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hale, 2023
272kg의 거구로 세상을 거부한 채 살아가는 대학 강사 ‘찰리’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느끼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10대 딸 ‘엘리’를 집으로 초대한다. 그리고, 매일 자신을 찾아와 에세이 한 편을 완성하면 전 재산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네이버 영화 소개 중에서)
어떤 배우는 영화의 미장센이자 몽타주가 된다. <더 웨일>은 브렌든 프레이저의 영화다. <조지 오브 정글>, <미이라> 시리즈를 통해 스타로 자리매김했지만, 영화계 유력인사의 성추행으로 인한 충격, 이혼 등으로 10여 년간 커리어가 정체된다. 촬영 중에 생긴 부상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체중이 늘고 탈모가 오기도 했다. 전성기와 달라진 그의 모습과 어느 인터뷰에서 눈이 충혈된 사진이 합쳐지며 서양권에서는 ‘불쌍한 남자’의 밈으로 소비되는 지경까지 이른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이런 브렌든 프레이저의 이미지를 <더 웨일>에 중첩시킨다. 몰락한 레슬러의 재기 과정을 담은 자신의 2009년 작 <더 레슬러>의 주연 배우를 교통사고로 얼굴을 수술하고 커리어가 망가졌던 미키 루크로 했던 것처럼 말이다. 272kg의 초고도비만 캐릭터로 분한 브렌든은 ‘인생에 단 한 번 보여줄 수 있는 연기’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열연을 선보인다. 영화가 스크린과 관객 사이에 있다면 브렌든은 존재 덕분에 <더 웨일>은 관객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됐다.
<더 웨일>은 브렌든의 영화이지만 대런 감독의 이름을 지울 수는 없다 <레퀴엠>, <블랙스완>, <노아>, <마더!>에서 보여줬던 자기파괴와 중독, 반종교적인 테마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인가’라는 염세적인 세계관처럼 보이지만 진실성에 대한 질문, 관계에 대한 믿음, 구원을 향한 탐구가 진지하게 펼쳐진다. 대런 감독의 영화치고 당황스러울 정도로 그의 작품세계에서 벗어나지 않고 확장된 기분 좋은 반전이기도 하다.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은 <더 웨일>을 여닫는 키워드다. 『모비 딕』을 읽고 쓴 엘리의 에세이가 말 그대로 말 그대로 영화의 시작과 마무리에 쓰이기도 하지만 소설과 에세이의 상징들이 영화 전반에 깔려있다. 미국에서 8학년, 한국 나이로 15살에 쓴 에세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애이해브는 모비 딕을 잡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믿지만 그렇지 않다. 고래는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내 삶에도 적용된다.’
모비 딕은 그럴 의도가 없었겠지만 애 이해 보는 모비 딕 때문에 다리를 잃었다. 초고도비만 환자를 비하하는 단어이기도 한 고래는 찰리와 연결된다. 감정 없는 고래도 찰리의 상황과 같다. 그는 동성애인 엘런과 사랑에 빠져 아내와 딸을 등졌다. 두 사람에게 감정이 있어서 떠난 게 아니라 동성애인과의 사랑이란 감정이 커졌을 뿐이다. 악의는 없었겠지만 찰리의 선택으로 남겨진 엘리는 애이해브처럼 불가역적인 상처를 입었다.
문학 강사인 찰리는 학생들에게는 진실성을, 8년 만에 찰리를 찾아온 아내 메리에게는 타인에 대한 관심을 강조한다. 어떤 걸 강조한다는 건 과잉되었거나 결핍되었다는 사실이다. 찰리에게 두 가지는 결핍에 가깝다. 학생들에겐 에세이를 쓸 때 진실해야 한다고 하지만 자신은 웹카메라를 꺼둔 채 수업을 진행한다. 사람은 타인에게 무관심할 수 없다 말하지만, 매일 똑같은 주문을 하는 찰리와 소통하려는 피자 배달부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찰리의 결핍은 엘런의 죽음이 진실성과 관심의 부족에서 비롯되었다는 트라우마로도 보인다.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종교적인 믿음은 마지막까지 놓을 수 없는 엘런을 진실한 사랑으로 보듬었고, 거식증에 걸린 그를 살리기 위해 상태를 살피며 관심을 쏟았지만 비극적인 결말을 막을 수는 없었다. 세상에 태어나 잘한 일이 하나라도 있다는 사실. 즉 본인에게 결핍된 것들이 존재하고 타인을 구원한다는 사실을 찰리가 증명하는 방법은 딸이자 최고의 에세이를 남긴 엘리가 진실하고 타인에게 무관심하지 않은 사람임을 확인하는 것뿐이다.
이 증명은 어떻게 보면 비겁해 보이기도 하지만 죽음을 앞둔 일주일 동안만은 찰리가 진실해 보인다. 8년 만에 딸에게 연락하고 분노에 찬 엘리의 모진 말들을 꿋꿋이 받아들이며 자기 잘못을 고백한다. 찰리의 사진을 찍고 조롱하는 글과 함께 SNS에 올리고 타인과의 대화를 녹취해서 허락도 없이 공개해버리는, 어쩌면 엄마인 메리의 말처럼 사악해 보이기도 하는 엘리의 행동을 그대로 수용한다. 이런 진실성에 대한 탐구와 관심을 통해 찰리는 좁은 방안에 갇힌 초고도비만환자에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바다로 나아가는 자유로운 고래가 된다.
토마스는 찰리와 반대의 인물이다. 토마스는 처음에 방문 선교사라고 소개했지만, 사실 교단의 돈을 훔쳐 달아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를 엘엘리에게 고백하며 스스로와 타인에게 진실했던 이 순간 덕분에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이 외에 항상 거짓을 말했던 토마스는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못하고 겉돈다. 팸플릿을 통한 선교가 소용없다고 말하고 도움의 손길을 통해 선교하겠다고 돈까지 훔쳐 달아났지만, 도움이 필요했던 찰리에게는 내면의 혐오만 표출할 뿐 관심을 두고 진실하게 다가가지 않는다.
찰리는 에세이를 읽어달라는 요구를 토마스와 엘리 두 사람에게 한다. 내용이 똑같은 에세이를 읽었어도 그 효과는 전혀 다르다. 토마스의 낭독은 찰리의 육체를 살리지만 고통을 멈춰주지는 못한다. 찰리의 육체적 고통이 최고조에 다다랐을 때 엘리가 에세이를 낭독하고 찰리의 영혼은 구원받는다. 에세이를 통해 진실을 말했던 엘리와 다르게 토마스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건 구원에 대한 자기 생각이 아니라 교단의 교리와 활자로 찍혀진 성경 구절이었을 뿐이다.
『인생의 역사』에서 신형철 평론가는 말한다. ‘무신론자는 신이 없다는 증거를 쥐고 기뻐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염려하는 사람이고, 신이 없기 때문에 타인을 위해 위한 사랑을 발명해낼 책임이 있다고. 자신은 신이 아닌 이 생각을 믿는다’고.
<더 웨일> 찰리는 ‘자신에게 구원은 필요 없다’고 말하는 무신론자다. 구원이 필요 없는 그에게 남아있는 7일이란 시간은 시선을 피하고 싶을 정도로 괴롭고, 끔찍하고 고통으로 가득하다. 신이 창조한 이 세계에서 일주일 동안 찰리는 육신의 죽음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무신론자인 찰리는 신이 아닌 사람으로서 마지막 7일을 창조한다. 그가 세상에 남기고 증명하려는 진실한 마음. 타인에게 무관심할 수 없는 사람의 본성은 결국 찰리의 영혼을 구원한다.
브렌든 프레이저는 미국배우조합상(SAG)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 ‘찰리는 후회라는 뗏목을 타고 희망의 바다에 나가 있는 인물’이라고 수상소감을 남겼다. 후회의 뗏목은 강력한 파도에 휩쓸려 표류하겠지만 인간이 발명해낸 세계에서는 낯선 육지가 언젠가 그를 반겨주고 똑바로 서게 만들 것이다. 후회라는 뗏목을 타고 오랜 방황 끝에 희망의 바다를 지나 우리 앞에 우뚝 선 브렌든 프레이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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