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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bootsbookclub Dec 15. 2021

우습지만 내 식대로

백번의 힐링다이어리

십 대에 나는 수학이라는 과목을 신봉했다. 수학을 잘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저 좋아해서 오랫동안 수학 문제를 붙들고 씨름을 했다. 억척스럽게 모르는 문제를 풀릴 때까지 매달려서 나만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답을 만들어냈다. 답안지를 보면 종종 나의 풀이 방식과는 다른 풀이법이 있어서 답이 맞았다는 게 놀랍기도 했다. 수학도 때려 맞출 수 있는 거였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지나고 보니, 인생에는 정답이 없을뿐더러, 풀이 방법은 우주의 별만큼 많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저녁마다 일기 쓰기

빨강장화 북클럽에서 나는 사람들과 함께 일기 쓰기를 한다. 자주 만나지도 않는 사람들이 매일 각자의 내밀한 일기를 스스럼없이 공유하고 좋아하고 위로하고 지지한다.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힐링다이어리 모임은  자기 일기를 열심히 쓰면 리워드를 준다. 누군가의 일기에 댓글을 열심히 단다고 리워드를  적은 없는데 신기하게도 서로를 그렇게 돌보고 아낀다. 어쩌면 그런 위로와 지지를 나도 받고 싶기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행동일  같다.


그러고 보면  사회많은 모순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장애인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는 문제가 그에 해당된다. 한국에서 장애인이 되는 경로를 살펴보면 선천적인 경우는 10퍼센트, 나머지 80퍼센트 이상이 후천적인 상황으로 장애인이 된다. 다시 말하자면 누구살아가면서 장애인이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아이들도, 나의 지인들도 마찬가지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장애인학교를 설립하는데 장애인의 부모가 학교 설립을 위해 반대를 외치는 지역 주민들 앞에 무릎을 꿇는 일이 벌어질 ,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상상하게 된다.  


내가  자리에 없어서 다행이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지 않으니 상관없다?


입장을 바꿔놓고 내가 받고 싶은 대우를 남에게 해준 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그렇게 모질게 우리 동네에 장애인을 위한 학교를 짓지 말라고 말할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굉장히 놀라운 사실은  생각이 들기 전에 이미 우리 집값이 떨어지는 끔찍한 상황부터 가정한다는 점이다.  가지의 확률을 각각 계산해보자. 내가 장애인이  학률? 우리 집값이 떨어질 확률?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장 끔찍한 일은 논외로 두고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끔찍한 일만 나에게 일어날 거라고 가정한다. 아니 믿는다.  믿음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주 일기를 쓰고, 자신을 돌아보고,  솔직한 마음을 담은 일기를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행위는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한두  용기 내어 공유한 뒤, 함께하는 멤버들이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으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나는  행복이 사람이 가질  있는 가장 고귀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삶을 살든지 나를 지지해줄  사람만 있으면  사람은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인정하지는 않을지라도  상관이 없다. 어쩌면 20대의 나였으면 절대 몰랐을, 40대의 나여서 수긍이 되는 점일지도 모르겠으나, 다행히  나이 들기 전에  좋은 점을 알게 되었다.


일기가 반성문 같다면, 일기일까? 결국 일기가 감정 쓰레기통이 아닌, 감정 승화의 도구가 되고, 일기를 함께 읽는 누군가에게 닿아 좋은 울림을 준다면 그것은 하나의 예술이 되는 것이다. 나는 종종 일기를 정성스럽게 쓰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대단한 책을  것은 아니지만  이상의 고귀한 일을 하고 있다고 여긴다.  타인의 인정에 목말라 있던 내가  욕심을 내려놓고 나를 다독이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에서 이것보다  중요한 일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질문을 던지게 된다.

늘 정답을 찾아 끙끙대던 십 대의 나를 생각해본다. 끙끙대다가 애쓰면 찾기 마련이고 가끔은 그 답을 찾기 위한 길이 한 갈래 만 있는 게 아니어서 얼마나 안도의 숨을 쉬었는지. 끙끙대고 수학 풀이집을 안 본 보람이 있다. 지금도 풀이집은 잘 안 본다. 나의 좋은 버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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