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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bootsbookclub Oct 07. 2020

그녀를 만나기 위해 도쿄로 가다/ 김혜현

에밀리 플뢰게의 일과 사랑



 2년 전 전원경 작가의 <클림트>라는 책을 읽었다. 클림트는 20세기 오스트리아 빈의 천재적인 화가이다. 그의 천재성이야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주 젊은 시절부터 정부의 요청에 의해 공공벽화를 많이 그려서 돈도 많이 벌고 유명인이 된 예술가였으니까. 그리고 30살을 기점으로 그는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고, 진짜 자신이 원하는 그림만을 그리려고 했다. 그는 괴테의 <파우스트>와 단테의 <신곡>을 작업복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반복해서 읽었고, 자신의 삶이 그 책들과 연결된 고리들을 그림에 풀어냈다. 그가 그린 대부분의 작품들이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나는 클림트의 한 작품을 유난히도 정말 좋아했다. 2019년 5월에 나는 그 작품을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어린’친구들이 많다고 들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어리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다. 내 주변에는 아미들이 몇 분 있었다. (아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그 분들을 통해서 알았다.) 의외로 주변에 어리지 않은 아미들이 많아서 또 놀랐다.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은 아이돌이라 더니 과연 그러했다. 세대를 넘어서서 팬이 있어야 진정한 글로벌 스타다. 소설도 쓰시고, 그림작업도 하시는 나의 지인분은 지극한 애심을 가진 아미다. 아미로서 방탄 콘서트를 충실히 보러 다니셨다. 국경을 넘나드는 일은 수시로 일어났다. 그녀의 사랑은 국경을 초월했다. 어느 날 일본 방탄콘서트에 다녀온 그녀가 도쿄에는 좋은 미술전시가 많다며 나에게 팸플릿 한 장을 보여 주었다. 그 팸플릿 표지에는 클림트의 작품 하나가 커다랗게 인쇄되어 있었다. 보자 마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일본행을 결심했다.


 그 전에 난 단 한번도 일본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었다. 그 시점 이전에 해외여행을 8년 동안 다녀본 적이 없었다. 돈도 없고, 아이들 키우느라 시간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림 한점을 보겠다고 나는 2박3일 일본행을 결심한 것이다. 돈도 시간도 없는 애 엄마가 말이다. 마침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꽤 많은 수수료를 받았고, 그 월급을 고스란히 여행가는데 다 썼다. 나를 일본에 보내준 고객들에게 지금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녀들의 구매가 나의 운명적인 만남의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은혜는 평생 잊지 않습니다.


 여행가기 전날, 나는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거의 잠을 못 자고,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서 공항으로 가는 길에 나는 몸에 이상을 느꼈다. 드디어 당뇨증세가 나타나는 구나. 아이들 키우면서 두가지 일을 병행하고 있었는데, 이러다가 정말 쓰러지겠다 싶은 순간이 올 것만 같았다. 그 시점에 일본행 비행기를 탄 것이다. 나는 정말 운명처럼 그 그림을 볼 때까지 살 수 있을까? <플란다스의 개> 동화가 생각이 났다. 이게 무슨 비극적인 운명인가?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렇게 죽는 것인가? 비틀거리는 몸을 겨우 이끌고, 도쿄에 도착했고, 다행히 난 살아있었다. 곧바로 미술관 투어가 시작되었다.


 클림트 전시를 도쿄에서 두 군데에서 하고 있었다. 마침 일본과 빈의 수교 150년 기념으로 클림트의 작품들이 엄청 많이 왔다. 나는 클림트의 작품을 직접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기대가 부풀어 올랐다. 함께 일본에 미술 전시를 보러 온 나의 여행동료들은 모두 3명, 그녀들도 정말 미술전시 관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전투적으로 미술관 관람을 했다. 2박3일동안 무려 4군데의 큰 전시관을 돌면서 몇 시간씩 그림을 관람했다. 밥은 대충 때우고, 저녁에는 편의점 삼각김밥을 사 먹으면서 호텔에서는 그날 본 작품들을 다시 떠올리며 토론을 했다.


 나는 이렇게 미술전시만을 위해 여행한 것도 처음이었고 일본 여행도 처음이었는데, 순수한 목적은 클림트의 단 한 작품을 만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그 전시관으로 가기만을 기다렸다. 수많은 클림트의 작품들을 천천히 보고는, 마침내 그 작품만이 커다랗게 걸린, 그 벽으로 다가갔다. 마치 숨겨둔 첫사랑을 30년만에 만난 사람처럼 수줍어 하고, 폴짝거리며 뛰고, 헤헤 웃고,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작품 주위를 30분은 맴돌면서 감상을 했다. 누가 보면 어떤 미친 여자가 여자그림 앞에서 미친 짓을 한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클림트는 여자 모델을 데리고 수많은 작품들을 그렸다. 황금빛으로 번쩍거리는 <키스>라는 작품은 유명하다. 그 외에도 여성들을 모델로 그린 작품이 아주 많다. 내가 정말 보고 싶었던 작품은 클림트가 가장 사랑한 한 여인의 초상화이다. 클림트는 이 여자와 부부 관계도 아니었다. 그들은 성관계도 맺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난 이 말은 믿기지 않는다. ) 결혼도 하지 않았지만, 27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가 400여 통이 넘었다고 알려져 있다. 휴가 기간이면 두 사람은 함께 여가를 즐겼고, 클림트가 뇌출혈로 쓰러질 때 그 여자의 이름을 불렀으며, 모든 유산상속 집행을 그녀에게 일임했다.


 그녀는 그 당시에 유명한 의상디자이너였다. 자신의 회사를 가지고 있던 그녀는, 클림트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클림트도 그녀에게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녀는 클림트에게 종속되지 않으면서 완벽하게 평등한 사랑을 한 유일한 여자가 아니었을까. 그 당시만 해도 여성은 남성을 돕고 보필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었다. 클림트의 수많은 여성모델들은 돈을 받고 모델이 되어주거나, 부자인 여성들은 클림트의 모델이 되어 그림을 갖기 위해 돈을 내고 모델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림의 소유는 모델인 여성이 아니라 그 돈을 지불한 남편, 즉 남성들이었다. <우먼 인 골드>라는 영화를 보면 그런 상황을 알아차릴 수 있다. 누군가 나를 소재로 그렸다고 해서 그 그림이 내 소유가 되지 않는다.


 클림트의 평생 연인이었던 그녀는, 클림트가 3번의 초상화를 그려주었다. 마지막에 그렸던 그녀의 모습은 내가 한눈에 반할 정도로 멋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작품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고 한다. <키스>와 같이 황금에 둘러싸여 있거나,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목 베어 들고 있는 <유디트>와 같이 강하고 멋있어 보이길 바랬던 것일까? 그녀는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걸 안 클림트는 다시 그려주겠다고 약속했다.


 클림트는 56세에 사망했다. 그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녀는 클림트와 주고받은 편지 대부분을 불태워버렸다. 그녀의 집에는 잠겨 있는 클림트의 방이 있었다고 한다. 그 방에는 클림트가 가지고 있던 많은 수집품과 작품들이 있었고, 폭격에 의해 불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거장인 한 예술가의 뮤즈 같은 역할로 당당하게 살았던 그녀. 그녀의 삶을 책을 통해 들여다볼 때, 나는 클림트 보다는 그녀에게 더 빠져들었다. 그림 속에서 당당히 허리에 손을 얹고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은 여성으로서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사랑하며 산 존재 그 자체였다. 어쩌면 그녀는 사랑도 일도 잃지 않았던 게 아닐까?


 어떤 여성들은 사랑을 잃을 까봐 일을 버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 사랑도 일도 모두 가진 자신의 연인을 바라보며, 곧 후회한다. 어쩌면 내가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사랑을 위해 일을 포기했던 나를 되돌아 보았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초상화를 찾아가면서 나를 찾으려고 애를 쓴 것이다.


클림트의 뮤즈, 그녀의 이름은 ‘에밀리 플뢰게’이다.


#에밀리플뢰게#클림트#사랑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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