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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bootsbookclub Jan 10. 2021

빨간 크레파스 립스틱 /금정

redbootsbookclub_magazine vol.1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어두워지기 전에 여자애들이 우리 집으로 모여들었다. 나, 엠마, 젬마를 비롯한 동네 꼬맹이 여덟 명이었는데 우리는 그날 전야제에서 노래와 춤을 출 친구들이었다. 드디어 무대에 서기 위해 화장할 시간이 된 것이다.

 자, 줄을 잘 서봐.  

언니의 말에 내가 맨 먼저 줄을 섰다. 우리 집이니까 의기양양했다. 그런 나를 잡더니 언니는 줄의 맨 뒤로 보냈다. 야속했지만 어쩔 수 없다. 언니가 우리의 대장이니까. 우선 언니는 어머니의 분통을 열더니 하얀 분을 우리에게 발라주었다.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게 기분이 황홀해졌다.  그런 다음 숯껌댕이를 어디서 구했는지, 언니는 그것을 이용해 우리의 눈썹을 새까맣게 칠하기 시작했다. 눈썹이 또렷해졌다. 드디어 입술을 바를 차례다.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린다. 한 친구를 바르기 시작하자 모두들 궁금해졌는지 동그랗게 모여들었다.  

 키가 작은 나는 까치발을 하다가 비집고 들어갔다. 언니가 빨간 크레파스를 들고 사뭇 공들여 손을 놀렸다. 언니는 젬마의 입술 가운데부터 칠하기 시작했다. 크레파스는 입술에 잘 칠해지지 않아서 언니는 몇 번이나 힘을 주고 덧칠을 했다. 드디어 젬마의 입술은 중앙에서부터 빨갛게 변하였고 가장자리까지 칠하고 나니 빨간 입술이 그리 고울 수 없었다. 내 마음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내 차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내 입술도 화장을 마쳤다. 입술을 붙이고 있으려니 침이 자꾸 새어 나왔다. 우리는 모두 입술이 지워질까 봐 ‘스스’거리면서 조심히 했다.

 마지막으로 언니는 머리를 단장하기 시작했다. 빗으로 빗기고 난 후, 고무줄과 실핀을 이용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요리조리 묶어 앙증맞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면 우리는 모두 함박웃음을 띄고 살짝 떨리는 마음으로 전야제가 시작되길 기다리곤 했다.  성당 바로 옆이 우리 집이었다. 예전엔 놀이터가 따로 없어서 성당 근처에 사는 애들은 그곳에서 모여 놀았다. 성당에는 종지기가 있어서 매시간마다 종을 치곤 했다. 보통 종이 여섯 번 울리면 우리들은 저녁을 먹으러 집으로 향했다. 성당 마당에는 각종 꽃이 어우러져 피었고 미끄럼틀과 모래 터가 있어서 놀기에 좋았다. 그러다가 우리는 교리 공부를 했고 미사를 봤다. 성당은 놀이터이자 공부하는 장소였다.  

 성당에서 잔디밭을 가로지르면 강당이 있었다. 그곳에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 각종 모임을 갖거나 발표회를 하는 곳이었다. 12월이 오기 전부터 우리들은 그쪽 강당에 모였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있을 발표회 때문이었다.  성탄 전야제의 춤과 노래 연출가이자 지휘자는 셋째 언니였다. 우리는 언니의 지도에 따라 열심히 노래와 춤 연습을 했다. 추운 강당임에도 친구들과 모여 연습을 하는 것은 참 신나는 일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연습한 것을 발표할 날이 드디어 온 것이다.  차가운 바닷바람을 뚫고 사람들이 하나둘 강당으로 들어온다. 이날은 신자, 비신자, 어른, 어린아이들 할 것 없이 모두 모여든다. 시골이라 특별한 구경거리가 없기에 함께 한때를 즐기는 것이다. 강당 입구에는 어디선가 날라온 덩치 큰 소나무가 우람하게 서 있다. 그 꼭대기엔 다윗의 별이 달려 있고 둘레에는 하얀 솜과 색색의 반짝이며 작은 전구들까지 매달려 안온한 빛을 내기 시작한다. 흰색 창호지에 쓰인 성탄 전야제라는 현수막이 정겹다.  

 저녁 8시 드디어 막이 오른다. 강당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사회자가 부르는 순서에 맞추어 우리는 신나게 공연을 했다. 합창으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성가나 케롤, 동요를 불렀다. 변변찮은 옷을 입었지만, 검은 고양이 네로라는 가요에 맞추어 춤도 추었다. 오빠들은 돌아온 탕자에 대한 연극도 했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마다 박수 인심이 후했다. 나는 우리가 정말 잘한 줄 알고 어깨가 으쓱했다.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남동생의 노래였다. 동생은 멋진 체크 무늬 양복을 입었는데 그 옷은 반바지 정장이어서 스타킹을 신었다. 그 밑의 고무신이 여느 때보다 더 도드라져 보였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소개를 한다.  “자, 지금 들으실 노래는 처녀 농군입니다.”  “홀어머니 내모시고 살아가는 세상인데 이 몸이 처녀라고 이 몸이 처녀라고 남자 일을 못 하나요? ......”  동생이 노래를 끝냈다. 사람들이 ‘와~’ 하며 환호성을 울려주었다. 그 어느 것보다 박수 소리가 우렁찼다. 나는 은근히 질투가 났다. ‘ 나도 잘 부를 수 있는데. ’ 그 당시엔 잘 몰랐지만, 사람들이 환호를 해준 까닭은 아버지가 먼 타국에서 돈을 버느라고 어머니 혼자서 우리를 돌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성탄 전야제가 끝나고 나면 우리는 성당으로 몰려가 자정미사를 올렸고 신부님의 칭찬을 들었다. 성탄절 날에 받는 크리스마스 선물은 비가 사탕 몇 개가 전부였지만, 공연한 친구들과 함께 재잘거리며 먹는 사탕의 맛은 달콤한 행복에 빠지기에 충분했다.  그로부터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눈 감고 세월의 막을 걷어 건너가면 크레파스 립스틱을 바르고 행복한 얼굴의 내가 있다. 예쁜 입술이 지워질까봐 ‘스스’거리면서. 빨갛게 타오르는 기쁨의 떨림 속에서, 무대 한쪽 끝에 동무들과 함께 어깨를 부비대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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