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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한 Jan 02. 2017

내맘대로 2016년 최고의 한국영화 TOP7

<곡성>에서 <최악의 하루>까지

작년에 비해 적은 한국영화를 봤지만 순위를 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억에 남는 작품이 많았다. 중견감독들은 제 역할을 했고, 신인급은 재기발랄함을 잃지 않았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장르도 다양해서 지루한 기획영화 신드롬에도 제동이 걸린 느낌을 받았다. 여러모로 시끄러운 한 해였는데 좋은 영화를 만드느라 고생한 제작자분들에게 박수. 왓챠에 올린 한줄평과 함께 간단한 감상을 덧붙인다.



7위: 최악의 하루 (김종관 감독)


“극중 인물의 말처럼 긴 긴 한해였다. 하나님이 내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럴 수 있었겠는가. 그래도 이 정도면 해피엔딩이다. 부디 내년은 행복한 한 해가 되길.”


엔딩까지 오기 참 힘든 영화였는데 버티고 나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해 영화에 집중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완성도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다. 다만 좋은 영화가 있고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마지막 시퀀스만으로도 올 한해 충분히 기억에 남는 영화다.



6위: 부산행 (연상호 감독)


“투자자를 살.려.야.한.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평이 좋은 것 같다. 특히 장르영화 마니아들에게 찬사를 받는데 좀비물을 즐기지 않아서 정확히 어떤 부분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왜 이렇게 평가가 높고, 천만관객을 동원할 영화인지 의문이 든다는 혹평도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부산행>은 재밌는 영화의 최소한의 본분을 다 했다고 본다. 관객이 지루하지 않게 지형지물의 특성을 이용해 덤벼드는 성실한 좀비군단 덕분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승객의 입장이 될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을 오락적 재미는 충분했다.

과하게 도식화한 느낌이 있지만 열차 한 대에 밀어 넣은 한국사회에 무리 없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이 정도의 공분과 공감을 얻은 사회비판영화가 근래에 있었나 싶을 정도다. 진보와 보수를 넘어 용석(김의성)의 명치 한 방 날리고 싶지 않은 관객이 있었을까.

굳이 지적을 하자면 지적할 부분도 있겠지만 앞으로 이 정도 완성도를 가진 한국 좀비영화를 보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분유 씬이라는 큰 장벽이 있기는 한데 분유 값도 벌기 힘든 열악한 영화판을 위한 고육지책으로 느껴져 다른 의미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5위: 비밀은 없다 (이경미 감독)


“불편함을 거세당한 한국영화들에게 날리는 짜릿한 한 방”


영화가 끝난 뒤 생각했다. 이건 뭘까. 프로그레시브 록을 처음 들었을 때 감정이 떠올랐다. 정박의 록 음악만 듣다가 클래식, 재즈, 아방가르드처럼 장르와 박자가 잔뜩 뒤엉킨 곡을 들으니 이게 뭐하는 음악인가 했던 거다. <비밀은 없다>가 바로 그랬다.

‘국회의원 후보의 아내가 행방불명 된 딸을 찾는다‘라는 설정에서 기대하던 건 정박의 록음악이었다. 이쯤에서 증거가 발견되고 정치권 혹은 거대악이라는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고, 위기를 겪긴 하지만 결국 진실이 밝혀져 카타르시스가 터지는 대단원. 몇 년 간 쏟아져 나온 기획영화의 틀을 예상하며 영화를 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박자가 조금씩 흐트러지더니 나중에는 따라가기도 벅찬 엇박이 됐다. 국회의원은 국회의원의 역할이 아니고, 조력자는 민폐처럼, 범인은 조력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특히 연홍(손예진)의 행동과 감정이 널뛰기를 하는데 속된말로 ’미친년‘이라고 불러도 할 수 없을 정도다. 혼란스러운 카메라 구도와 편집 리듬이 엇박을 가중시켰다. 물론 엔딩부에서는 하나하나의 고리가 맞춰가며 꼼꼼하게 세팅된 복선이라는 걸 납득했지만.

그런데 연홍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 엇박이 당연한 일이다. 딸이 행방불명이 됐고 파면 팔수록 이상한 증거들이 나오는데 어떻게 메트로놈처럼 안정되고 규칙적인 감정을 보일 수 있겠는가. 바꿔 생각하면 그 동안 가족들이 위험에 빠졌는데도 이성적으로 움직인 주인공들이 비정상이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연홍이 정상적인 것이다. 그러니 연홍의 감정을 따르는 카메라의 시선과 편집이 엇박을 칠 수 밖에.

<비밀은 없다>는 ‘뭐 이런 영화가 다 있냐’라는 혹평과 함께 관객수 30만을 넘기지 못하며 흥행도 실패했다. 하지만 <씨네21>은 이례적으로 “이대로 보낼 순 없다-‘비밀은 없다’를 둘러싼 이야기들“이라는 특집을 내보냈다. 아직 <비밀은 없다>에 대해 더 우리가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함에 동의하며, 동시에 진부함의 늪에 빠진 한국 스릴러의 진보를 위한 신호탄이었다고 재평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4위: 아가씨 (박찬욱 감독)


“섹스토이가 주인공인 박찬욱의 피노키오”


개봉 전부터 기대치가 하늘을 찔렀다. 당연한 일이다. 박찬욱의 작품이 내 영화관에 끼친 영향과 그의 이름이 한국영화계에서 갖고 있는 의미. 이 순간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배우들. 결정적으로 캐스팅 공고에 ‘노출 정도 타협불가’를 명시하며 걷잡을 수 없이 키운 원초적인 호기심까지. 오히려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혹시 실망하면 어쩔까.

일단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배드씬을 보여주며 여성을 대상화 한다는 비판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주제가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BBC의 <핑거스미스>와 비교하면 굳이 저런 장면까지 필요할까 싶었다. 히데코(김민희)와 숙희(김태리)가 교감하는 장면을 늘리는 것으로도 배드씬의 깊이를 더하며 비극성도 높일 수 있었을 텐데. 분명 아쉬운 부분이다. 확장판에서는 개선이 됐나 모르겠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좋은 영화였다. 특정 장면에서는 가슴이 시큰거리고 눈물이 핑 돌기도 했으니까. 박찬욱 영화를 보며 괴롭다는 생각은 자주했지만 찡하다는 감정은 처음이었다.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감독이 의도한 대로 차근차근 감정선이 쌓여갔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운 영상과 의외로 언급이 안 돼서 이상한 수준급의 OST가 하나로 맞물리는 순간이었으니까.

영화도 좋았지만 영화 자체의 영향보다는 사회적 영향이 컸던 것도 같다. 작년쯤부터 촉발된 페미니즘 논란들이 자연스럽게 오버랩 됐다. 남성/이성애자로 살아온 내가 그 외의 성별/성적지향을 가진 이들의 고민을 100% 이해하기는 어려운 일이나 그렇다고 해서 가부장사회 때문에 발생하는 억압과 구속이 나를 온전히 피해가지는 않는다. 연대와 이해를 통해서만 그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갈 수 있을 텐데 영화에서나마 작은 승리를 엿볼 수 있었다. 감히 말하자면 <델마와 루이스>의 엔딩씬과 견줘도 부족함이 없다.



3위: 동주 (이준익 감독)


“나는 부끄럽다”


올해 초에는 내가 너무 부끄러워서 미칠 것 같았다. 나만 이렇게 못나고 한심한가 자책하며 잔뜩 움츠려 있었는데, 한해를 정리하고 보니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당당한 모습을 보며 나름의 위안을 얻었다. 물론 그렇다고 내 부끄러움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평생을 짊어지고 갈 일이다. 그 짐을 지고 어디로 가야할지의 방향을 영화가 제시해주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부끄러움’이라는 주제가 내가 봤던 영화들에서는 자주 등장하지 않는 것 같다. 당장 떠올려도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하나 싶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윤동주’를 선택한 이준익 감독의 판단도 좋았고 그 감정을 오롯이 느끼게 한 연출력이 빛을 발했다. 야구중계를 듣다보면 ‘결대로 밀어쳤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일제 강점기, 윤동주라는 재료를 가졌음에도 욕심 부리지 않고 결대로 밀어쳐 홈런을 만든 이준익 감독의 절제력에 박수.

부끄러운 일을 겪기 전에 부끄러움을 생각하고, 부끄러운 일을 벌인 뒤에도 충분히 부끄러워할 줄 아는 윤동주. 그리고 그만큼 매력적인 송몽규 덕분에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니 좋은 영화가 아닐 수 있나.



2위: 우리들 (윤가은 감독)


“어리다고해서 사람을 모르겠는가”


몰입감이 좋은 영화를 보면 극장을 나설 때 몸이 아프다. <그래비티>, <매드맥스>, <곡성>이 그랬는데 <우리들>도 나를 아프게 했다. 앞선 두 편이 체험과 스펙터클, 원시적 공포에 기댔다면 <우리들>이 나를 사로 잡은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생각해보니 질문이 많은 영화라 그랬던 것 같다.

윤가은 감독은 집요한 사람이었다. 상영시간 내내 악착같이 한 가지만 캐묻는다. ‘쟤들은 애들이라 그렇다 치고 너는 어른인데 저 상황에서 어떻게 할래’라고.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라 이런저런 핑계만 대다가 극장을 나섰고 해가 바뀌었지만 아직도 답을 하지는 못했다.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고민의 시간이 흐를 것이고 그때까지 나는 이 영화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감상을 쓰면서 생각하니 이렇게 어려운 숙제를 내준 윤가은 감독이 밉다.



1위: 곡성 (나홍진 감독)


“의심까지도 의심하게 만드는 기막힌 재주”


정말 무서운 영화였다. 영화를 본 날은 무서워서 거의 뜬 눈으로 밤을 보냈고, 관람 이후 수많은 감상문을 읽으면서도 영화가 기억나 덜덜 떨었다. 읽은 글 중엔 그럴싸해서 무릎을 탁 치게 된 분석도 있었고, 남의 글을 베껴온 수준에 그친 것도 많았다. 그렇게 한 달간 <곡성>에 푹 빠져있다 내린 내 결론은 ‘해석에 매달릴 필요가 없는 영화‘라는 것이다.

종구(곽도원)에 감정이입을 하고 스크린에 빠져든다면 영화의 주제인 ‘현혹’을 위해 감독이 마련한 세심한 장치들을 놀이기구 타듯이 즐길 수 있다. 오컬트, 스릴러, 코미디 그리고 약간 좀비물까지 장르를 섞어 좌표를 흐트려 놓는다. 믿을 만한 근거라고는 하나 없이 자기 말만 진실이라고 우기는 무명(천우희)과 일광(황정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막막함. 그리고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외지인(쿠니무라 준)의 정체까지 끼얹으면 현혹되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다.

물론 원인을 독버섯에서 찾는 스타일이라면 감정이입 자체가 힘들거라 본다. 아무리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를 타도 ‘세상 재미없는’ 사람은 존재하니까. 영화 속 대사처럼 어차피 말해도 믿지 않는 게 사람 아닌가. 다만 그 장벽을 넘어갈 수만 있다면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 중 이렇게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영화는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완벽한 몰입을 위해 스크린 관람은 필수다.

이성과 감성을 잘 조화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영화감독이 건축가와 비슷하다고 본다. 이렇게 독창적이고 재미있는 테마파크를 만든 나홍진 감독은 건축가를 했어도 참 잘했을 것이다. 물론 배우와 스텝들이 수없이 갈려나가겠지만. 관객이 그 부분까지 고려해야 하는지는 아직 고민할 일이다. 이 역시 아직은 동네에 자자한 소문일 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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