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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한 Nov 07. 2023

<플라워 킬링 문>스콜세지의 천성으로 그려낸 미국

Killers of the Flower Moon, 2023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20세기 초 미국. 오세이지 부족 원주민들의 땅에서 석유가 발굴된다. 미국 정부의 이주 정책으로 본인이 살던 땅을 빼앗기고 오클라호마로 쫓겨왔던 오세이지 부족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1인당 GDP를 기록할 정도도 막대한 부를 거머쥔다. 오세이지 부족의 석유를 시추하기 위해 여러 기업이 달려들고, 일자리를 찾으려는 백인들도 전국에서 기차를 타고 모여든다.


<플라워 킬링 문>은 위화감으로 시작된다. 엄청난 부를 가진 오세이지 부족은 멋진 옷을 빼입고 골프를 치고 자가용 비행기로 경주를 하고 백화점에서 마음껏 쇼핑을 즐긴다. 백인들은 그들의 시중을 든다. 말과 총으로 무장하고 괴성을 지르며 백인들의 기차를 터는 인디언은 없다. 그런 비문명화 된 인디언들을 영웅적으로 막아내는 백인 보안관이 필요 없는 건 물론이다. 미디어를 통해 쉽게 볼 수 없던 이런 상황은 소인국에 표류한 걸리버처럼 이질적이다.


■ 지구인 중에 스콜세지가 가장 잘 하는 이야기


1차대전 참전용사이지만 복부에 부상을 당해 힘 쓰는 일을 할 수 없는 주인공 어니스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는 서구화된 삶을 즐기는 오세이지 부족의 푸티지 영상이 끝난 후 기차를 타고 등장한다. 오래전부터 오세이지족과 친분을 쌓고, 그들을 위해 학교와 병원을 짓는 등 지역에서 명망이 높은 삼촌 윌리엄 킹 헤일(로버트 드 니로)은 택시기사직을 제안함과 동시에 오세이지 족의 여성과 결혼하라고 부추긴다.


서구화된 식습관으로 생긴 당뇨, 석연치 않은 죽음으로 50세를 넘기지 못하는 오세이지 족의 유산이 가족에게 상속되기 때문이다. 물론 석연치 않은 죽음들의 뒤에는 친구의 가면을 쓴 헤일의 계획적 살인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택시 운전을 하던 어니스트는 몰리(릴리 글래드스톤)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에도 성공하지만, 삼촌 헤일의 계획된 살인을 돕는 이중생활을 시작한다.


영화는 비교적 최근이라고 느껴지는 1920년대를 다루지만 오클라호마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무법천지다. 인디언을 죽이는 것보다 개를 발로 차는 게 처벌받을 확률이 더 높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퍼질 정도다. 어니스트를 통해 헤일의 사주를 전달받은 백인들은 티슈 뽑듯이 권총을 뽑아 들어 방아쇠를 당기고 스테이크를 자르듯 무참히 도륙을 내고, 팝콘을 튀기듯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려 집을 통째로 날려버리기까지 한다.


실제로 미국 정부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무법천지에서 벌어진 비극들은 설계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인디언들은 금치산자로 취급받아 지정된 백인 후견인의 동의 없이는 그들의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없었다. 의문스러운 죽음들을 파헤치기 위한 인디언들의 수사 의뢰는 중간에서 번번이 실패했다. 이런 폭력과 착취는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청교도적 세계관 덕에 면죄부까지 받는다. 결국 대통령을 만나 막대한 정치후원금을 지불하는 지극히 미국다운 절차를 마친 후에야 연방 수사관이 도착해 진상을 규명한다.


원작 『플라워 문(Killers of flower Moon』의 부제는 ‘거대한 부패와 비열한 폭력, 그리고 FBI의 탄생’이다. 또한 주인공은 훗날, 이 사건으로 FBI 창설에 큰 역할을 하게 되는 연방 수사관인 톰 화이트다. 하지만 제작 과정에서 디카프리오가 의문을 제기한다. 그가 기차역에 내리자마자 보는 모든 사람이 범인인데 화이트의 수사가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었다. 결국 2년 동안 준비했던 시나리오는 폐기되고 어니스트가 주인공으로 낙점된다.


이런 측면에서 영화의 주인공인 어니스트는 특정한 개인이 아니다. 인디언을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고 부의 상속이 정당하다고 여겼던 당시의 평범하고 죄책감 없는 백인으로 제도와 사회 분위기가 의인화된 셈이다. 주인공의 교체는 <플라워 킬링 문>을 백인 수사관이 등장해 인디언들을 위기에서 구원하는 뻔한 이야기에서 폭력에 물들어 스스모 파멸을 향해 달리는 흥망성쇠로 변화시킨다. 지구인 중에 스콜세지가 가장 잘하는 그 이야기 말이다.


■ <플라워 킬링 문>의 의도적 소거 3가지


<플라워 킬링 문>에는 3가지 의도적으로 소거됐다.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의 서스펜스, 범죄로 이룬 부를 바탕으로 즐기는 향락, 범죄의 진상을 파헤치고 진범을 찾아내는 과정의 카타르시스다. 인디언들은 백인들이 등쳐 먹는 걸 알고, 백인들은 농사짓듯 성실하게 인디언들을 학살한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히 드러나니 수사극의 의미도 없다. 따라서 영화의 갈등은 어니스트와 화이트가 아닌 지점에서 발생한다.


어니스트와 헤일의 관계는 익숙하다. 가깝게는 전작 <아이리시맨>에서 우연히 마피아 러셀(조 페시)의 일을 돕다가 결국엔 살인청부업자가 된 프랭크(로버트 드 니로)부터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카지노>, <좋은 친구들>, <비열한 거리>까지. 좀도둑이나 얄팍한 사기꾼에서 시작해 마약, 분식회계, 밀수 등을 거쳐 살인까지 이르는 타락의 연쇄 고리에 헤일은 핏줄이란 사슬로 어니스트를 옭아멘다.


그의 주문은 주도권을 찾으라는 것. 몰리의 부를 노리고 결혼한 어니스트가 주도권을 쥔 적도 없는데 찾으라니. 위대한 적 없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만들자는 구호의 씨앗은 이미 뿌려졌다. 그렇게 핏줄로 단단히 얽힌 듯 보였던 관계는 스콜세지의 다른 작품들이 그러하듯 눈덩이처럼 불어난 범죄 앞에 각자도생하겠다며 자중지란에 빠져 서로의 약점을 물어뜯다가 공멸하는 이전투구로 마무리된다.


감정적으로 깊은 갈등은 어니스트와 몰리 사이에서 일어난다. 한 명은 자신의 범죄가 탄로 날까 봐, 또 한 명은 피해자가 될까 봐 겁이 난다. 100% 신뢰할 수 없지만 사랑하는 것만큼은 확실한 두 사람. <순수의 시대>처럼 흔치 않으며 뒤틀린 로맨스가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다. 톰 화이트의 수사와 어니스트의 자백으로  헤일 일당의 범죄가 밝혀진 후. 어니스트는 모든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영혼이 깨끗해졌다는 기막힌 소리를 한다.


몰리는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줬던 약물이 인슐린이 맞냐고 묻는다. 어니스트는 그렇다고 대답하지만 아마  자신도 그 약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스스로 판단하는 사람이 아닌 탓이다. 범죄마저도 삼촌의 명령에 따라 행했던 그는 사랑의 주체성까지도 놓아버렸다. 주도권을 되찾자, 위대한 미국을 다시 만들자 외치는 헛된 구호를 자신의 판단이라고 착각해 벌어지는 비극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 폭력과 탐욕, 스콜세지의 천성


<분노의 주먹>으로 시작해 무려 7전 8기 끝에 <디파티드>로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았을 때 스콜 세지는 말했다. “봉투를 잘못 연것 아닙니까”. 한 차례 웃음이 머문 뒤 말을 이었다. “제가 살아남는다면 시스템 내에서 제 위치가 뭔지 그때 깨달았습니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이죠”. 꿈의 공장에서 소화하기 어려운 미국의 현실을 평생 적나라하게 까발린 거장의 시선을 외면할 수 없는 지점에 미국 사회가 마침내 도달한 거다.


<플라워 킬링 문>의 엔딩은 오프닝에 이어서 또 한차례 위화감을 조성한다. 화면은 보드빌 스타일의 무대로 바뀌고 배우들은 신문 기사를 낭독하듯 후일담을 낭독하는 내레이터의 말에 따라 등장인물들을 연기한다. 어니스트는 몰리는 이혼한 뒤 오클라호마 국립공원에서 여생을 마쳤고, 헤일은 3년 만에 풀려난다. 몰리는 재혼을 했지만, 남은 삶이 길지는 않았다. 당뇨 탓이다. 내레이터는 스콜세지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직접적인 메시지가 아니냐 하겠지만 현재 자격을 갖춘 단 한 명의 미국 감독을 고르라면 역시 스콜세지뿐이다.


폭력과 향락이 빠지지 않는 스콜세지의 영화는 관객의 죄책감을 유발하는 건지, 부러움을 유발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평이 많다. 달라이 라마의 평도 그렇다. <쿤둔>을 통해 달라이 라마 14세의 일생을 조명했던 스콜세지는 2007년 명예 훈장을 받기 위해 미 의회 시상식을 찾은 달라이 라마와 만난다. <갱스 오브 뉴욕>을 봤다는 달라이 라마는 “폭력적이고 또 폭력적이다”는 평을 한다. 스콜세지는 미안한 듯 얼굴을 찡그렸다.


이어 달라이 라마는 괜찮다며 “그게 당신의 천성이니까요”라는 말을 남겼다. 눈물이 고인 스콜세지는 “그걸 받아들여 줘서” 크게 감동하였다며 전설적인 영화 평론가 리처드 시켈에게 말했다. “천성이 그런 거라면, 그래요, 천성이 그런 거에요. 제 말은 그런 게 영화라는 거죠. 그런 느낌 말이에요” (『마틴 스코세이지: 레트로스펙티브』 중에서).


달라이 라마의 스콜세지 영화에 대한 소감을 봉준호 감독의 소감으로 바꾸자면 아마 이럴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이 또한 스콜세지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플라워 킬링 문>은 여전히 폭력적이고 인간의 끝도 없는 탐욕을 다룬다. 하지만 그 폭력과 탐욕이야말로 팔순이 넘어도 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거장이 이룩한 또 하나의 위대한 창의적 성취의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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