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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꾸꾸 Mar 18. 2023

조금 버거운 일이 동시에 겹치는 날들의 연속

신생아중환자실 일기 #1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 나는 흔히 다음 중 한 가지 행동을 하는 것 같다. 아예 멈춰버리거나 일단 뭐가 됐든 움직이는 것이다. 사실 두 쪽 모두 머릿속은 텅 빈 공허함 뿐이라는 점에서 별반 다를 건 없다.



우두커니 멈춰버리는 순간


어제 오전에 쌍둥이가 태어나면서 갑작스레 상황이 분주해진 탓에 몸은 움직이고 있었지만, 머리는 멈춰버렸다.

  눈동자를 통해 나의 상태를 직감한 동기가 어느새 내가 해야  일의 절반을 후딱 해치우고는 내게 말했다.


"언니 내가 기록은 써놨어!"


반짝. 풀린 동공에 초점이 돌아왔다.

 근래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일이 적어 느긋하게 공부도 하고 여유를 부렸는지 갑작스레 몰아친 상황에 정신을 차릴  없었나 보다. 2 만에 일에 적응했다고 생각했던 나의 자만을 다시 깨닫는 순간이었다.


"방금 내가 아는 언니가 아니었어. 어서 돌아오라구!"


내가 정신이 나가면 그렇게 티가 나는지 몰랐다. 짧은 순간이었는데 2  인턴시절의 기억과 감정, 미세한 근육의 떨림과 가슴의 일렁임이 스쳐 지나갔다.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내가 우두커니 멈추는 순간은 나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 겹치는 순간이다.




오전에 쌍둥이가 태어나는 것은 미리 알고 있었지만, 예상외의 일이 고작 몇 가지 더 겹쳐버렸다고 어떤 일부터 처리해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렸던 나는 고작 일을 시작한 지 2주가 된 1년 차 소아과 의사이다.


일을 하며 가장 떨리고, 무섭고 스트레스받는 순간들의 공통점은 바로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한 일이 주어졌을 때이다.



무지에 대한 무지



병원은 쉽게 풀리지 않는 일들의 연속이다. 비슷해 보이지만 매번 다른 상황들이 반복되고 최선의 처치를 고민한다.


"아기가 분유를 토해요."

"토하는데 산소포화도도 같이 떨어져요."

"토하는데 배는 부드럽고 괜찮아 보이긴 해요."


말을 하지 못하는 아기들을 보며 우리는 항상 가장 흔한 가능성과 가장 최악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야 하지만, 어려운 것은 최악의 가능성이 대비한다고 무한정 연약한 아이들의 혈관을 찌를 수도 없는 노릇이라는 점이다. 찰나의 순간에 괜찮은지 이상한지 사이에서 판단을 내리는 것은 나의 몫이다.


문제는 나의 결정이 아기의 상태와 직결되기 때문에 재빨리 최선의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을 먼저 확실히 인지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재빨리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최선의 행동이기 때문에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확실히 구분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초보일수록 내가 뭘 모르는 지도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나는 지금, 더디게, 이상한지 괜찮은 건지 판별하는 눈부터 기르고자 노력 중이다.



지루함을 원해요

그건 성장했다는 뜻이거든요



모든 일은 처음 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고, 누구나 처음 하는 일은 어렵고 더디다.

어떤 일이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반갑게 생각해도 된다. 숙련되어 익숙해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신생아 중환자실에서는 작은 아기들을 무럭무럭 키우기 위해 영양소와 칼로리를 고려해 분유와 수액량을 계산하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이제 막 계산기 좀 두드리나 싶었는데, 조금이라도 특수한 분유나 수액을 보충하는 아기의 밥을 계산할 때면 머리에 버퍼링이 걸려버린다.


언제쯤 익숙해질까?

간사한 인간은 오늘도 지루함을 원한다. 지루함은 곧 성장이다.

오늘도 빛의 속도로 계산기를 두드리는 펠로우선생님을 보면서 나는 언제쯤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생각한다.



Epilogue

물어보기 전에 답을 내리고 물어보는 것은

실력을 키우는 하나의 방법이다.

근데 아직은 질문하는 것조차도 버퍼링이 걸린다는 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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