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팬덤화, 팬덤의 정치화

'사랑해요 H.O.T.'에서 '해피이니데이'까지

by 고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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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우먼 박지선은 <김생민에 영수증>에 출연해 ’H.O.T 오빠들이 자기를 고려대에 보냈다’고 고백했다. 콘서트에서 문희준이 “우리 좋아해주는 것도 고맙지만 공부 열심히 해야돼요”라는 말 한마디에 공부에 매진해 전교 1등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덕질로 인생이 바뀐 박지선은 1984년생이다.

960907. 이제는 20년도 지난 1세대 아이돌의 대표 H.O.T.의 데뷔 날짜다. 하얀 풍선을 들고 사랑해요 H.O.T.를 외치던 틴에이저들도 어느덧 30대 중후반을 넘나들게 됐다(ㅜㅜ). 팬덤 문화의 태동기를 연 70년대 후반의 태지매니아까지 범위를 넓혀보면 대한민국의 허리를 받치는 3040대는 팬덤 문화와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소년기부터 자연스럽게 팬덤 문화를 즐겨온 이들이 삶의 또 다른 면에 팬덤 문화를 이식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치도 예외는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생일을 앞두고 지하철 전광판에 생일축하메시지 광고를 게재하는 것도 정치에 이식된 팬덤 문화의 일종이며, 3040의 세대적 특성이 반영되어 정치의 팬덤화'라고 지칭되는 현상이 발생한 원인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치의 팬덤화를 우려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많다. ‘문빠’라 불리는 지지세력의 문재인 팬덤화를 넘어 우상화로 악화될까 걱정하는 것이다. 무비판적인 정치인 우상화로 한국사회가 크게 홍역을 치룬 뒤라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뉴욕의 타임스퀘어에까지 광고하는 건 국제망신이라는 의견에 오바마의 생일축하메시지가 강남역에 걸린다고 상상하면 면구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비판적인 견해를 내비치는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지점이 있다. 정치의 팬덤화와 함께 '팬덤의 정치화'도 반드시 함께 따라온다는 것이다. 팬덤은 예전처럼 광기 어린 열광과 절대적인 옹호로만 작동하는 수동적 대상들이 아니라 개인적, 사회적 정체성을 확립하며 적극적으로 팬덤 문화를 즐기는 합리적 소비자로 변해가고 있다.

아이돌이 받는 불합리한 처우에는 단결해서 제도개선을 요구하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을 때는 앞장서서 비토를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표명하고 주체성을 쌓아가는 게 요즘의 팬덤 문화다. 유기견보호에 힘쓰는 이효리의 팬들. 사생활침해요소가 다분하다며 공항사진의 소비를 거부한 태연의 팬들. 성폭행 혐의로 지지거부를 선언한 박유천 팬클럽은 팬덤의 정치화의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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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지지자들 역시 단순한 맹목적 지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 중이다. 언론은 지하철 광고비가 얼마인지 따지는 선정적 보도에 그치고 있지만 문 대통령의 공약실천을 위해 장애아동 치료비와 치매노인 간병비 지원 기부금 모금액이 1억 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안타까운 것은 박사모를 분석한 김재환 감독의 <미스 프레지던트>나 최현숙 작가의 <할배의 탄생>에는 열광하며, 그들의 세대적 특성을 이해하고 꾸준한 설득을 통해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진보진영에서 오히려 같은 세대인 3040은 차가운 시선으로 깔보며 아둔한 대중으로 조롱하는데 그친다는 점이다. 박사모에게 보내는 만큼의 인내를 문빠에게도 보이는 게 생산적이지 않을까.

근본적으로는 정치의 팬덤화도 꼭 부정적으로 볼 이유도 없다. ‘애들은 몰라도 돼. 여자들은 정치에서 빠져’로 상징되던 성인남성들의 공고한 카르텔과 ‘정치는 어렵고 복잡한 것‘이라는 쓸모없는 엄숙주의가 팬덤 문화에 의해 균열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질풍노도 시기의 학생부터 지팡이 짚은 노인까지 정치인을 지지하고 때로는 목소리를 높여 토론하는 문화가 어떤 일에든 침묵하며 순응하는 것보다 낫다는 건 자명하다.

물론 팬덤의 행동이 항상 옳지만은 않다. 박지선은 다른 가수가 공연할때 X표가 그려진 검은 마스크를 썼던 일을 팬으로써 하지 말아야할 부끄러운 행동이라고 고백했다. 타 정치인에 대한 무분별한 인신공격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 역시 팬덤의 등장 이후 20여년의 시간을 축적하며 자체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성숙한 팬덤 문화로 나아가는 모습을 봤을 때,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정치의 팬덤화 역시 차차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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