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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음악산책

중2병으로 극복하는 노오오력

Supertramp - Goodbye Stranger 듣다가

by 고요한

작년에 잘했다 싶은 일 중 하나는 ‘필사’다. 예전에는 혼자 쓰고 말았다면, 작년에는 필사를 한 뒤 코멘트를 달고 친구들과 의견을 나눴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시, 소설, 에세이, 가사 등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분량도 자유롭게 쓰자고 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사람마다 관심사와 콘텐츠를 바라보는 시각이 이렇게 다양할 수 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랐다. 써놓고 보니 2016년의 내 삶의 키워드 중 하나는 ‘확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시작한 음악산책에서도 작년에 필사하며 썼던 코멘트를 하나씩 풀고 있다. 오늘 인터넷을 하다가 어디에선가 ‘과거의 글을 보고 부끄럽지 않다면 발전이 없는 것이다’라는 글을 읽었다. 필사를 열심히 했던 때가 불과 지난 여름이지만 다시 보니 부끄러워 얼굴을 들기 어렵다. 그래서 차마 원본은 못 올리겠고 약간의 퇴고를 거친 글을 올린다. 김연수의 소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중 ‘작가의 말’을 필사 한 뒤 쓴 글이다.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중2병이라고 한다. 몇몇 사람은 왼팔에 흑염룡을 봉인하고 있기도 하지만 대개는 사랑, 정의, 우정 등을 이야기한다. 원래는 노력도 그 어디쯤 속했는데, 지금의 헬조선에서는 ‘노오오력’으로 변질되어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노력의 입장에서는 중2병에 속하던 때가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김연수의 ‘작가의 말’의 주제를 “노력하자”로 받아들였다. 순순히 실패를 인정하고 그 지점부터 한발자국씩 나아가자는 거다. 그럼에도 한계는 분명히 긋고 있다. ‘네가 어떻게 노력을 하든 너는 결코 완벽해질 수 없다. 다만 그 과정이 가치를 만든다‘고. ‘노오오력’하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는 헬조선의 논리와는 다르다.

그래서 나는 이 부분이 어릴 때보던 소년만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만화들에서 내가 감동을 느낀 건 주인공의 승리가 아니라 노력하는 과정에서 얻는 사랑과 우정, 정의였으니까. 오늘날 헬조선에서 ‘노력’은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제대로 된 자리를 찾는 일을 김연수의 글에서. 그러니까 중2병 어디쯤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1979년 발표한 [Breakfast in America]의 수록곡이다. 슈퍼트램프(Supertramp)는 1969년에 영국에서 결성됐는데 재즈와 클래식을 혼합한 ‘후레시 록(Flesh Rock)’이란 장르로 자신들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구축했다. 이 앨범에 수록된 The logical song이 차트 6위까지 오르며 빅히트하고 Goodbye Stranger는 15위까지 기록했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매그놀리아>의 전체 분위기를 관통하는 곡으로 영화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음악듣기: https://youtu.be/ZsV-rQ23bus

Supertramp - Goodbye Str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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