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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bootsbookclub Jan 06. 2021

인어공주를 위한 부엌/ 정안

redbootsbookclub_magazine vol.1


 3년 전 엄마 칠순기념 여행 후, 엄마의 생신기념 여행으로 친정식구들과 제주여행을 왔다. 검은색 밤바다위에 등대의 초록 불빛이 반짝인다.

저 초록빛의 등대는 무엇일까?


 흰색, 빨강, 초록의 신호등 같은 역할을 하는 건가? 빨강과 초록 불빛의 차이는 뭘까? 초록의 불빛은 처음 본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초록빛은 데이지를 위한 불빛이었다. 낮에 보았던 위미 항은 제주의 나폴리. 한적하고, 고즈넉한 작은 포구, 항구에 늘어선 고기 배, 낚시꾼들 몇 척의 크고 작은 요트, 은빛 물결의 반짝 반짝인다. 사람으로 변신한 인어공주가 물위를 걸어 나올 것 같다. 새벽 5시 잠에서 깼다. CO'OP호텔 8층 동트는 위미항의 새벽바다. 어둠의 옷을 벗고 하얗게 새벽은 밝았다. 여행으로 주방에서 해방된 몇 칠은 얼마나 좋던지 오늘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다. 주방이라는 감옥에서 끓이고, 지지고, 졸이고, 태우고, 볶고, 비비고, 우려내고, 밥 짓는 연기를 뿜어내는 쿠쿠 압력솥의 요란한 소리를 들어야한다. 부엌에서 인어공주를 위한 식탁을 준비한다.

너의 별명은 인어공주이다.

집 안에서 몸을 쓰는 일은 전부 내가 한다. 인어공주는 못 걸어서 쇼파에만 앉아 있는다. 인어공주라서... 인어공주는 거실에 앉거나 누워서 티브만 본다. 아마 나는 혼자 살았으면 한 달 이나 일 년 분량의 스프를 끓이거나 카레를 만들어 하루씩 먹을 수 있게 냉동실에 넣고 꺼내 먹었을 거 같다. 부엌은 내가 아픈 날 쉬고 싶고, 주부 습진이 생겼어도, 손목이 아파도, 독감이 걸려서 아팠어도, 허리가 아파도, 봐 주지 않는다. 그러면 부엌은 감옥이 된다. 목구멍으로 침 한 번 삼키고 부엌으로 가야만 한다. 똑. 똑. 똑 칼로 자르고, 다지고, 베이고, 피가 뚝뚝 떨어져도 반창고 딸랑 붙이고 전쟁에서 취한 전리품을 내놓듯이 한상 차려 낸다. “김치 만들어 봐라! 총각김치, 깍두기, 무생채 만들어 봐라! “ 인어공주는 말한다.” 농수산물 시장에 갔는데 야채가 시들하네, 무는 추울 때 먹어야 하나 봐요” 김치 같은 거는 아예 할 생각 없어서 은근 슬쩍 또 넘긴다. 사 먹는 것도 맛있는데 굳이 잘 하지도 못하는 김치를 하라니!  

나는 신데렐라이다.

 6시까지는 집에 와야 한다. 평일 하루 한 번 저녁 6시 밥을 짓고, 생선 굽고, 나물이나 반찬 한두 가지, 김치 두 가지, 밑반찬은 멸치볶음, 콩 조림 정도이다. 국이나 찌게는 잘 안 먹기 때문에 가끔 된장국을 끓인다. 반찬을 사오기는 하지만 사온 거는 잘 안먹기 때문에 끼니때마다 해야 한다. 식당가서 먹는 밥도 사먹는 건데 사온 반찬이랑 뭐가 다르다고......참말로. 사온 반찬이라도 내가 차려서 집에서 먹으면 집 밥 아닌가. 대 부분은 한 번 식탁에 올라 왔던 반찬들이 남으면 전부 버린다. 저녁 식사를 마치면 후식으로 빵과, 과일, 떡 종류를 내어 준다. 주방 씽크대 한쪽 칸은 각종 과자류를 넣어 둔다. 인어공주는 간식을 거의 식사 분량만큼이나 먹는다. 주말에는 최근에 다니는 요리 클래스에서 했던 특별 요리 하나 둘 정도했었다. 잘 먹었다는 칭찬은커녕 “이런 거는 사먹으면 돼. 김치나 잘해라!“ 말하는 인어공주야 퐁퐁이 되어라. 얏! 보험증권 같은 요리 레시피를 보면서 순서대로 요리를 한다. 손이 많이 가고 재료를 준비하는데 귀찮지만 이거라도 해야 “요리 좀 잘 해 봐라” 잔소리 대 마왕 인어공주의 잔소리를 안 들을 수 있다. 토요일 낮은 면 요리나 수제비 종류, 저녁은 특별요리 주일 저녁을 한다. 주말 요리를 맛있게 먹었을 때는 내 수고에 대한 보답이랄까. 가끔 피자를 시켜서 먹을 때가 있다. 정크 푸드는 좋아하고 길거리 음식 좋아 하는 인어공주. “인어공주는 입맛이 까다로워요”내가 말하면, “미식가라는 좋은 말도 있는데 까다롭다니” 버럭 화낸다. 메뉴가 입에 안 맞으면 얼굴 표정에 불만이라고 써져 있다. 하루 세끼가 아니어서 다행이라 생각 한다. 불쌍한 나의 위장 때문에 아침은 나만 간단하게 누룽지 또는 휘슬러 냄비에서 한 진밥을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꺼내 데워 먹는다. 음식은 누군가를 위해서 준비하는 거 같다. 일상으로 돌아가 나는 누군가를 위한 음식을 할 것이고 서로 교환하는 거지. 당신은 돈을 벌고, 나는 밥을 하지, 등대의 초록 불빛이 아침이면  사그라들고, 저녁이면 빛을 비추지. 내 작은 주방의 불빛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아... 이번 주말은 메뉴는 뭐 할까? 소고기 곱창전골을 해 볼까? 나는 좋아하는데... 인어 공주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서로 좋으면 좋은데... 생선과 고기 좋아하는 인어공주를 위해 나는 부엌으로 간다. 인어공주는 “부엌은 행복이야!” 말한다.


그래, 나는 행복을 주는, 신데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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