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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꾸꾸 Apr 03. 2023

예술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1)

'내가 느끼는 게 예술이지 뭐' |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 (1)

김영하 작가님이 한 방송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작가는 숨은 의도를 갖고 글을 쓰지 않아요. 문학 작품이 존재하는 이유는 독자들이 다양한 감정을 느끼도록 그 과정을 통해서  자기감정을 발견하고 타인을 잘 이해하도록 하는 거예요."

_<알쓸인잡> 중에서

출처 : 알쓸신잡
출처 : 알쓸신잡


정답을 찾는데 익숙한 우리들이다. 초등학생 때는 선생님이 질문을 던지면 너도나도 먼저 대답을 하고 싶어서 손을 드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중학생만 되어도 조용해진다. 정답을 알고 있을 때만 답해야 할 것만 같다.

더불어서, 성인들이 모인 곳이라면 더더욱 고요한 정적이 흐른다. 파리가 지나가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것은 특히 수업이나 강의가 끝난 뒤의 질문시간이다. 모르는 것을 묻기 위함이 질문의 목적인데, 마치 "굉장히 좋은 질문입니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통찰력 있는 질문을 던져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이 있기 때문일까?




오늘 낮에 언니와 함께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 전시회를 다녀왔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그림은 무섭고, 저 그림은 뭘 그린 건지 모르겠고, 이 그림은 현미경 확대한 그림 같네. 내가 너무 무지한건가?"

최근에 여행을 다녀온 뒤부터 예술을 향유할 줄 아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생기면서 설렘을 갖고 다녀온 현대미술 전시회였는데, 한마디로 감상평을 정리하자면, 물음표 가득한 오묘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도 작가의 숨은 의도를 찾아보려고 용을 쓰는 나에게 한마디 던지고 싶다.


"그냥 보고 싶은 대로 보면 돼"



그렇다. 오늘은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난 아직 현대미술이 뭔지 잘 모르겠어



나름 최근에 미술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책 좀 읽었다고 해서, 꽤 자신감 있는 태도로 우리 언니를 데리고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 전시회가 열리는 삼성역 마이 아트 뮤지엄으로 향했다.


"언니, 이번에 한독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서 독일 루드비히 미술관에서 피카소랑 앤디워홀 그림을 빌려줬대!!"


그리고 들어간 미술관.

웬 걸, 이 그림들은 도대체 뭘 의미하는 거지?




나처럼 미술관이나 박물관과 거리를 두고 살았던 사람이 문화생활을 시작하는 경우 관심의 대상이 다음의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1. 처음엔 미술관 출구 끝의 굿즈샵이 최종 목적지가 된다.

2. 그리고 그 다음엔 예쁜 그림들.

3. 예쁜 그림들만 보고 우와, 우와 하다 보면 왠지 교양 없는 사람이 되는 것만 같은 기분에 그림의 의미나 작가의 의도를 생각해보려 노력한다.


그래도 내가 3단계 정도는 갔다고 생각해서 엣지 있는 관람을 기대하며 미술관 문을 열어재꼈는데, 웬 걸 이렇게 심오할 줄이야.


관람객들 중에 미술을 전공한 사람인건지 '모든 요소를 넣은 작품이네', '도형들을 배치한 구조 설계가 절묘하네'와 같이 뭔가 있어보이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또 우두커니 서서 한 그림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에 비해 사소한 감상평을 나누던 나와 언니는 누가 들을까봐 서로의 귓속에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그러나 미술관에 가보지 않았다고 겁먹지 마시라. 우리와 같은 감상을 하는 이들도 있으니 말이다. 내가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술인 것이다.





별 거 없는 감상평

시작합니다.


1. <잠자는 고양이> _에발트 마타레

- 쇼파에 누워 있는 우리 엄마


2. <분홍 흔적이 있는 흰색 77번> _ 안토니 타피에스

- (홍언니) : 황망해.

- (윤꾸꾸) : 메소포타미아 문명 같다.

- (홍언니) : 커피 쏟은 거 같애.


3. <Black and White No. 15> _ 잭슨 폴록

- (홍언니) : 머리카락 같네

- (윤꾸꾸) : 처절해 뭔가


4.

- (홍언니) : 현미경.

- (윤꾸꾸) : 그러네 조직학 같다.

5. 앤디워홀

한 명만 그려도 되는데 왜 2명을 그린걸까?

앤디워홀 하면 색깔별로 그려진 마릴린 먼로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냥 디자인적 측면에서 똑같은 그림에 색감을 달리하여 그린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안 사실은 대상을 반복적으로 그림으로서 거대한 복제품들이 양산되고 있는 산업사회 시대상을 꼬집는 의도를 담았다고 한다. 팝아트 작품들을 보면 그냥 슈퍼마켓 풍경이나 통조림 캔같은 걸 왜 그렸나 싶었는데, 그런 의도가 있었구나 싶었다.


6.

역대급이다. 정말 보면 무서워진다. 꿈에 나올 것 같다. 집에 이 그림을 걸어놓으면 정말로 귀신을 불러올 것만 같다. 공포영화였다면 분명히 이 구멍에서 귀신이 기어나왔을 것이다.


7. <기대>

이 작품은 제목이 다했다. 지금 보면 웬 미술작품에 곰발톱으로 할퀸 자국 같은데, 그에 비해 <기대>라는 희망적인 제목이 역설적이다. 자세히 보면 세줄의 검은 선은 그림이 아니라 캔버스를 찢어놓은 자국이다.


- (윤꾸꾸) : 언니, 난 여기서 희망이 느껴져.

- (홍언니) : ?

- (윤꾸꾸) : 이 불투명한 캔버스를 찢음으로서, 캔버스가 가로막고 있던 너머의 세상을 마주할 수 있게 된거지.

- (홍언니) : 난 이 구멍 너머의 색이 검정색이라 오히려 희망이 없어 보여.

- (윤꾸꾸) : 아니, 그건 단지 액자에 그림이 걸려있기 때문이야. 만약 창문에 그림이 붙어있다면 틈 사이로 창밖의 빛이 새어나오지 않을까?


8.

- (홍언니) : 뭐가 생각나?

- (윤꾸꾸) : 주식. (feat. 미국장은 우상향)

그런데 자세히 보면 파리가 함께 굳어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임을 나타내려고 했던 걸까?

멀리서 관망하는 우리의 눈에는 위로 뻗은 우상향의 곡선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급격하게 출렁이는 하락 직선들 사이에 파리가 굳어 있다. 이걸 보고 하락장에서 소리를 지르는 개미들을 떠올린 사람이 나말고도 분명 또 있지 않을까.




정답을 찾지 마세요

니 생각이 정답이니까



"화가는 단순히 자연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창조해야 한다"_파블로 피카소

"자연을 그린다는 것은 똑같이 베끼는 것이 아니라 화가가 느낀 바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_폴 세잔


사진기가 발달하며 더 이상 '똑같이 그리는 것'의 의미가 사라지고, 산업혁명을 거치며 미술품의 평가에 '투자가치'라는 요소가 더해졌다. 예술가들은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고 예술의 범위가 아름답고 심미적인 것만 그리던 19세기 이전의 미술과 다르게 급격히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예술이라는 틀에는 그림으로부터 얻는 내적 체험과 그림 너머의 것, 그림을 그리는 행위와 이에 투자한 시간 전체까지 모두 담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불명확한 예술의 경계선은 다분히 관람자 개개인에게 서로 다른 내적 체험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예술에 정답이 없는 이유가 아닐까?


정답을 찾는 데 익숙하고, 정답이라 불리우는 기준에 내 삶이 부합하는 정도에 따라 안정감을 느낀다. 획일화된 기준은 단지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한데 말이다.


그러니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잣대가 있다면, 한 발자국 떨어져 생각해보자. 과연 나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말이다. 인생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인생도, 예술도 정답이 없다.






다음 편에서는 ...


그래도 아는 만큼 보이는 법. 조금이라도 이해를 더하고자 현대 미술에 관한 책 <아트인문학: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과 <태도가 작품이 될 때>를 읽어보았다. 다음 편에서는 현대의 예술가들의 외침에 무엇이 담겨있었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틀 밖에서 생각하기. 갓생사는 현대인들과 창의력이 중요해진 챗GPT 세상에서 중요한 키워드 아니겠는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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