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배 - 자본주의 듣다가
홍콩여행 중 가장 길게 묵었던 숙소는 미라도 맨션(Mirador Mansion)에 있는 드래곤 인(Dragon INN)이다. 그 유명한 청킹 맨션(Chungking Mansion) 바로 옆 건물이다. 총 3일을 묵었는데 내 숙소는 4층이었다. 침사추이의 중심도로인 나단 로드(Nathan Road)에 있어서 찾기도 쉽고 시설도 좋았다. 다만 한 가지 불편한 건 엘리베이터였다. 승객에 비해 규모가 굉장히 작아 이미 꼭대기에서 만석이 되는 일이 잦았다. 그럴 때는 계단을 이용했는데 이틀째 되는 날 신기한 광경을 발견했다.
그날도 엘리베이터를 포기하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2층에 사람들이 잔뜩 줄을 서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살펴봤더니 ‘제니 쿠키’를 사기 위한 줄이었다. 홍콩명물이라는 걸 얼핏 듣기만 했지 설마 내가 묵고 있는 숙소 바로 아래층에 위치할 줄은 몰랐던 거다. 1인당 개수 제한까지 두고 파는데 카운터 4개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걸 보며 이런 게 돈을 쓸어 담는 풍경인가 싶었다. 마침 가게 앞에서는 직원 한 명이 시식용 쿠키를 나눠줬다. 시식쿠키를 받아들고 ‘이 사람은 하루 종일 이것만 나눠주겠지’라고 생각하며 1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1층으로 가니 계단 초입에 ‘제니 쿠키는 2층으로 가세요’라는 팻말을 든 또 다른 직원이 서있던 것이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장사가 얼마나 잘 되면 저런 팻말까지 들고 있나. 두 번째는 고작 저걸 시키려고 사람을 쓸 만큼 인건비가 싸구나. 한 번 생각을 하게 되니 여행을 하면서도 같은 풍경이 계속 눈에 밟혔다. 각종 식당에서부터 마사지 센터까지. 엄청난 수의 점포들이 팻말 알바(?)를 채용하고 있었다. 옆 동네인 마카오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는데 세인트 폴 성당 앞의 육포거리에서는 3m마다 호객꾼이 육포를 나눠주고 있었다.
물론 이 광경이 중국에만 있는 건 아니다. 서울에서도 지하철 입구마다 전단지를 피하는 게 일이고, 마트에서는 만두며 불고기 좀 드셔보라는 이야기가 쉴 새 없이 퍼진다. 강남대로변에는 중국처럼 하루 종일 팻말만 들고 있는 사람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만 홍콩에서는 서울에서처럼 특정한 장소들을 벗어나면 자연스럽게 잊게 되는 ‘이곳에서도 사람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다. 어딜 가나 팻말을 든 사람이 보이기 때문이다. 인구가 많다는 게 심지어 이런 면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하니 사람은 많고 볼 일이다.
현대도시는 ‘사람‘을 지워버리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황현산 교수는 칼럼에서 이를 <간접화의 세계>라고 정의했다. 편의성 너머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도로보수나 상하수도 공사는 차량통행이 뜸한 심야시간에 이뤄지고 아침마다 편의점에 빽빽이 들어찬 즉석식품의 배달은 새벽 시간에 이뤄진다. 우리가 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건 제대로 동작하는 스크린도어지 구의역에서 그것을 고치고 있던 젊은 수리공이 아니다.
한국은 이미 간접화의 세계화란 거대한 흐름에 상당 부분이 잠식됐다. 중국 역시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고 홍콩도 예외는 없을 것이다. 무표정한 얼굴로 미라도 맨션 1층을 지키던 제니 쿠키의 팻말 알바는 어쩌면 ’이 곳에도 사람이 있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 최후의 부표가 아닐까.
2013년 발표한 윤영배의 3집 [위험한 세계]의 수록곡이다. 1993년 제 5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겨울이 오면’으로 동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이한철 첫 앨범의 노랫말을 전부 썼고, 장필순의 [너의 외로움이 날 부를 때] 앨범 작업에 참여했다. 잠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체류했던 이후로는 제주도에 정착해 지금까지 텃밭을 키우며 살고 있는 포크 가수다.
앨범 소개가 짧지만 파괴력 있다. “위험에 대한 인식은 없었네. 적어도 양육의 대상이었을 시기에 무서운 건 많았네 내가 자발성을 깨닫기 전까지. 모든게 무섭다고 들었네. 물, 불, 어둠, 가난, 돈, 병 사람...”
윤영배 – 자본주의
몇몇 사람의 난폭한 결정 우워허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틈틈이 틈내 입을 맞추는 우워허 비밀주의 기회주의
눈이 부시게 번쩍거리는 우워허 형식주의 신자유주의
나쁜 사람들 못된 사람들 우워허 국가주의 기회주의
추추추 춤추며 떠떠떠 떠들며 투쟁
차차차 참지만 마하하 마할고 투쟁
음악듣기: https://youtu.be/SIiCbZdu__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