크에 어떤 사람이 갑자기 나와서 자기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며 소리쳤었고, 범죄자들이 TV 카메라 앞에서 사람을 인질로 잡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외쳤다. 예전 대통령이 짐을 싸서 산속 절에 들어가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보다 훨씬 사소했던 일들이 기억에 생생하다. 일요일 저녁 오락실에서 집으로 돌아올때 아파트 사이로 비추던 눈부신 석양, 봄에 은은하게 퍼지던 매캐한 최루탄 냄새, 내 뒤의 아이가 커터칼로 내 손등을 그었을 때 보이던 나의 하얀 관절, 뭐 이런 잡다한 것들. 자아라는 건 이러한 잡다한 기억들이 퇴적되어 쌓인 쓰레기 더미 같은 게 아닐까. 시간이 지나면서 이 기억의 덩어리는 원래와는 다른 형태를 가지게 되지만 사람들은 변질된 외양이 원래의 모습인 줄로 착각하곤 한다. 내가 아는 한 기억을 보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 이상 기억이 부패하기 전에 글자를 사용하여 냉동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기록을 우습게 안다. 오래된 노트나 편지는 손쉽게 재활용 대상이 된다. 용량이 모자라다고 지난 몇년간의 이메일이 들어있는 폴더를 냉큼 지운다. 과거는 그때그때 편한 대로 머릿속에서 대충 만들어낸다. 그땐 그랬었지 하고. 그러면서도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정성들여 우기면 그것은 역사가 되고 사실이 된다. 학생 때 같은 반 아이와 논쟁이 붙은 적이 있었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은 K2라는 것이었다. 에베레스트가 최고봉이라는 건 옛날 이야기라고 나에게 으스대며 말했다. 나는 "세계 최고로 높은 산 에베레스트"라는 신문기사를 보여주었다. 그는 이건 기자가 요새 뉴스를 잘 안 봐서 그렇다고 했다. 대백과사전을 가져다 들이대니 이건 일 년 전에 나온 거라 이젠 틀렸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어디서 들었는데 외국에서 K2가 제일 높다고 인정했고, 나는 아직도 낡은 지식에 매여있다며 날 비웃었다. 그는 기록보다 자기가 '어디서 들은 말' 을 훨씬 더 신뢰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그를 나중에 마주쳤을 때 나는 "아직도 K2 가 높대?" 하고 빈정거렸지만 그는 겸연쩍게 웃으면서도 절대로 자기가 틀렸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현재 근황을 찾아보니 대형 법무법인에서 암호화폐인가 뭔가를 전문으로 다루는 변호사로 맹활약하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보았다. 뭐든 우기기 잘했던 그는 진로 하나는 탁월하게 선택했던 것이었다.
나는 어릴 적 사소한 과거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 후 나는 편지 한 장, 이메일 한통마다 병적으로 저장하고 색인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는 몇년의 간격을 두고 같은 걸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왜냐면 시간이 지날 때마다 사람들의 대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거짓말을 했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너 대학 때 만나던 여자 어떻게 됐다 그랬지?"
"걔 미국으로 유학가는 바람에 헤어졌지."
오 년 후에 똑같은 질문을 하면,
"유학가고 나서 나도 다른 애 만나게 되서 헤어졌지"
삼 년 후에 다시 그 이야기가 나오면,
"미국에 갔는데 걔가 약속장소에 나오질 않았더라고, 그래서 만나지도 못하고 왔어"
그리고 세상은 생각보다 빨리 변한다. 이를테면 80년대 사람들의 어투는 지금과 확연히 달랐다. 전투적인 말투를 구사했던 그때의 청년들에 비하면 현재의 20대는 말끝을 많이 흐린다. 구타는 당연한 것이었고, 표절도 역시 그랬다. 중학생이 화장을 하고 파마를 한다는 것은 퇴학 감이었다. 불과 지난 이십여 년 동안 이 모든 것이 바뀌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마치 옛날부터 항상 이랬던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내게는 약간 기괴하다.
나는 그래서 아주 사소한 이야기들을 아주 길게 하려고 한다.
내가 나의 옛날 기억을 글로 쓸 것이라고 주위에 통보했을 때 자신의 과거가 알려질까 우려한 사람들도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과거는 표백하고 기워야 할 빨랫감이기 때문이다. 맨 정신으로 자신의 과거를 정직하게 말하는 한국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상기시키면 무언가 약점을 잡혔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거나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일수록 그렇다. 별 하자가 없는 맹맹한 이야기들도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할 비밀이라고 다들 생각한다. 캐나다에서 만난 사람들이 처음 본 사람 앞에서 이혼이나 입양 등의 자기 과거사를 줄줄 읊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예전 나의 직장상사는 점심식사 테이블에서 팀원들에게 자기가 한때 코카인에 빠졌을 때 이야기를 해 주기도 했었지만 그 사람은 내가 만났던 상관들 중 가장 훌륭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우리가 불과 십수 년 전의 과거도 틀리게 기억하는 원인은 과거를 심하게 미화하거나 은폐하려는 습성도 한몫하는 것이 아닐까.
고 이규태 선생은 이를 한국인의 자기 은폐 습성이라고 불렀다.
"이처럼 우리 한국인은 대체로 본심을 숨기는 은폐 의식이 강하며, 이 적정한 은폐를 해야만이 인간관계를 모나지 않고 원활하게 유지시킬 수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 한국인은 은폐돼 있어야 할 자신의 본심을 적나라하게 노출한다는 것은 인간관계 효율상 마이너스이기에 부정을 하더라도 긍정을 선행시킴으로써 본심을 애매하게 흐리는 표현방식이 크게 발달했다... "
(한국인의 의식구조 1권, 이규태 저)
그리고 지금 듣기에는 매우 기묘한 한마디를 남기신다.
미 8군에 교체해 오는 미군 장병의 현지 적응교육 가운데 '한국 아가씨의 노는 예스'라고 가르친다던데 일리가 있는 관찰이 아닐 수가 없다"
(한국인의 의식구조 1권, 이규태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