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혁 - 불면 듣다가
지난 여름. 유난히 잠을 설친 밤이 있었다. 밤 11시부터 길고양이의 울음이 끊이지 않았다. 10분쯤 저러다 말겠지 했는데 착각이었다.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시계를 봤던 새벽 3시까지 장장 4시간을 쉬지 않고 울어댔다.
왜 저러나 궁금해서 네이버지식인을 검색했다. 교미철이라 수컷이 암컷을 부르는 소리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면 참아야지. 묘륜지대사인데. 그런데 저렇게 쉬지 않고 울면 짝을 찾기도 전에 지치지 않을까. 고양이의 체력(정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 궁금해 하며 잠들었다.
다행히 궁금증은 아버지가 풀어주었다. 쉬지 않고 이어진 울음소리는 교미소리가 아니라 새끼고양이들의 구호요청이었다. 지하주차장에 있던 새끼고양이 네 마리가 어쩌다 옥상에 올라왔는데, 에어컨 실외기에 갇혀서 어미를 찾던 소리였다고 한다. 밤새 울어대던 녀석들은 목장갑을 끼고 새끼고양이들을 구조한 아버지 덕에 새벽 무렵 무사히 어미 품으로 돌아갔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강아지형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사색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사람들과 부대끼고 노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웃고 떠들어야 에너지를 얻는 타입이다. 그래도 가끔은 고양이처럼 지내고 싶을 때가 있다. 인간관계에 치일 때는 더욱 그렇다. 물론 ‘나는 참을성이 많지만 가끔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B형 남자다‘ 같은 쓸모없는 소리라는 걸 안다. 하지만 누구나 가끔은 평소와 다른 나를 꿈꾼다.
그 날은 고양이들 때문에 잠을 설친 탓에 하루 종일 정신을 못 차렸다. 할 일이 정말 많은 날이었다. 다만 위안이 되는 건 고양이들도 가끔은 밤새 쉬지 않고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점이다. 고고한 고양이라도 별 수 있나. 외로우면 강아지 흉내라도 내야지. 고양이나 개나 사람이나 똑같다는 큰 깨달음과 잠 못 이루는 밤을 선사한 네 마리 새끼고양이들 칭찬해!
2014년 발표된 3집 [이장혁 Vol. 3]에 수록된 곡이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한국가수 중에 가사를 제일 잘 쓰는 1人이라고 생각한다. 곡의 중반부에 고양이 울음소리를 연상케 하는 슬라이드 기타솔로가 매력적이다.
이장혁 – 불면
어제처럼 나는 잠들지 못하고 이 밤은 또 나를 불러내지
이름 없는 어느 미친 패잔병처럼 터벅터벅 어둔 거리를 걷네
별은 빛나고 넌 여기 없고 고양이들은 길을 건너다 사라지곤 하지
사람들은 모두 곤히 잠들어 곧 잊혀질 꿈들을 꾸고
나는 너의 꿈속으로 스며들어가 소리 없이 니 곁을 스치지
길은 어둡고 난 여기 서서 저 멀리의 별들을 헤며 이 밤을 지새우고
너는 별보다도 먼 곳에 있어 별보다 더 빛나고 있어
난 고양이처럼 밤이면 몰래 걷다 사라지는 꿈을 꾸지
고양이들은 밤이면 몰래 길을 걷다 사라지곤 하지
고양이처럼 밤이면 몰래 걷다 사라지는 꿈을 꾸지
음악듣기: https://youtu.be/NFYISFbCH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