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theless, 겨울의 노르망디도 의미가 있었어!
... 지난 편에 이어서
하지만 내가 에트르타에 가게 된 것은 사실 단순히 몽생미셸 투어 코스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착한 에트르타의 첫인상은 이랬다.
'춥고, 조용하고 아무것도 없네'
나는 날아갈 듯한 바람과 사선으로 내리는 비에 우산은 무용지물이 되어 별로 마음에 들지도 않는 빵모자를 귀까지 눌러쓸 수밖에 없었다.
'너무 춥다. 너무 추워...! 빨리 관광버스 타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자와 목도리를 부여잡고 절벽 꼭대기까지 올라가 사진기 셔터를 마구 눌러대긴 했지만, 도저히 사람이 나온 사진 중에는 어디 내놓을 만한 사진이 없다. 24살에 친구들과 간 대만 여행이 생각났다. 땡볕의 8월, 잠깐만 나가도 줄줄 흐르는 땀에 투어버스와 백화점이 우리에게 최고의 관광지가 되었더랬지.
거듭 생각했다. 모네는 거친 비바람을 뚫고 야외에서 폭풍우 속의 에트르타 코끼리 절벽을 그렸다는데, 이 황량하고 인적이 드문 겨울의 에트르타를 도대체 왜 사랑했던 것이지?
일단 시작하면, 또 모르지!
나는 예나 지금이나 취미부자이다. 배우고 싶은 게 많아서 이것저것 손만 대고 제대로 못한 것들도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런데 25살쯤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있다.
'내가 춤학원에 다녀서 뭐해?'
'그림 그려서 뭐해?'
허무한 거다. 이걸 배워서 뭐하지? 뭐하려고 내가 이걸 배우는 거지?
생각해보니 더 어릴 때도 비슷한 고민을 했었다.
'내가 도대체 사인함수를 왜 배워야 해? 시에 숨겨진 뜻을 왜 알아야 해? 화학공식계산을 어디에 써먹겠어?'
되돌아보니 학창시절에도 이런 고민이 문득문득 피어올랐지만, 난 의식적으로 질문하기를 멈추곤 했다. 학교에서는 풍요로운 상상이나 질문보다 정답에 맞춰 생각하는 것이 가성비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서도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25살의 나는 질문을 멈췄던 18살의 나와는 다른 선택을 했다. 당시의 나는 이 의문들에 대한 답으로 어떤 취미를 시작할 때 일단 목표를 정하기 시작했다.
'춤학원에 다닌 거 뽕 뽑으려면 장기자랑 나가서 상금 탄다!'
'그림 매일 그려서 인스타 1일 1업로드!!!'
목표를 정하고 성취를 하면 뿌듯함과 동시에 허무한 기분이 사라질 거라 생각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그 다음에는 또 다시 의문이 피어올랐다.
'상금을 타서 뭐하지? 그 다음엔 더 큰 대회를 나가야 되는 건가?'
'인스타에 매일 업로드 하면, 뭐 계정이 유명해지겠지?'
질문에 질문을 거듭하다 보면 결론은 결국 하나로 귀결됐다.
'그래서.. 그래서 결국 그게 다 무슨 의미지?'
그러다보니 숱한 취미들이 다 '해내야 하는 의무'로 느껴지고 도대체 내가 뭐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어느 하나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없었고, 새로운 관심분야가 생겨도 머뭇거리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부터 나는 결과주의적인 태도로 삶을 살고 있었고, 과정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훈련이 덜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29살이 된 지금도 여전히 이것저것 관심사가 널뛰기를 하지만, 사뭇 다른 점이 생겼다.
온갖 운동을 해본 덕에 혼자만의 페이스를 조절할 수 있는 헬스가 재밌다는 것을 깨달았고, 유화부터 아크릴화, 한국화 등을 찔끔찔끔 배워본 덕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전시회도 다양해졌다. 춤이나 기타, 플루트와 피아노를 배워본 덕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화장실에서 맨몸으로 노래를 틀고 춤을 추거나 하루 반나절을 기타를 치고 놀면서 스트레스를 풀어버린다.
더 이상 취미로부터 특별한 의미를 발견하려고 하지 않는다. 단순히 순간의 행복에 집중하며,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찾는다. 과거 숱하게 시작하고 접었던 많은 것들이 모여 나의 취향이 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자양분이 되어준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세울 만한 '성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행복의 방법'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에는 일단 무엇이 되었든 열린 마음을 가지고 다양한 것을 접해보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는 것 같다. 일단 시작해야 의욕이 생기고,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뭘 알아야 재밌게 느껴지며, 음식도 먹어봤어야 군침이 돌듯이 경험은 첫 시작이 불쾌했든지 유쾌했든지 간에 상관없이 우리에게 취향을 넓힐 기회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다지 즐겁지 않았던 박물관도 두번 세번 가다보면 아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그러다 보면 궁금한 게 생긴다. 그렇게 더 깊이 들어가고 싶어지고 어느새 나에게 잔잔한 행복을 줄 수 있는 취향거리의 폭을 하나 더 넓히게 되는 것이다.
20세기, 에트르타는 시민들과 예술가들에게 정신없는 파리를 벗어나 휴양할 수 있는 안식처였다. 어린시절을 노르망디에서 자란 모네에게도 이곳은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자 그리움의 대상이었기에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기 위해 자주 노르망디에 체류하지만 동시에 젊은 시절 생활고로 인해 어촌 마을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고도 한다.
이처럼 모네가 에트르타 해변을 그리게 된 시작점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기보다는 [생활고]와 [고향]이라는 이유로 에트르타에 자주 거주하게 되었고, 단순히 그곳에 있다는 이유로 에트르타 해변을 자주 그렸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수십점을 그린 에트르타 해변에서의 누적된 경험이 모여 그에게 더욱 의미있는 장소가 되었고 영감의 원천으로 자리하게 된 것 아닐까. 그렇게 그는 부와 명예를 이룬 후에도 노르망디로 다시 돌아가 10점의 에트르타 해변 연작을 완성하게 된다.
여러분도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왠지 나 충전이 필요해.
내가 내가 아닌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그럴 때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내가 진정으로 나의 모습이 될 수 있는 곳 말이다. 그곳은 집이 될 수도 있고, 단골 카페가 될 수도 있고, 과자봉지를 들고 넷플릭스를 틀어놓은 침대 위가 바로 그 고향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소진된 마음을 채워줄 고향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다면, 힘이 필요할 때 당장 나를 내려놓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마음의 고향을 많이 발견한 사람일수록 지친 일상에서 쉽게 회복할 수 있는 것 같다.
그 고향은 우연히 만나게 될 수도 있고, 처음에는 그다지 끌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떤 것이 나에게 행복의 고향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나는 새로운 것과 낯선 것을 만나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려 한다.
물음표 말고 느낌표를 던져라
이거 해서 뭐해? 말고
일단 하자!
해보고 나서 아니면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