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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런인생 Sep 19. 2022

국민학교 6학년

1988년

6학년이 되어서 새 교실에 들어가던 우리들을 보고 다른 반 아이들은 불쌍한 놈들이라며 혀를 차며 비웃었다.


그게 무슨 뜻이었는지는 30분쯤 후에 알게 되었다.  신경질을 평소에 많이 부리는 듯 미간에 세로로 깊은 주름이 파여 있던 담임은 들어오자마자 눈치 없이 떠들고 있던 아이들을 교단 앞으로 불러낸 뒤 테이프가 칭칭 감긴 막대기로 힘껏 후려쳤다.  그러고 나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새 담임 선생님이 누구실까 잔뜩 기대하던 아이들은 일순에 얼어붙었다.


담임은 때리는 것을 좋아했다.  6학년 내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아이들에게 담임의 몽둥이나 손바닥이 날아들곤 했다. 남자건 여자건 가리지 않았다.  어떤 아이들에게는 쓰러뜨린 뒤에 발길질도 예사였다.  운동장에서는 자신의 그림자를 밟고 있다고 한 아이의 뺨을 때린 적도 있었다.  그는 나이 들고 고지식한 선생도 아니었다. 그때 그는 20대 후반에 불과했다.  도덕 시간에는 교과서는 던져 버리고 대신 자기가 좋아하는 소크라테스를 어린아이들에게 일 년 내내 강의했다.  그 내용을 이해하는 아이들은 몇 없었지만 아이들은 한 시간에 네다섯 페이지씩 필기를 해야 했고 게을리하는 눈치가 보이면 매타작이 이어졌다.  그는 철학을 사랑하는 깡패, 뭐 그런 이미지였다.  하긴 조폭들이 있어 보이려고 개똥철학을 좋아하는 건 흔한 일이다.  그딴 놈이 좋아하는 소크라테스도 제대로 된 놈일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나서기 좋아하는 친구 하나가 선생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동성연애를 했다는데 사실입니까 했다가 쌍욕을 먹기도 했다.  


당시 우리 지역구는 서초 을이었고, 87년 대선 이듬해인 88년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는데, 마침 우리 반에는 기호 3번, 평민당 후보 정모 씨의 딸 A 가 있었다.  담임은 방송부 감독도 겸하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 방송조회 말미에 담임은 우리 반 반장 - 어린이 회장이기도 했다 - 를 시켜서 "우리 서초 국민학교 학생들은 우리 친구의 아버지인 정 후보가 당선되도록 부모님께 말씀드려봅시다"라고 느닷없이 순서에도 없는 방송을 했다.  반장이 그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말하는 동안 카메라는 줄곧 "기호 3번 정**"라고 인쇄된 홍보물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힐끗 A를 보았다.  그녀는 책상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뭔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내방송이 끝난 뒤 얼마 후 교실 복도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교감이 달려와서 담임과 반장을 문책하는 것 같았다.  평생 어른한테 꾸중 한번 들어본 적 없이 보였던 반장은 울상이 되어 있었고, 담임은 "괜찮아 우린 잘못한 게 없어" 라며 반장을 다독였다.  담임의 생각으로는 기호 3번이 당선되면 물정 모르는 교감은 쫓겨날 것이고 미래를 미리 내다보았던 자신은 곧 정 의원님과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운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정 후보는 평민당의 부대변인이기도 했지만 당선은 김영삼의 심복 김덕룡의 것이었다.  그는 민정당의 이동복 후보에도 밀려 3위에 그쳤다.  얼마 후 학교 뒤 희나리라는 주점에서 정 후보와 금전문제로 다투던 그의 지인이 보좌관에게 급소를 맞고 죽는 불상사도 일어났다.  당시 아버지는 고등학교 선배인 이동복을 찍었지만 그가 낙선한 것에 대해 크게 아쉬워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본인은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신 것 같았다.  우리는 김덕룡이 준 수건과 담요를 그 후 몇 년 동안 요긴하게 썼다.


A는 키도 크고 미인이었는데, 나는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다른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친구 중 하나는 대학 졸업 후 어쩌다 연락이 닿아 만나게 되었는데, 꽃 한 송이를 들고 오더니 자신이 다니는 하나님의 교회란 곳을 가보지 않겠냐고 그랬다고 한다. 하지만 친구는 가지 않았다.  세상에는 미모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


88년도의 서초동은 큰 부자들이 사는 동네가 아니었다.  그냥 강남의 그저 그런 동네였다.  그중에서도 서초동 꽃마을에 사는 아이들은 낡은 가로 줄무늬 셔츠를 입고 얼굴은 검었으며 도시락 반찬은 항상 보잘것없었다.  그 동네 사는 친구의 집에 한번 놀러 간 적이 있었다.  한낮인데도 집은 어두웠다.  반지하에 사는 친구는 이불을 덮고 있던 어머니에게 나를 소개했다.  어머니가 병이 있으시다고 했던 것 같다.  딱히 별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여기는 이런 집이구나 싶었다. 


담임은 그런 아이들을 종종 비웃곤 했다.  여자 아이들 사이에 검은 얼굴의 남자애가 끼어 있기라도 하면 마치 꽃밭의 지렁이 같다며 딴에는 위트 있는 농담을 던졌다.  까르르 웃는 아이들 속에서 조롱당한 본인도 헤 하고 웃는 것이 뭔가 좀 불편했다.  가장 크게 웃는 아이들은 담임이 방과 후에 몰래 가서 일대일 영어 과외를 해 준다는 소문이 난 삼풍 아파트 사는 아이들이었다.  같은 반에 아버지가 변호사인 여자애가 있었는데 선생이 그 애네 집 벤츠를 타는 걸 다들 봤다고 했다.  전교회장에 국민학교 6학년 내내 1등만 하던 반장의 집도 들락날락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담임의 과외를 받는다는 아이들은 영어 쪽지시험을 보면 항상 백점을 맞았다.  그해 여름 88 올림픽이 열렸을 때 관중이 없는 비인기 경기에 자리를 채우러 공짜로 구경을 갔다 지하철을 타고 오는 길에 외국인을 만난 아이들은 담임을 불렀고, 담임은 머뭇머뭇하다 나를 불렀다.  모자랑 재킷에 기념 핀을 잔뜩 끼운 백인 할아버지와 나는 그냥 시답잖은 얘기를 영어로 주고받았다.  "뭐래냐"라는 담임의 말에 나는 한국이 참 아름답다고 했다며 아무 소리나 지껄였다.


어머니는 선생들에게 촌지를 두둑이 주는 편도 아니었고 학교 가서 얼굴 비추는 것도 일 년에 한 번 정도였다.  자폐가 심했던 형에게 신경을 더 써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담임은 나에게 왠지 호의적이었다.  나는 아픔을 잘 참는 편이어서 웬만한 체벌에는 아프다고 하는 일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버지와 닮았다.  아버지도 고통에 둔감해서 다치면 상처를 그냥 놔두는 바람에 크게 덧나는 적이 많았다.  아버지는 아픈 건 일단 참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담임은 매번 묵묵히 매를 맞는 나를 보고 "뭔가 제대로 반성하고 있구나" 식으로 제맘대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를 닮아서 어른들에게 과도할 정도로 예의를 차렸다. 담임은 낮은 자존감 때문인지 그런 걸 좋아했다.  그는 서울교대를 나왔는데 뭔가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어서 항상 자기는 끊임없이 공부한다는 걸 강조했다.


외인주택단지를 헐고 당시로는 최고급 아파트를 표방하며 지은 삼풍 아파트에 입주가 시작된 건 88년이었다.  4월쯤 해서 많은 아이들이 전학을 왔다.  나중에 좀 친해진 H 도 그 무렵 우리 반에 들어왔다.  그녀는 산뜻한 정장에 유달리 넓은 이마 위로 길고 찰랑거리는 곱슬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치아교정 때문에 이빨에 철길만 깔지 않았으면 더 예뻤을 것이다.  전학 날 자기소개를 하는 걸 보고 뭔가 배운 집 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H의 방은 우리 부모님의 안방보다 넓었고, 마루에는 큰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성적도 항상 상위권에 들었고 친화력도 좋아서 전학 온 지 한 달 정도 지나자 우리 동네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지내게 되었다.  몇 년 후에 그녀의 말로는 실은 그 당시 자기도 매일 학교 가기 싫다고 울었고 주말마다 예전에 살던 압구정동에 갔다 오곤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의 기억에 아직도 H는 상류층 모범생 소녀의 표본으로 남아있다. H의 유일한 단점은 웃음소리였다. 그녀가 웃는 소리는 크기도 하고 소리가 유별나서 아이들이 뒤를 돌아보는 경우도 많았다.  너무 크게 웃는다고 불려 나가 혼난 적도 있었다.  게다가 H를 웃게 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나와 같은 중학교를 들어간 H는 변함없이 모범적이었고 전교회장에 당선되기도 했었으며 외고에 진학해서 명문대를 졸업했다.  대학 들어가자마자 쌍꺼풀 수술을 해서 많이 예뻐지고 살도 뺐다는 소식도 들었다.  모든 게 전형적인 모범생의 코스였다.  아마 지금도 어딘가에서 뭔가 돈 많이 받는 복잡한 일을 하면서 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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