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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꾸꾸 Feb 18. 2023

노르망디에 다시 간다면, 여름에 (1)

출발


여행을 하다 보면 지루한 순간들이 참 많다. 기대하고 갔는데 가게들이 문을 닫아서 갈 곳이 없다거나 음산한 날씨에 사진 한 장 못 건진 날들 말이다. 그럴 때면 [괜히 갔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되돌아보면 그 날의 경험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번에는 온통 비와 추위로 가득했던 둘째날의 몽생미셸 투어의 기록이다.

이 날의 인상은 배고픔과 추위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되돌아보니 그 이상의 것을 얻어온 것 같기도.



| 출발


우리는 개선문 에뚜왈 광장에서 새벽 6시 집합했다. 아직 파리에 온지 2일차밖에 되지 않아서 소문만 무성한 파리의 지하철을 그것도 새벽에 탄다는 사실에 솔직히 조금 무서웠기에, 에뚜왈 역 4번출구 광장으로 나오자마자 보인 가이드 선생님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사실 나는 대담하기도 하면서 무모할 정도로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별로 없다. 타지에서 길을 잃고 혼자 모르는 사람의 오토바이까지 얻어타본 적이 있을 정도인데 이상하게도 이번 파리 여행에서는 유독 긴장이 됐다.


그 두려움의 9할은 괴한이나 인종차별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구매한 지 두 달 밖에 안 된 아이폰14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최신폰에 생돈을 투자했기도 했거니와 그 안에 담긴 나의 사진과 메모, 즉 삶의 흔적이 사라질까봐서이기도 했다. 우리의 많은 것들을 담고 있는 이 휴대폰이란 작은 기계는 이제 더 이상 단순히 비싼 전화기가 아니라 일종의 정체성이며 제2의 뇌가 된 듯하다.




| 휴게소 빵집 크루아상, 제가 한번 먹어보겠습니다.


"자, 여러분. 아침 7시인데요. 휴게소에 잠깐 들르겠습니다. 여기 폴빵집에서 커피랑 빵 드실 분들은 간단하게 아침식사하시고 버스로 돌아오시면 됩니다."


휴게소에서 주어진 20분 남짓의 짧은 시간.

아직 동이 트지도 않은 시간인데다가, 잠까지 설친 탓에 배가 고프지도 않았지만, 빵집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20분 밖에 없다는 생각 반, 노릇한 빵을 어서 빨리 먹고 싶다는 생각 반에 계산대에서 나온 아메리카노를 급하게 집어들다가 실수로 뒷순서 아저씨의 빵봉지를 가져갔다.

"it's mine. please."

핑크빛 뺨의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는 농담조 섞인 말투로 이야기하며 사람좋은 웃음을 지었다. 여기가 프랑스는 맞지만 왠지 아저씨도 이 나라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sorry"

오랜만에 쓰는 영어라 어색했지만 이런 순간들이 내가 지금 여행을 하고 있구나라고 실감하게 해주는 사소한 순간들이다.


-


과연 프랑스의 그냥 휴게소 빵집 빵 맛은 어땠을까? 엄청났다. 속은 뜨끈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쫀득했으며, 겉은 바삭하고 버터향이 솔솔났다.


어떻게 사진에서까지 버터향이 나지?


빵을 먹고 너무 맛있어서 언니랑 나는 한동안 버스에서 [이건 분명히 그냥 휴게소 빵집이 아닐거라는] 둥, [아저씨가 굳이 'PAUL' 빵집이라며 베이커리 상호를 말한 이유가 있을거라는] 둥 온갖 추측을 했었는데, 알고보니 PAUL 은 프랑스의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이었다. 이 휴게소를 다시 올 일이 없음에 아쉬워하려던 찰나, 길마다 보이는 PAUL 간판을 보며 안도감이 들면서도 우리가 먹은 빵의 희소성이 사라졌다라는 사실에 살짝은 배신감도 느껴졌다.


사실 PAUL 빵집은 대형 프랜차이즈 특성 상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파리바게트나 뚜레쥬르 정도의 인식이라고도 하지만, 1887년에 오픈하여 장장 12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역사 깊은 빵집이다. 그리고 우리가 먹은 뺑 오 쇼콜라와 크루아상은 정말 최고였다. 그 뜨끈하고 쫄깃한 빵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는데, 사실 이건 아마 'PAUL' 빵집이어서 그랬다기 보다는 빵이 갓 구워진 '아침 7시'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원래는 빵만 먹고 커피는 버스에 느긋하게 들고 탈 요량이었는데, 이 매장에서는 환경친화적 정책으로 플라스틱 뚜껑을 주지 않았다. 그 덕에 뜨거운 라떼를 원샷하고 본의 아니게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에트르타로 가는 길의 동이 터오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에트르타 가는 길




| 화가들이 사랑한 바닷가 마을, 에트르타



방탄소년단이 지나간 자리는 관광지가 된다는 말이 있다. 평범한 변기나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백지가 예술품이 되기도 하듯 유명인이 지나갔다는 사실만으로 사람들은 그곳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지금이나 예나 마찬가지였다.


친구에게 처음으로 바다를 보여줘야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에트르타를 선택할 것이다.
_알퐁스 카


19세기 이전 한적한 어촌마을이었던 에트르타도 유명한 소설가이자 비평가였던 알퐁스 카에 의해 알려지게 되면서, 수많은 명사들과 화가들이 이곳에 예술적 영감과 휴식을 찾으러 왔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에트르타에 가게 된 것은 사실 단순히 몽생미셸 투어 코스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착한 에트르타의 첫인상은 이랬다.


'춥고, 조용하고 아무것도 없네'


날씨만 좋다면 유유히 바닷가를 걷고 책을 읽으며 휴양하기에 좋은 조용한 마을이겠거니 싶기는 했지만, 적어도 우리가 갔을 때는 목도리가 날아갈까봐 머리에 둘둘 싸매야 할 정도로 거센 바람과 을씨년스럽게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아까운 마음에 이곳의 핫스팟이라는 코끼리 바위 위까지 꾸역꾸역 올라갔는데 정말로 바람에 날아갈 뻔했다. 목도리 말고, '나' 말이다. 어찌나 바람이 세게 불던지 나한테 하늘다람쥐처럼 팔다리 사이에 비막이 있었다면 그대로 하늘을 활공했을 것이다.


이런 날씨에서 코끼리 바위의 풍경을 보며 [음, 이런 게 예술이지]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럼에도 비오는 날의 에트르타마저도 사랑했던 예술가들이 있었다. 에트르타는 그들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다음 편에서 계속...



Epilogue


요즘 가이드투어는 각자 수신기에 이어폰을 끼면, 가이드 분의 목소리가 음악과 함께 마치 라디오처럼 흘러 나온다. 가이드투어라고 하면 깃발을 든 가이드를 따라 십수명이 우루루 몰려다니는 시끌벅적하고 정신없는 모습이 떠올랐는데 사뭇 달랐다. 분명 사람들이 질서정연하게 걷고 있는데 다들 귓구멍에 이어폰을 끼고 혼자만의 세상에서 자신만의 눈으로 여행지를 바라보며 우수에 잠긴 눈빛들이더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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