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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혜성 Nov 16. 2023

[ott.NETFLIX] 성난 사람들:BEEF

금쪽이의 거울치료기


7-c-7-6-4-F-1...


대니 조(스티븐 연)는 숯불화로를 환불하러 간 마트에서 환불 대신 차 번호를 외워 온다. 사연은 이렇다. 영수증이 없어 환불에 실패한 대니는 적잖이 짜증이 난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려는 찰나 고급 SUV가 경적을 울려댄다. 그것도 꽤 길게. 그리고 운전자석에서 등장한 가운뎃손가락. 그 손가락은 ‘분노’, ‘우울’, ‘불만’, ‘ 불안’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침잠해 있는 대니를 폭발하게 한 트리거가 된다. 그렇게 시작된 추격전. SUV는 음료와 쓰레기들을 던지며 난폭운전을 시전하고 대니의 입에선 ‘F*ck’이 쏟아져 나온다. ‘한문철의 블랙박스’에서 특집으로 다룰만한 ‘로드 레이지’는 대니의 패배로 끝났지만 차 번호 “7-c-7- 6-4-F-1...”를 남겼다.



6-R-K-P-6-3-2...



에이미(앨리 웡)의 집에 초인종이 울린다. 지나가던 도급업자가 옥상 도관의 지지대가 없어 누전될 수 있다며 알려준다. 얼마 전 리모델링을 끝낸 에이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업자를 집에 들인다. 집안의 이곳저곳을 살펴본 한국인 업자는 차고의 수납장이 습기 때문에 틀어진 것도 알려준다. 오 고마워 라! 한국인 도급업자는 화장실을 사용해도 되냐 묻는다. 에이미는 그에게 화장실을 안내해 주고,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 에이미가 남편과 통화하는 사이 한국인 업자는 화장실을 잠시 사용하곤 급하게 떠났다. 뭔가 이상하다. 화장실 문을 연 에이미의 눈앞엔 유럽산 나무와 수건, 벽에 말 그대로 갈겨진 오줌이 펼쳐진다. 에이미는 도망가는 남자를 향해 분노의 질주를 하지만 따라잡긴 역부족이다. 하지만 그가 타고 가는 낡은 트럭의 번호판을 외웠다. “6-R-K-P-6-3-2...”




<성난 사람들: BEEF>의 이성진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성난 사람들’은 몇 년 전 내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신호대기 중 초록색으로 바뀐 걸 빨리 보지 못하자 뒤에 있던 백인 운전자가 경적을 마구 울리고 소리를 지르고 난폭운전까지 했다”라 밝혔다. 작가의 경험(난폭운전)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에이미의 일본인 남편 조지(조지프 리)와 시어머니 후미 나카이(패티 야스타케), 대니의 동생 폴(영 마지노)과 사촌 아이삭(데이 비드 최)등이 얽히고설키며 서사를 전진해 간다. 대니와 에이미가 서로를 향해 당긴 방아쇠는 주거니 받거니 하며 총알을 키워나간다. 비단 미국사회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한국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최근 들려오는 뉴스의 9할은 분노와 관련되어 있다. 도로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도. 한번 발사된 총알은 상대방을 뚫고 더 큰 총알이 돼 날아온다. 누구든 ‘로드 레이지’에 참전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만 같다.

총 10부작으로 제작된 넷플릭스의 <성난 사람들: BEEF>는 에미상 후보에 올라가 있다. 이성진 감독은 “아시아 배우와 크리에이터 팀이 만든 드라마가 에미상 후보에 올랐다면, 10년 후에는 얼마나 더 훌륭한 작품들이 많이 나올까를 생각하면 신난다.”라고 말했다. k-장남의 무게를 이고 지고 안고 있는 대니, 그런 대니에게 ‘좋은 한국여자 만 나 결혼’을 재촉하는 k-부모님, 설렁탕집에서 음식이 나오기 전에 밑반찬 깍두기를 안주 삼아 마시는 맥주, 동양인의 유당 불내증에 대해 논의하는 장면 등 곳곳에 묻은 아시아의 정서는 한국인으로서 드라마를 보는 재미를 한층 업그레이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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