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위한 시간
18대 대선 여론조사에서 문재인은 박근혜를 한 번도 넘지 못했다. 마지막 여론조사도 오차범위 내 패배가 유력했는데 유일한 희망은 청년층의 투표율을 높이는 것이었다. 중장년의 참여는 상수로 봤을 때 70%를 넘기면 청년층의 표가 추가되어 승산이 보인다는 거였다.
고작 한 표지만 투표율을 조금이라도 올리는데 도움이 될까싶어서 밤을 꼴딱 새고 6시가 되기 전에 투표소에 갔다. 1등일 줄 알았는데 앞으로 10명쯤 더 있었나. 2번을 찍고 나와 잠깐 눈을 붙이고 과제 때문에 학교에 갔다.
실습실에서 틈틈이 투표율을 확인했다. 보수와 진보의 끝판왕의 대결이라 그럴까. 예상보다 투표율이 높았다. 오후 5시에는 70%를 돌파했다는 뉴스가 떴다.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서 6시를 5분쯤 남겨두고는 ‘문재인 대통령‘으로 게시판이 도배가 됐다. 그리고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51:49. 과제는 그만두고 서울대입구 양꼬치 집으로 갔다.
고량주를 각자 1병씩 마시고 나니 ’당선유력’이 떴다. 방송국 헬기가 삼성동 자택에서 출발하는 박근혜의 자동차를 쫓았다. 고량주를 한 병씩 더 마시고 헤어졌다. 버스에서 DMB를 켜니 유력이 확정으로 바뀌어있었다. 맥주 2캔을 사들고 놀이터에 갔다. 만취했어야 정상인데 이상하게 취하지는 않고 눈가가 촉촉해졌다. 내가 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상한 건 다음 날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거다. 주량보다 더 먹은 당일 기억은 오히려 생생했는데.
돌이켜보면 2012년 12월 20일부터 대한민국 정부의 기억도 희미하다. 양극화, 저출산·고령화, 청년실업, 가계부채 상승 등등. 산적한 사회문제 앞에서 정부는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다. 반면 하지 말았어야 할 행동은 많았다. 이에 대해서는 내가 길게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는 생각뿐.
어쨌든 정말 운 좋은 시민들만이 박근혜정권을 지나 다시 투표권을 얻었다. 각자가 선택한 후보자들은 다르겠지만 기표소 앞에서 떠올린 생각만은 같을 것이다. 해야 할 일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는 후보. 내가 뽑은 후보도 5년이 지나 오늘을 떠올렸을 때 기억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