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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혜성 Nov 25. 2023

[책 ] 김영하의 『작별인사』

‘기계의 시간’과 ‘작별인사’

손목 위의 스마트워치가 나의 심박수를 체크해 주고 위험이 감지되면 119에 신고도 해준다. 원한다면 집에 들어가기 전에 IoT(사물인터넷)로 에어컨을 미리 켜 둘 수도 공기청정기를 실행시킬 수도 있다. 현인류의 생명 연장과 삶의 편의는 기술이 책임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영하의 장편소설 『작별인사』는 가까운 미래, 눈부시게 발전한 기술이 인간의 삶에 더 깊숙이 파고든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철이'는 평화로운 휴먼매터스 캠퍼스에서 자상한 아버지 '최진수'박사와 '칸트', '갈릴레오', 로봇 고양이 '데카르트'와 살고 있었다. 아버지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캠퍼스 밖을 나선 그날, 등록되지 않은 '휴머노이드'라는 오해를 받고 끌려가게 된다. 수용소엔 구형 휴머노이드들과 유기된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 '민이' 그리고 인간 '선이'가 있었다. 살기 위한 폭력이 있는 곳. 늙지 않고 낡아버린, 주름 대신 자외선에 빛바랜 휴머노이드일지라도 삶에 대한 집착은 인간과 다르지 않았다. 그것이 비록 삶의 의지를 프로그래밍한 것일지라도.

인간 군상, 아니 휴머노이드 군상은 혼란스러운 AI 세계의 축소판을 여실히 보여준다. 인간은 더욱 인간스러운 로봇을 만들지만 그들은 인간의 주체의식과 자유의지까지 닮아버려 스스로 삶의 형태를 선택하고 개척한다.

『작별인사』는 여타의 인간로봇이 등장하는 소설과 다르게 초반부터 '철이'가 로봇이라는 것을 밝히며, 주인공의 정체를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휴머노이드', '클론' 또는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한다. 리얼 휴먼이 소수가 되는 시대에 사람으로 산다는 것, 로봇으로 산다는 것 또는 인간의 보험용으로 산다는 것은 언제까지 상상으로 머물 수 있을까?



『작별인사』는 2020년 구독형 전자책 플랫폼에서 서비스 이용 독자에게 발표된 소설을 다듬어 출간되었다. 2년 전 초고의 가제는 '기계의 시간'이었다고 한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오히려 초고는 '기계의 시간'이 어울렸다면 전면적인 개작을 통해 『작별인사』에 더 어울리는 소설이 되었다고 한다. 책장을 덮으며 이 말에 백번 동감한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책을 덮으면 약간은 의아했던 제목이 와닿는다. 책 표지의 엄유정 작가 작품 속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에게 건네본다. 작별 인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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