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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꾸꾸 Feb 14. 2023

파리 카페에서 서울을 보다 (1)

카페에서 빵 먹을 때 든 생각


나에게 깃든 버터 허영심


파리에서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다면, 쫄깃한 크루아상과 바게트에 고소한 버터를 올려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는 아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책 읽는 사람에게 지적 허영심이 생기듯 한국인치고 빵과 버터, 유제품 잘 먹기로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버터 허영심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그래서 우리는 파리의 첫날 아침이 밝자마자 생제르맹데프레에서 유명한 Cafe de flore로 향했다. 이 카페가 유명한 이유는 1887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카페이면서 작가, 화가, 철학자 등 수많은 문인들과 예술인들이 대화의 장을 펼쳤던 곳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는 소설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 피카소, 장 폴 사르트르, 헤밍웨이, 생 택쥐베리 등이 있다.


생제르맹데프레의 Cafe de flore


아는 맛이 제일 무섭다


개그맨 김준현 님이 그랬던가. 아는 맛이 제일 무섭다고. 다양한 메뉴가 있었기 때문에 시도해 볼 수도 있었지만, 아는 맛이 더 궁금했다.


우리는 라떼, 에스프레소 그리고 크루아상, 바게트와 어니언수프에 더하여 싱그러운 채소가 필요했던 우리는 추천 메뉴 중 하나인 치커리 샐러드도 함께 주문했다.


아, 프랑스 카페는 대부분 아이스메뉴가 없다는 사실. 물론 ice cup이랑 Tap water를 달라고 해서 직접 제조해 먹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땡길 때면 그냥 스타벅스에 갔다. (심지어 샤를 드 골 공항은 스벅에도 아이스가 안 된다.)


라떼보다 커피우유에 가까웠던 나의 첫 커피


일단 내가 시킨 것은 정확히 말하면 라떼가 아니라 coffee with milk였다. 아직까지 정체를 알 수 없는데, 같이 나온 것이 에스프레소였다면 라떼였을 것이고, 드립커피였다면 카페오레 비슷한 커피였을 것이다. 어찌 됐든 커피와 따뜻한 우유가 작은 티팟에 따로 나와 직접 제조해 마시는 건데, 처음부터 찻잔에 우유를 가득 담아버린 탓에 커피를 조금씩 추가해 가면서 희석커피에서 점차 진해지는 그러데이션 같은 라떼를 마시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카페라떼나 카페오레를 만들 때에는 커피를 먼저 붓고 그 위에 1:1 비율로 우유를 붓는 것이었다. 나는 우유:커피 = 9:1 정도의 비율로 섞은 해괴한 희석 커피우유를 마셨던 셈이지만 결론적으로 매우 맛있게 먹었다는 사실.


치커리 샐러드와 어니언 스프


바게트 먹으러 가즈아


내가 파리에서 가장 기대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쫄깃한 바게트와 버터였다. 빵에 꽤나 미친 여자인 내 파리여행기에서 빵 얘기는 계속해서 나오겠지만, 프랑스 바게트는 정말로 다르다. 일명 겉바속쫄,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하다.


유달리 빵 사랑이 남다른 프랑스에서는 매년 best baquette, best croissant와 같은 대회를 여는데, 그중

파리 노트르담에서 열리는 바게트 경연대회의 우승자는 1년간 프랑스 대통령궁인 엘리제궁에 바게트를 납품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구글맵에 best baquette라고 검색하면 생각보다 많은 가게들을 찾을 수 있는데, 길을 걷다가 빵 나오는 시간에 맞춰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면 높은 확률로 그 가게 문 앞에 '2018 best croissant'와 같은 문구가 붙어 있을 거다.


실제로 우리 숙소 앞 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사람들이 줄 서 있어서 보니 웬 걸, 2018년 크루아상 우승 빵집이었다. (확실히 이 집 크루아상은 겉바속쫄의 정도가 남다르긴 했다. 결과적으로 매일 아침마다 사 먹게 된 기억이 난다)

2018 Best Croissant La Maison d'Isabelle



가장 맛있는 빵집은 과연 어디?


그런데 파리에서 가장 맛있는 바게트를 먹고 싶다면, 베스트 바게트 가게를 찾아가는 것보다 더 쉽고 확실한 방법이 있다. 바로 빵 나오는 시간에 맞춰 갓 나온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바게트를 사 먹는 것. 몽생미셸 가이드 투어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이다. 실제로 나 또한 파리에서 먹었던 빵 중 가장 맛있었던 빵은 아침 7시에 버스 휴게소에 있는 아주 지극히 평범한 Paul 빵집에서 먹었던 김이 모락모락 나는 크루아상와 뺑오쇼콜라였다. (Paul 빵집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상업용 프랜차이즈 빵집)


그만큼 어떤 가게를 가도 빵의 품질이 이미 상향평준화 되어 있고 무엇보다 바게트 가격은 대부분 0.9~1.3유로 굉장히 저렴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런데 지금은 파리 어느 빵집을 가든 대부분 맛있고 쫄깃한 바게트를 맛볼 수 있지만, 사실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들 알고 계셨는가?




인간은 빵 앞에 평등하다


18세기 프랑스에서는 귀족과 농민 사이에 먹는 빵도 달랐다고 한다. 귀족은 귀한 몸이니 소화가 잘 되도록 고운 밀가루로 만든 부드러운 빵을 먹고 농민은 거친 호밀로 만든 딱딱한 빵을 먹음으로써 빵이 일종의 계층을 나누는 수단으로도 사용되었다. 심지어 프랑스혁명이 일어나던 해에는 흉작으로 빵값이 폭등하며 이 거친 빵을 사는데 임금의 대부분을 사용하게 되며 농민들의 분노는 극에 치달았다.


신분제 사회 안에서 국가적인 재정난에도 불구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 귀족들에게 분노한 굶주린 농민과 시민들은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며 프랑스혁명을 일으켰고, 그 결과 중 하나로 빵 평등권의 입법안이 등장하게 된다. 모두가 품질이 같은 빵을 먹어야 한다는 것으로 인간의 평등을 주장한 것이다. 거 참, 빵 하나 가지고 뭐 하는 것들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프랑스 국민들에게 빵이 갖는 의미는 아주 컸던 것이다.


그러한 영향으로 평등의 상징이 된 프랑스 바게트 빵은 아직도 국민 빵으로 자리하고 있고, 21세기 현재의 내가 파리에서 0.9유로에 겉바속쫄 바게트를 맛볼 수 있는 행복을 매일같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가히 '빵 앞에 평등하다'함을 외쳤던 18세기 프랑스 시민들 덕분이지 않을까.



Epilogue

원래 카페 드 플로르에서 생각했던 파리와 서울의 공통점에 대해 써보려고 했는데, 글을 쓰다 보니 바게트에 급발진해버린 글이 되었다. 홍철 없는 홍철팀 격이 되어버렸지만, '파리 카페에서 서울을 보다'라는 제목은 그대로 두고, (1) 편과 (2) 편을 나누어 쓰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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