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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음악산책

2017년 단 하나의 버킷리스트

이소라 -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말아요 듣다가

by 고요한

수능공부를 할 때니 벌써 오래전 일이다. 비문학보다는 문학을 좋아했는데 그 중에서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 가장 흥미로웠던 기억이 난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같은 에로스적 사랑이나 이별의 눈물같은 정서적 흔들림을 표현한 것이 한 가지였다. 고딩인 나도 그 감정을 몰랐고 지금은 몰라도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분명히 스님이라고 들었는데 뭘 알고 쓰는 건가싶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에 대한 해석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라는 게 원래 해석이 모호한 것이지만 님의 침묵은 그 모호함의 끝판왕이었다. 아무 대상이나 에 집어넣어도 정답이 됐다.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나오는 만능서식 같달까. 물론 시험을 볼 때는 광복이나 종교적 초월자로 찍는 게 정답일 확률이 높았지만 말이다. 더구나 전까지 배웠던 시들은 비교적 해석이 명확했기 때문에 주어가 없는 님의 침묵이 아니었다면 누구나 이라는 주어가 될 수 있고, 누구의 시도 아니지만 누구나의 시가 있다는 사실을 한참이 더 지나서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님의 침묵을 통해 문학작품에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것을 앎과는 별개로 그 지식을 내 삶에서 연결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론적으로 봤을 때 소쉬르가 말한 것처럼 기표에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게 맞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만 봐도 남녀 간의 사랑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우리는 사회가 형성한 의미망을 벗어나기 힘들고, 시인들은 그 힘든 일을 기어이 해내는 사람들이다.


“내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말아요/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려 한다고 괜한 헛수고라 생각하진 말아요/내 마음이 헛된 희망이라고는 말하지 말아요/정상이 없는 산을 오르려 한다고 괜한 헛수고라 생각하지 말아요“


이소라의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의 가사이고, 한 문장도 남기고 싶지 않은 2016년에 속으로 가장 많이 되뇌었던 문장이기도 하다. 작년의 시간들이 없었다면 보이지 않는 길을, 정상이 없는 산을 오르는 일 역시 사랑이라는 것을. 그리고 무슨 일이 됐든 사랑의 대상이 우선은 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을 테니까.


2017년 첫 날이다. 나름 연말을 정신없이 지내느라 차분히 앉아서 따로 버킷리스트를 작성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차분하게 앉아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이 순간이 어느 해의 첫날보다도 행복하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것을 한 가지 적자면 올해는 어느 해보다 나를 사랑하는 한 해가 되자는 것. 쉽지 않겠지만 해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20171월 발매 예정인 이소라 9집 앨범 [그녀풍의 9]에서 선공개 된 곡이다. 김동률이 작사, 작곡했다. 군 복무 중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故황호욱의 1집 타이틀곡이자 이소라 솔로 2집 수록곡이기도 했던 너무 다른 널 보면서가 나온 1996년 이후로 이소라와는 20년 만의 작업물이라고 한다.


김동률에 따르면 [동행] 앨범 때 만들었는데 본인이 부르려다가 너무 어려워서 이소라에게 의뢰를 받고 넘긴 곡이라고 한다. 아끼는 곡이지만 먼 길을 돌아 주인을 만난 것 같아서 후회는 없다고 한다.




이소라 –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내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말아요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려 한다고

괜한 헛수고라 생각하진 말아요


내 마음이 헛된 희망이라고는

말하지 말아요

정상이 없는 산을 오르려 한다고

나의 무모함을 비웃지는 말아요


그대 두 손을 놓쳐서

난 길을 잃었죠

허나 멈출 수가 없어요

이게 내 사랑인걸요


그대 두 손을 놓쳐서

난 길을 잃었죠

허나 멈출 수가 없어요

이게 내 사랑인걸요


내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말아요

그대 없이 나 홀로 하려 한다고

나의 이런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

나를 설득하려 말아요


음악듣기: https://youtu.be/7WHy1_-VhLE

이소라 -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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