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중환자실 일기 #2
소아과에 온지 거의 한 달이 되어간다.
나는 사실 어린이들이 어색했었다. 아이들을 보며 한없이 엄마미소를 짓는 원래부터 소아과의사가 꿈이었던 나의 친구 눌을 볼 때마다 나는 어색하게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사촌동생이 눈만 뜨면 끝말잇기와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를 하자며 쫓아다닐 때 도망다니던 나로서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인턴을 마치고 친구 눌과 1년을 놀고 여행다닌 끝에 그녀와 함께 소아과 의사가 되었다. 이제 와서 보면 눌과 친해진 게 운명이었을지도...)
놀랍게도 "난 귀여운 애들만 좋아"라고 말하던 나는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 아기들 좋아했었네"
지금도 침대바구니에 누워 있는 아기들이 눈 앞에 어른거린다.
우쭈쭈쭈 ~ 우웅 그랬쩌 ~ 왜 울어. 으응 미안해 미안해~
신생아중환자실에 울려퍼지는 소리들이다.
얘는 왜 이렇게 표정이 억울하지? 억울해서 더 귀여워. 얘는 머리가 곱슬머리네.
안고 있는데 내 무릎에 방귀를 뀌어도, 신체검진을 하려고 기저귀를 열었는데 오줌을 쌌어도 귀엽다. 아기들을 왜 세로토닌(행복호르몬) 덩어리라고 하는지 실감하는 요즘이다.
마냥 아기들이 귀엽다고 생각하며 싱글거리던 어느 날, 신생아중환자실에 아기를 맡길 수 밖에 없던 부모의 눈물을 보고 사뭇 어려운 감정을 느낀 하루가 있었다.
신생아실에서 분유를 먹다가 산소포화도가 자꾸만 떨어져서 신생아중환자실로 옮기게 된 아이가 있었다. 이런 일이 간혹 있기는 하고 별 문제 없이 몇 일 있다가 집에 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마냥 2kg도 안 되는 이른둥이들 사이에 건장한 유치원생이 왔다며 끄앙거리며 귀여워했다.
실제로 분유를 잘 먹는지 확인하려고 귀여운 아기를 직접 품에 안고 분유를 먹여보았다. 따끈하고 말캉한 덩어리가 품에 폭 안겨 엽기토끼같은 얼굴을 하고 눈을 감고 있는데 그저 행복감과 평온함이 느껴졌다. 이런 게 옥시토신과 세로토닌이 분비될 때의 감정일까? 나도 이런데 실제 아기 엄마는 아기를 볼 때 대체 어떤 감정을 느낀다는 건지 사실 상상이 잘 안 됐다.
그렇게 분유를 조금은 시원찮지만 잘 먹고 움직이기도 잘 움직이는 아기를 보고 엄마 아빠에게 간단한 설명을 드리러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 아기가 먹을 때 조금 숨 쉬는 게 미숙한 모습이 보여서..."
"흐윽... 흑"
아기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당황했다. 하루이틀 보고 괜찮으면 집에 갈 가능성이 높다는 말씀을 드리러 나갔는데 내 머릿속도 하얘졌다. 단 1%라 하더라도 다른 큰 문제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말을 도대체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몰라 나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엄마의 머릿속에는 온갖 최악의 상상들로부터 온 두려움과 아기와 떨어져야 하는 고통이 공존했을 테다. 순간 '유치원생이 왜 이런 데 왔어' 하며 그저 귀여워하기만 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교수님들이 부모들에게 설명할 때 보면 주옥 같은 말로 위로도 건네는 동시에 최악의 가능성과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을 알아듣기 쉬운 말로 설명하는 마법같은 말솜씨에 감탄하고는 하는데, 아직 나는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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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만삭으로 나온 아기들은 분유 먹을 때 꿀떡꿀떡 잘 삼켜야 집에 갈 수 있는데, 아직 삼키기 운동이 미숙해 밥 먹을 때 숨을 못 쉬는 모습이 보이면 분유 먹는 연습이 될 때까지 신생아중환자실에 잠시 왔다가 집에 가게 된다. 물론 삼키기 운동이 미숙한 것이 단지 연습이 안 돼서 그런 게 아니라 뇌나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초음파 검사도 하게 된다. 만약 검사에서 문제가 없다면 아마 분유 먹는 연습이 덜 되어서 그런 것으로 판단하고 산소포화도를 모니터링하며 연습이 충분히 되면 집으로 보내게 되지만, 만에 하나라도 문제가 발견된다면 입원기간은 더 길어지게 된다. 100명 중 1명은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99명은 괜찮다라는 말을 드려도 막상 당사자가 되면 1명은 문제가 있을 가능성에 더 귀를 기울이기 마련이다. 어떤 말로 말을 해야 최대한의 정보를 주며 마음까지 어루만질 수 있을까.
가끔은 한국말인데도 외국어를 하는 것처럼 말문이 턱 막힐 때가 많다.
칭찬과 꾸중 중에 사람을 더 성장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 칭찬에 춤을 추고 비판에 꼬리를 풀썩 내린다.
물론 꾸중을 통해서도 성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무분별한 꾸중이라면 ‘배우고 싶어 배운다’가 아니라 ‘혼날까봐 배운다’로 배움의 의미가 변질되기 마련이다. 그 결과 혼나지 않을 수준으로만 공부하고 그 외의 것은 꼴도 보기 싫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취의 평가는 혼이 났는가 칭찬을 받았는가로 결정된다. 중심이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칭찬을 통해 성장하는 경우는 다르다. 모르는 것에 대해 얼마든지 질문할 수 있고, 모르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환경에서 자연스레 선배들의 지식과 여유에 동경어린 시선을 갖게 된다. 그리고 나 또한 빠르게 발전해 그들처럼 되고자 하는 열망있는 자세로 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나를 열망 있는 자세로 살게끔 해준다. 본받고 싶은 교수님과 선생님들을 보며 나는 그들의 말투, 행동, 일하는 방식 모두를 복사+붙여넣기하고자 폭풍 받아쓰기를 하고 있다.
신생아중환자실 의사들은 매일 아침 8시에 신생아심폐소생술 훈련을 한다. 산부인과에서 분만시 아기 상태가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면 소아과 의사들이 아기를 받기 위해 미리 심폐소생술 장치와 함께 대기하는 Attending이란 것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이 아기의 운명을 결정짓기 때문에 매일 같이 훈련을 해두는 것이다.
하루는 신생아심폐소생술 교육을 하며 펠로우 선생님께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이게 스트레스인 이유는 모르기 때문이에요. 왔다갔다 몸이 고생하는 건 별로 스트레스도 아니죠. 모르니까 할 때마다 스트레스인거야.”
맞다. 모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수백번 반복해 익숙해진 일은 지루할 뿐. 스트레스는 모르는 데 닥친 일을 빠르게 처리해야 할 때 받는다.
해답은 하나라도 더 아는 것이다. 나에게 닥쳐올 수많은 일들 중 처리가능한 범위가 늘어날수록 사람은 여유롭고 너그러워지며 그 안에서 친절함이 나올 수 있고 일하는 순간이 즐거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