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 보다가
나영석PD의 프로그램에는 많은 음악이 삽입된다. TV,라디오에 나온 선곡을 실시간으로 정리해주는 멜론의 ‘방금 그곡’ 기능으로 평균적으로 삽입되는 수를 직접 세어봤다. 가장 최근에 종영된 <윤식당>은 50곡. 강호동을 비롯해 전문 예능인들이 이끌어가는 <신서유기 시즌3>은 55곡. 밥 지어먹는 거 빼고 아무 것도 안 하는 <삼시세끼 어촌편>은 무려 65곡이다.
80분 프로그램이라면 2~3분마다 한 곡이 등장한다는 얘기다. 비교를 위해 살펴본 무한도전은 10곡 내외다. 멜론에 등록되지 않은 곡이 있다는 걸 감안한다면 더 많은 곡이 프로그램에 삽입될 것이다. 내가 나PD 프로그램에 가장 크게 거부감을 갖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 과도한 삽입곡의 활용이다.
과도한 삽입곡 활용의 첫 번째 문제는 프로그램의 일관성이 파괴된다는 것이다. 장면마다 등장하는 음악이라도 일정한 톤이 유지된다면 상관이 없다. 하지만 나PD의 선곡은 댄스, 록, 발라드, EDM, 힙합, 재즈, 클래식을 넘나든다. 좋게 말해 시대와 장르를 초월하는 거고 나쁘게 말하자면 오만 잡동사니를 끌어 모은 5일장 좌판식 구성이다.
물론 다양한 선곡은 음악에 대한 제작진의 깊은 관심의 표현일 수도 있다. 장면과 어울리는 곡을 60여곡이나 골라내는 건 보통 노력으로 될 일이 아니다. 그러나 관심이 반드시 훌륭한 선곡으로 연결되진 않는다. <더 지니어스>가 결정적 순간에 쓰인 Moby의 Extreme Ways를 대표곡으로 내세운 것과 달리 나PD의 프로그램을 대표곡이 무엇인진 아직 모르겠다.
두 번째 문제는 시청자의 해석을 방해한다는 점이다. 방청객의 웃음소리를 효과음으로 넣고 안 넣고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는 여러 차례 실험으로 입증되었다. 단순한 웃음소리의 영향력도 이처럼 막강한데 가사와 멜로디가 있는 음악은 더욱 강력하게 감정에 소구한다.
이렇게 강력한 소구요소를 2분마다 내놓는 나PD의 프로그램은 내레이션만 없다뿐이지 어떤 뉴스나 시사/다큐프로그램보다 더 많이 제작진의 견해를 주입한다고 볼 수 있다. 자막공해란 말이 유행했었는데 지금처럼 나PD의 영향을 받은 프로그램이 늘어난다면 선곡공해라는 단어를 등장시켜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다수의 삽입곡, 사물의 캐릭터化, 리플레이를 활용한 스토리 전개는 나PD가 자주 사용하는 연출법이다. 이 연출에 공통점이 있다면 포장을 잘 한다는 것이다. 포장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예능은 다큐멘터리가 될 것이다’라는 평소 나PD의 연출론에 충실한 연출실력을 갖췄다는 뜻이다. 연예인들이 무인도에서 밥 지어 먹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 무의미를 있어보이게 포장하는 것이 사실 방송계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 아니겠는가.
‘나영석표 예능‘이 대중에게 많은 인기를 얻는 것도 많은 삽입곡을 넣는 맥락과 다르진 않을 것이다. 일상이 스트레스인 현대인에게 집중력과 해석을 필요로 하는 예능은 효용이 떨어진다. 유기농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갖은 양념을 쏟아 부은 나PD의 예능은 현대인에게 가장 적합한 연출인 것이다. 대중의 욕구를 놓치지 않고 포착한 게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알쓸신잡>은 개인적으로 기대감이 높은 프로그램이다. 워낙 말 많은 출연진이다 보니 사운드가 빌 일도 드물 것이다. 나PD가 포장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물론 1회에서도 무려 40곡을 때려 넣긴 했지만...). 출연진 중 한 명인 황교익 맛칼럼니스트가 입에 달고 다니는 것처럼 ‘재료 본연의 맛’을 끌어낼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 제작되길 기원한다.
PS. <알쓸신잡 시즌2>가 제작된다면 멤버를 전부 여성으로 바뀌었으면 한다. 전문직 아재들이 떠드는 건 솔직히 식상하다. 나PD의 또 다른 강점인 미친 섭외력을 발휘한다면 TV에서 만나기 어려웠던 분들도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술 취한 아재들의 견제를 뚫고 나온 여성들의 목소리가 사회에 던지는 파장이 더 크리라는 것에 500원쯤 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