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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꾸꾸 Mar 05. 2023

내가 원하는 게, 진짜 원하는 게 맞는지 의심해보기

행복으로 가는 1단계


2022년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기 위해 참 다사다난한 1년이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소아과 의사가 되었다. 아니, 아직도 여전히 소아과 의사가 되기 위해 배워가는 과정이지만, 그래도 내 이름 석자 위에 소아과 의사라고 적혀 있는 명찰을 가슴팍에 붙이고 다니게 되었다. 아직 2일 밖에 되지 않았지만, 꽤나 재미있게 배우며 일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과정은 지난했고, 때때로 지루한 공부 속에서 허우적댈 때  ‘내가 정말 의사가 되고 싶었던 게 맞을까?’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나에게 과연 다른 꿈은 없었을까?




꿈이 뭐냐고 묻는다면...


되돌아 보면, 유치원 때는 마술사가 꿈이었고, 초등학생 때는 미술 시간을 사랑했고, 중학생 때부터는 1등이 하고 싶어서 학교 공부를 열심히 했던 거 같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나의 꿈은 의사가 되었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눈 앞의 성적을 올리는 길에만 정진하게 되었다.


지독하게 꿈꿔왔던 것이라도 일상이 되면 흥미를 잃기 마련이다. 사람이라는 것이 간사해서 내 소유가 되면 소중함을 잊곤 하는데, 어차피 그렇게 될 거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의문이 든 것이다.


‘과연 내가 좋아해서 선택한 것일까,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나도 좋다고 생각한 것일까?’





| 끝없는 경쟁의 깔때기



우리나라의 의대 경쟁률은 기이하게 높다. 우리 가족에만 해도 나 말고 의약계열 시험을 준비하는 데 오랜 기간을 쏟은 사람이 또 있는 것만 보더라도 이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웃기게도 수 년의 인생을 갈아넣고 의대에 오면 경쟁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다음 학생들의 관심사는 또다시 하나로 귀결된다.


그것은 바로 '무슨 과 의사가 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이미 좁은 깔대기 출구 하나를 빠져나왔더니, 더 좁은 그야말로 <마이크로 깔대기 입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원하는 과를 가기 위해 다시 경쟁을 하게 되는데, 사실 결과를 놓고 보면 돈을 잘 벌거나 업무환경이 좋은 과로 알려져 있는 인기가 많은 과에는 성적이 높은 학생들이 있기 마련이다.



어쩐지 과거의 내가 꿈을 선택한 것이 내 선택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몰리는 곳을 보고 나도 모르게 맹목적으로 같은 곳을 향해 달리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


어렸을 때는 꿈을 정할 때, 꿈은 한 번 정하면 평생 변치 않아야 하는 것이고 크고 원대한 사명감을 갖고 선택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의 나는 의술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던 게 분명하다. 하지만 네모난 책상 앞에 앉아 수학문제만 풀던 고등학생이 뭘 얼마나 알고 얼마나 큰 사명감이 있었을까. 내가 가졌던 사명감은 사실 그냥 판타지였던 것이다. 그냥 멋있어서 꿈을 선택하는 것은 허영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의 꿈에온갖 멋드러진 이유를 갖다댔지만, 지금의 내가 어린 나에게 말을 건넬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냥 멋있어서 하고 싶다고 해도 돼!"





| 유명한 카페 앞 작은 카페


안국역에 아주 유명한 <런던 베이글 뮤지엄>이라는 카페가 있다. 아침 8시에 오픈런을 해도 30분을 기다린다는 이곳에 나도 여러번 줄을 서봤다. 베이글이 정말 맛있지만 참, 인기가 많아 자주 갈 수는 없는 곳이다.


한번은 친구가 새로운 카페를 추천해줬다.

"카페 Attendy라고 스콘이랑 라떼가 진짜 맛있고 분위기도 엄청 좋아!"


안국역 카페 <Attendy>


그런데 웬 걸, 가보니 런던 베이글 뮤지엄 바로 옆에 있는 카페인 것이다. 런던 베이글 뮤지엄에 한 시간씩 줄을 서봤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옆에 이렇게 좋은 카페가 있는지 몰랐던 것이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골목길 어귀의 작은 스콘 카페가 나의 취향을 저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카페 앞에 유명하고 큰 핫플 카페가 있다면 골목길 카페에 눈길을 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베이글이 아니라 스콘이 먹고 싶었던 것인데, 왠지 베이글을 먹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모두가 달려가는 빛나고 좁은 깔때기 출구 하나. 사실 내가 걷던 길이 출구가 하나인 깔때기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중간 중간 풀밭과 쉬어갈 수 있는 벤치, 그리고 다른 길로 이어지는 예쁜 문들도 있었을 테지만 밝고 환하게 빛나는 출구 하나는 다른 문들을 어둠 속으로 숨겨버린 것이다.


쉼없이 깔때기 출구를 통과하려고 좁게 빛나는 하나의 구멍을 향해 달려오기만 했던 삶이었지만, 다음으로 열어재낄 문은 숨을 고르고 선택해보고 싶었다. 눈 먼 장님으로 말고, 어둠에 적응한 눈으로 소외된 문들도 바라보고 싶었다.


워낙 빛나는 곳이나 몰려가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는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아니 그것을 알더라도 저 너머의 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일지 객관적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그래서 잠시 혼자 멈췄던 것이다.




| 일 년의 경험 끝의 깨달음


그렇게 병원 인턴 생활을 마친 뒤 1년간 무엇이 되었든, 마음 가는 대로 배우고 일해보고 싶었다. 가족같은 친구들과 집같은 병원, 교복같은 수술복을 벗어던지고 대뜸 병원 밖으로 나온 나는 벌거벗겨졌다. 의술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그저 대뜸, 회사에 들어갔다. 대뜸 엑셀을 공부하고 데이터 정리를 했다. 그러다 우연히 마음건강을 위해 일하는 작은 스타트업을 알게 되었다. 흥미가 돋았다.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곳에 대뜸 연락했고 할 수 있는 일을 맡게 되었다. 하루종일 마음에 대한 공부를 하고 글을 썼다. 그러다가 다시 대뜸 정신과의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순식간에 회사를 나와 시험 공부를 했지만 불합격하기도 했다. 갑자기 또다시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다니고, 광화문 교보문고를 회사처럼 출근하며 책을 읽기도 했다.


부모님 심지어 할머니까지도 나를 "얘가 어쩌려고 이러나"하며 걱정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난 단지 내가 언제 행복한지, 앞으로 어떻게 살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게 복잡다단했던 1년을 보낸 뒤 깨달은 게 있다면 이런 것이다.


첫째로, 꿈은 언제나 필요하다는 것이다. 꿈은 '직업'이라기 보다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것이다.

둘째로, 꿈은 변한다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건가? 하지만 어릴수록, 혹은 앞이 보이지 않을수록 꿈을 꾸는 것이 너무 현실성이 없고 멀게만 보여 꿈을 꾸는 것조차 벅찬 일처럼 느껴지고는 한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어린 내가 꿨던 꿈은 '반드시 이뤄야만 하는 목표'였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벅차고 힘들고 절박해졌던 것 같다.


그러나 꿈은 목표가 아니다. 목표는 내가 원하는 꿈에 다가가기 위한 중간 이정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해도 꿈 전체가 무너져내린 것이 아니다. 다른 목표를 거쳐 꿈을 향해 다가가면 되기 때문이다.


대학에 가는 것이 꿈이라고 하기 어려운 이유다. 원하는 대학, 원하는 과에 가는 것은 내가 원하는 삶과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수많은 방법들 중 하나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해도 다른 길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좌절할 수도 있다. 나도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으로 가기 위해 걸어온 길을 보면 항상 PlanA는 좌절되고 Plan B, 때로는 Plan C, D를 선택해 왔다. 대학은 재수를 했고, 원하는 과는 갔지만 소망했던 대학은 아니었고, 소아과에 오게 된 것도 Plan C였다.


하지만 중요한 건 Plan A들로만 이루어진 완벽한 직선형의 지름길로만 이루어진 삶이 마냥 행복하고 성공한 삶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속도로의 지루함처럼 말이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오히려 재미나다.




여전히 세상에는 통념적으로 성공하고 행복한 삶의 형태가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정해진 길을 가는 것이 익숙한 세상에서 갑자기 행복한 삶의 정의가 다양해지고 있는 현재 우리는 혼란을 겪고 있다.


'창의력, 그런 건 어떻게 기르는 건가요? 어떤 학원을 가면 되나요?'


차라리 확실한 방법을 다 알려줬던 예전이 나은 건가 싶기도 할 테다. 이럴 때면 방법을 찾는 데 골몰하느라 나의 원래 꿈이 무엇이었는지 잊게 되고는 하는데, 그럴 때마다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결국 다 행복하려고 하는 일이란 것을 말이다.


우리 꿈을 향해 걸어가는 길이 너무 고통스럽다면, 거창하게도 말고 하루에 1분만이라도, 자기 전 침대에 누웠을 때만이라도 생각해보자.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하루에 행복 한 방울 더해줄 일이 뭐가 있을까?"


난 내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출근을 해야 하지만, 아침에 달달한 카야잼에 버터를 올린 토스트를 먹고 갈 거다. 그거면 행복 한 방울 떨어뜨린 것이다.




| 다음 편에서는

꿈, 목표, 직업은 다른 것이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원하는 직업을 갖고 원하는 목표를 이루는 것 또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정말 중요한 부분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프로페셔널 스튜던트>라는 책을 읽어보았다.

우리,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오늘을 어떻게 살면 좋을지에 대해 생각해보며 글을 써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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