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음악산책

작가 한강과의 잘못된 만남

Joan Baez - Let it be 듣다가

by 고요한

잘못된 만남. 맨부커상 수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작가 ‘한강’을 떠올리면 드는 첫 생각이다. 오해할까봐 말하지만 실제 일면식이 있는 건 아니다. 보편적이지 않은 첫 만남이 그녀에 대한 내 인상을 결정지었다는 뜻이다.

내가 작가 한강을 만난 건 처음으로 대중에게 그녀의 이름을 각인시킨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나 대표작으로 남게 될 소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가 아니었다. 네이버에서 한강이란 작가를 검색할 때 32권에 이르는 저서 목록 끄트머리에서 두 번째에 자리 잡은수필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가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다.

2007년 발간된 이 책은 ‘한강이 만들고 부른 노래이야기’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녀의 인생에서 기억할 만한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앞부분을. 그녀가 직접 만든 노래와 창작과정에 느낀 점을 다룬 글이 뒷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음악CD가 별책으로 따라온다.

이 책을 읽은 게 13~14년 언저리인데 그때만 해도 한강이란 작가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책도 별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냥 소설가가 쓴 수필이고 특이하게 노래도 만들어 부르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Let it be’를 소재로 쓴 글 한 편만은 몇 년이 지나도 드문드문 생각났다. 대충 요약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한강은 ‘바위처럼 무겁고 단단한 해’를 보낸 시간이 있다고 한다. 손가락이 아파 타이핑 작업을 할 수 없었고 육필원고를 썼다. 이를 타이핑 아르바이트생에게 주면 여백에 고치고 다시 입력하는 과정을 거쳤다. 글쓰기를 그만둘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고, 그렇게 3년 흐를 동안 아이가 자랐는데 주변에는 단 한 시간 아이를 봐줄 일가친척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가을 저녁. 한강은 CD를 넣고 let it be를 틀었다. 집 안의 창문을 모두 닫고, 그늘이 생기지 않게 불이란 불은 다 켜놓은 채로. 그의 표현을 빌자면 그럴 때면 집이 ‘항구를 떠나는 배처럼 비현실적인 공간‘이 됐는데, 양말을 신고 피겨 스케이트선수처럼 바닥을 지치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이는 신이 나서 함께 뛰어다녔고 ’렛 잇 비’ 할 때마다 바닥을 미끄러져 달렸다고 한다.

한강은 렛잇비에 맞춰 목청껏 노래했는데 중간에 신시사이저 간주가 나오면 미친 사랑처럼 빙글빙글 제자리에서 돌며 눈을 감았다. 마치 하나의 음들을 ‘삶의 빛’ 같았다고 한다. 그렇게 감은 눈 사이로 흐르는 눈물을 닦고 또 닦았으며 나중에는 엉엉 소리내 울었다지. 엄마가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신나서 바닥을 미끄러졌고, 그 뒤로 가끔씩 ‘헤이삐 하자, 헤이삐’하고 조르고는 했다는 글이다.

작년에는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이 글을 떠올렸다. 물론 Let it be도 눈을 감고 열심히 들었다. 삶의 빛 같은 신시사이저를 온몸으로 들었다는 장면이 마치 겪은 일처럼 생생하게 그려졌다. 상상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경험은 흔치 않은데, 이래서 내가 에세이를 즐겨 찾는지 모르겠다. 언제건 창문을 잠그고 음악만 틀면 춤과 눈물이 자신을 구하러 왔다는 한강 덕분에 나에게도 Let it be라는 든든한 구원자가 생긴 것이다.

비록 내게는 잘못된 만남(?)이었지만 오직 이 글 한편 때문에라도 아직 한강이란 작가를 잘 모르는 분들에게, 혹시 힘든 시간을 이겨내야 하는 분들에게 이 수필집을 추천한다. 내 필력으로는 당연히 내가 받은 감동이 100 분의 1도 전달되지 않는 걸 알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단락을 남긴다.

“‘그대로 두라’는 그 말 외에 어떤 말이 그 시절을 구해줄 수 있었을까. 대답을 들려주는 게 아니라 대답이 있을 거라는 미래형. 슬퍼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슬픔은 없을 거라는 미래형. 어떤 거짓말도 없는 가사. 그렇게 내 몸에 끌처럼 새겨진 노래“


음악듣기: https://youtu.be/WbtyKo2wlYU

Joan Baez - Let it be



keyword
고요한 영화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에디터 프로필
구독자 277
매거진의 이전글네 마리 새끼고양이와 불면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