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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꾸꾸 Feb 16. 2023

파리 카페에서 서울을 보다 (2)


이전 글 파리 카페에서 서울을 보다 (1)편에 이어, 내가 카페의 도시 파리의 유서 깊은 cafe de flore에서 했던 생각에 대해 나누어 보고자 한다. 뭐, 별 건 아니고 통찰력을 길러 보고자 노력하는 eNfj의 상상력이라고 보시면 된다.



| 파리에서 왜, 카페에 가고 싶었니?

라고 묻는다면



Cafe de flore의 모습

파리에 대해 1도 몰랐던 나는 조승연 작가님의 영상을 보면서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어느 곳을 가도 역사적인 문인들의 흔적을 마주할 수 있다는 이곳, 생제르맹데프레에 가장 먼저 매료되었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한데, 생제르맹데프레에는 유명한 문학가나 예술가들이 자주 갔던 카페가 많기 때문이었다. 빵순이로서의 버터 허영심과 나름 독서광으로서 갖고 있는 지적 허영심이 더해진 것이다. 프랑스 문인들이 자주 들렀다는 카페에서 바게트를 먹으며 책을 읽는다면 그보다 더 황홀할 수 없겠다는 상상에 빠졌다.


그리고 Cafe de flore는 나의 두 허영심을 채워줄 천상의 공간이었다.



| 20세기 프랑스 문인들의 동네

생제르맹데프레


에펠탑이나 몽마르뜨가 위치한 지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광객이 적고 부유한 동네라 소매치기 걱정 없이 여유롭게 돌아다니기 좋은 동네라는 이곳은 20세기에 예술인들이 모여 살며 지성과 문화의 거리로 발전하게 된 곳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카페'가 있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우연한 만남과 대화가 있고, 그곳에서 창의적인 생각이 움튼다. 카페에 모여든 문인들은 하루종일 수다를 떨고 글을 쓰며 생각을 나누며 20세기 사상과 예술을 태동시켰다.


하버드대학 경제학과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는 그의 저서 ⟪도시의 승리⟫에서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 ‘도시’라고 말한다. 다양한 사람이 도시에 모여들며 생각의 교류가 많아졌고, 그로 인해 창조적인 발명과 발전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가의 창조적인 발전의 뒷배경에 도시가 있었다면, 파리의 도시에는 카페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카페 드 플로르에 거의 살다시피 했다.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 일을 한 뒤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그리고 오후 2시에 다시 돌아와 친구들과 저녁 8시까지 수다를 떨었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약속을 잡은 사람들을 만났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Flore는 우리의 집이었다.

_장 폴 사르트르


커피라는 자연 각성제의 힘으로 사람들은 하루종일 이야기꽃을 피웠고 예술에 대한 생각을 나눴고 그 결과 이곳에서 세계적인 문학작품과 예술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그런데 카페가 파리의 예술은 번성의 꽃을 피우는 데에 한몫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카페에 모여든 배경 이면에는 이들이 허름하고 비좁은 집을 탈출해 카페로 나왔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는가?





| 카페로 문인들이 모여든 이유


생제르맹데프레(Saint-Germain-des-Prés)는 파리 6구 중 센강에 인접한 지역으로 '풀밭 위의 Saint Germain 성당'이라는 뜻이다. 과거 센강 남쪽 지역은 센강이 자주 범람해 늪지대였는데, 이 성당이 지어진 곳은 풀밭이었기에 이런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늪지대에 밤나무로 지은 건물들의 특성상 건물의 일부만 철거하기 어려워 이 지역은 재개발이 되지 않았고 그 결과 낙후된 고시촌이 형성되었다. 자연스레 가난한 예술가들이 이곳으로 모여들게 되었고, 이들은 비좁고 낡은 집에서 나와 거리의 카페로 모여들게 된 것이다.


파리 6구에 위치한 생제르맹데프레 지역



이런 뒷이야기를 들어보니 뭔가 떠오르지 않으시는가?

답답한 집을 벗어나 넓고 탁 트인 카페로 모여든 프랑스의 예술가들 그리고 원룸을 벗어나 카페로 모여든 학생들.


난 듣자마자 한국의 젊은 학생들이 떠올랐다.





| 20세기 파리와 21세기 서울의 데자뷰

#카공족 #카페공화국 #원룸공화국


내가 야외운동을 가장 열심히 했던 때가 떠오른다. 한 번은 보라매공원 근처 북향 원룸에 자취를 할 때였고, 다른 한 번은 34평에 살던 본가가 전세 계약기간이 어긋나며 본의 아니게 25평 아파트에 34평짜리 짐을 욱여넣고 살았던 1년이었다.


당시에는 내가 운동 습관이 잘 베었다며 나 자신을 대견하게 여겼었는데, 넓고 채광이 좋은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오자마자 배봉산으로의 발길을 뚝 끊어버렸다. 이 사실로 미루어 봤을 때 난 그 당시 좁아터진 집을 나가고 싶었던 것 같다.




다들 체감할 수 있듯이, 한국은 카페가 많은 도시이다.

2019년 기준으로 스타벅스가 가장 많은 도시는 한국이었다고 할 정도니. (출처 : 앞으로 100년 p460) 동시에 서울은 원룸 공화국이기도 하다. 1인 가구가 늘어나며 원룸이 많아졌고, 서울의 사람들도 파리의 문인들과 마찬가지로 좁은 집을 나와 거리의 카페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서울의 카페와 20세기 파리의 카페는 사뭇 다른 듯하다.


우선 서울은 카페 말고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파리에는 쉽게 갈 만한 공원이 많지만 서울은 그렇지 않다. 가볍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앉아있을 만한 곳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을 주고 카페라는 공간을 대여한다. 이에 더하여 사람이 많은 핫플 카페 같은 곳은 시간제한을 두거나 스터디카페 같은 공간이 등장함으로써 우리는 공간에 더해 시간까지 대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장 폴 사르트르는 커피 한 잔 시키고 12시간을 글을 썼다고 하니, 서울 카페에 장 폴 사르트르 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유튜브에 카공족 테마의 주인공으로 올라왔을지도 모른다.


두 번째로 서울의 카페에는 우연한 만남이나 스몰 토크가 없다.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분명 수다를 사랑하는 나라인 프랑스의 20세기 카페에 비하면 우연한 대화를 통한 창조적인 생각의 발전이 있기는 쉽지 않은 듯하다. 21세기인 현재, 우리에게 카페는 계획된 만남을 위해 가거나, 혼자 일을 하러 가는 곳이다.



현대 도시에서는 소통이 줄어들고 있다. 과거에는 이웃들이 골목길에서 만났다. 하지만 지금은 아파트 복도를 사이에 두고 소통이 사라졌다. (...)
SNS에서는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모인다. (...)
소통의 단절 현상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도시 안에서 얼굴을 맞대고 우연히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

_유현준 ⟪어디서 살 것인가⟫



이처럼 각박한 한국 사회에서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행복하고 살기 좋은 도시를 구상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서 아주 쉬운 방법 하나가 떠올랐다.


바로, Say Hello 문화이다.



| 좋은 아침!

이 어색한 국어책인사가 아닌 사회



아침마다 넓은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밝은 햇살에 잠에서 깬다. 날씨가 좋으니 오늘은 미술관에 새로 연 전시회를 보러 가기로 했다. 가는 길이 3km 정도 되지만 걸어가는 길에 공원과 작은 서점들이 있어 구경하면서 가다 보니 금방 도착한 기분이다. 이 미술관에는 1주일에 한 번 정도 방문하는데 올 때마다 보이는 반가운 얼굴들이 눈에 띈다.


집에 돌아오니 강아지가 나를 반겨준다.

'짱가야! 엄마 기다렸어?'


그러고 보니, 오늘 한마디도 안 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다른 사람을 만나는 공간이 많아져도 한국인인 우리는 여전히 아는 사람에게만 인사할 것 같다는 생각.


프랑스에 가기 전에 예습했던 문화 중 하나가 인사하는 문화였는데, 가게에 들어가거나 일면식이 있는 사람에게는 봉쥬르 하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라는 것이었다. 문화가 그렇다고 하니 나도 모르게 누구를 보든 '웃는 얼굴에 봉쥬르'를 장착하고 파리를 돌아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서울에 돌아오니 왠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이웃 주민에게 밝은 얼굴로 '안녕하세요!' 하면 부담스럽게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동적으로 들었다. 심지어는 우리 아파트 단지에만 해도 분명 작은 공원이 있지만 그 누구에게도 인사를 하거나 스몰토크를 나누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소통이 원활한 도시로 변해가는 과정과 함께 우리의 의식 속에 Say hello 하는 문화가 자연스레 깃들어야 진정으로 행복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아침 아파트 1층에서 계단을 쓸고 계시는 청소 아주머니에게 활짝 웃으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Epilogue


매일같이 파리의 카페에서 우아하게 크루아상을 뜯고 싶었던 나지만,

어쩌다 보니 '우아하고 여유로운' 에스프레소&바게트와의 만찬은 이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파리의 황량한 겨울 날씨 때문에 매번 배가 고픈 그 순간, 눈앞에 보이는 식당으로 직행했기 때문이라는 웃픈 이야기.

홍과 나의 뽀송한 모습은 이때가 마지막이었다는


후일담이지만, cafe de flore를 가면서 당시만 해도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보다 단순히 바게트에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을 지나치는 줄도 모르고 카페로 직행했다. 여행 내내 수많은 건축물들을 지나치며, 여기 분명히 뭔가 유명한 곳일 텐데 생각만 하면서 지나갔었는데,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도 그렇게 지나친 역사적 흔적들 중 하나였다. 역시 사람은 알면 알수록 많이 보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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