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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Nov 06. 2020

필리핀 미역국은 홍합국

살아가기. 조산사의 삶

 1994년 초여름, 우리 식구는 필리핀으로 이사를 갔다. 남편은 이미 마닐라 만달루용의 회사에서 일 한지 3년이 되었다. 그 동안 아이들은 전화로 아빠 목소리를 듣고 삼 개월에 한 번씩 휴가를 나와 아빠를 만나곤 했지만 늘 떠날 땐 모두가 섭섭했다. 유치원 재롱잔치도, 졸업식에도 함께하지 못했다. "그래! 합치자! 좋은 직장이 무슨 소용이야! "  용기 내어 의료원 분만실 수간호사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일하던 열정도 미련 없이 떨구었다. 또 다른 기회가 반드시 올 것이다. 후회하지 말고 앞만 보고 가자! 혼자 이사 준비를 했다. 컨테이너로 큰 짐들은 보내고 이민가방 두 개, 작은 가방 두 개, 아이들 두 명이 내 차지가 되었다. 가족이 온다고 해서 신난 남편은 다 잃어버려도 괜찮으니 아이들 손 꼭 잡고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공항까지 가는 것도, 수속하는 것도, 어떻게 지나갔는지 정신이 없다. 큰 비행기가 하늘로 오르니 실감이 난다. 아이들은 항공사에서 준 선물로 그림을 그린다. 세 시간 반이 지나면 더운 나라가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지만 새로 만날 낯설음들은 조금 섬찟할 것 같았다.

 비행기가 덜컹거리며 랜딩을 한다. 밖으로 나오니 냄새가 다르다. 화장실 변기에 뚜껑이 없어 당혹스럽고 입고 온 긴팔 블라우스는 땀이 나서 휙휙 감긴다. 마닐라 공항 밖은 마중 나온 사람들로 난리법석이다. 이산가족 상봉도 그런 상봉이 없다. 저 멀리서 손짓하는 낯익은 그가 보인다. 아이들이 달려가고 작은 것을 번쩍 안아 올리는 그는 너무 기뻐 눈물을 글썽였다. 외진 공항을 빠져나와 도심에 들어서자 그 유명한 마닐라의 트래픽이 시작되었다. 서 있는 차 창가로 어린 여자아이들이 꽃목걸이를 사라고 애걸을 한다. 내 아이들과 비슷한 나이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함께 온 회사 직원이 필리핀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아이들에게 꽃 목걸이를 한 개씩 사 주었다. 손톱에 까맣게 때가 낀 소녀는 발돋움을 하며 창안에 꽃목걸이를 건넸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 보인 어린아이가 함박 웃는다. 미소는 어느 상황에서나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방울꽃같이 생긴 아이보리색 열대 꽃은 차 안을 금방 향기롭게 만들었다. 향기가 또다시 다른 나라에 온 것을 실감 나게 한다. 어디를 가나, 어떤 상황에서나, 애들은 즐거워한다. 복잡하고 처음 본 낯선 땅, 씩씩하게 살아야지!

 가구가 거의 없는 썰렁한 그의 숙소 15평 아파트엔 작은 도마뱀 두 마리가 우리를 반긴다.  여자 셋의 비명을 들은 도마뱀들은 도망 기지도 않았다. 모기를 잡아주는 도마뱀은 좋은 것이라 그 나라 사람들은 오히려 고마워한다는 것을 며칠 지나지 않아 알았다. 하지만 귀국하기 전까지도 리잘을 이뻐할 수 없었다. 짐이 오려면 보름을 기다려야 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세끼를 누군가 해 주는 밥을 먹고, 아이들이랑 뒹글 거리며, 일하러 가는 남편을 배웅하는

house wife가 되다니! 얼마나 이런 상황을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땐 세상을 다 얻은 맘으로 살았다.

 아이들은 중국 사립초등학교인 찐꽝스쿨에 입학했다. 사실 국제학교에 아이들을 입학시키고 싶었다.  작은 회사는 교육비 보조를 해 줄 여력이 없었고 우리도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남편이 조곤조곤 우리가 아이들을 IS로 보낼 수 없는 상황을 이야기했다. 잠시 들뜬 마음을 진정시키니 우리는 가난한 한국인이었던거였다. 사건이 터져 14개월 만에 부랴부랴 짐도 못 챙긴 채 귀국할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몇 달이라도 그 학교에 다녔어도 되었을 것이다.

 눈을 뜨는 아침은 대부분 낯설었다. 오토바이 소리, 옆집 아줌마의 따갈로그 소리, 생선 튀기는 냄새는 마닐라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래도 옆엔 남편과 아이들이 있다. 마닐라는 덥기 때문에 출근도 등교도 새벽에 시작된다. 트라이시클 소리가 잦아지기 시작하면 동네 모두가 움직이는듯하다. 대부분의 워커들은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출근을 하는데 특히 여자들은 더운데도 길게 까만 머리를 늘어뜨리고 다닌다. 아이들 등교하는 시간에 종종 그들과 마주치는데 Mr. lee의 가족이 왔다는 소문에 대부분 구김 없이 인사를 한다. "Good morning Mom!  별거 아닌 소소한 것에 목말라 있던 나는 모든 것이 꿈같다. 손 흔들어 배웅하고 마중하는 일이 이런 거구나!  나를 보고 뛰어오는 아이가 얼마나 이쁜지... 가끔 코끝도 시큰해지곤 했다. 나의 자리는 분만실이 아니라 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다른 이에게 맡기고 다른 이들을 돌보았던 내가 어처구니가 없다. 다 함께 있는 지금, 마닐라에서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

 한국인 워커들의 생일날엔  싱싱한 해물 미역국을 잔뜩 끓여 한국인 회사 사람들을 초대했다. 그들이 타국서 맞았던 생일은 쓸쓸하고 향수병이 도지는 날이었을 텐데...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 집 부엌을 좋아했다.
아떼들은 바닷가에 지천으로 널린 풀들을 먹는 우리를 신기해했다. 아기를 낳고 소모된 혈액을 만들어 내는데 미역국이 제격이라고 했더니 놀란다. 흐물덕거리는 바다풀이 요리로 변하면 그들도 한 그릇씩 비우곤 했다. 문득 필리핀에서는 출산 후에 특별히 먹는 것이 있냐고 물었더니 대부분 홍합국을 먹는다고 했다. 만약 이곳 마닐라에 안주를 하게 된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출산센터를 열고 싶다는 상상을 하곤 했는데 그곳의 산후 음식은 당연히 미역국이었을 거다. 아기 낳고 미역국을 먹는 필리핀 엄마!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회사가 코 앞이라 필리핀 워커들을 자주 만났다. 특히 사무실에서 일하는 Anna는 더욱 그랬다. 그녀는 임신 중이었고 같은 회사 Joe가 남편이란다. 전남편에게서 두 명의 자녀를 낳았으니 출산은 세 번째다. 덮석 다가가  내가 midwife인데 혹여 출산에 가 봐도 되냐고 물었고 흔쾌히 함께 하는 것을 허락했다.

 병원 검진 결과를 확인하고 준비할 것들을 알려 주었다. 어디서 구해오는지 몰라도 제법 출산에 필요한 것들을 가져왔다. 의사 처방이 있어야 하는 약물들도 모두 준비가 되었다. 산모를 돕는데 친구와 회사 동료들은 발 벗고 나서는 듯 보였다. 심성들이 곱다. 필리핀 여자의 출산은 어떨까 내심 호기심이 생겼다. 예정일 즈음 저녁에 진통이 걸렸다.

 그녀의 집은 일반 필리핀 평민들이 사는 곳에 있었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 사이로 골목 깊숙이 자리했다. 둘이 앉으면 차는 철재 소파와 머리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방 두 개가 있다. 좁은 집에 친구들 세 명이 그들을 도우려 함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출산을 두려워하지 않아 보인다. 걱정 많은 우리네 출산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작은 어미의 몸으로 아기도 쑥쑥 잘 낳는다. 아기는 손 발을 버둥거린다. 부드럽게 양수를 닦은 후 공손히 아기를 엄마품으로 내어 주었다. 이마의 땀을 닦아내는 그녀가 아름답다. 걱정했던 회음 열상은 없고 후산 후에 출혈도 없다. 너무 깔끔해서 놀라웠다. 작은 집에, 작은 사람들이, 작은 축제를 하고 있다. 작은 나도 그들과 잔을 들었다. 산모에게 주는 수프는 역시 아테들이 말한 데로 홍합국이었다. 한겨울 포장마차와 소주 한잔을 생각나게 하는 홍합국은 뜨거운 동남아의 평범한 산모를 위한 보양식이었던 게다. 돌아보면, 겁도 없이,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남의 나라에서 아기를 받은 배짱에 나조차 놀랍지만  지금 그런 상황이 다시 온다 해도 나는 똑 같이 아기를 받아낼 것이다. 받아내는 일엔 배짱도, 용기도 필요없다. 함께하고, 위로하고, 그저 탄생을 기다리면 된다.

이제는 그 때 보다 더 여유로워졌다. 


 세상의 반이 여자이고, 여자는 아이를 품고 낳는다는 사실!  나의 할 일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은 잠시 쉬어가지만 세상 어느곳에서나 출산을 도울 수 있는 조산사가 되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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