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찌개와 라디오와 세월호

포기와 망각의 조건에 관하여

by 고요한

1.
내게 세월호는 미각과 청각이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 경. 나는 끓인지 이틀쯤 된 김치찌개를 우리집 식탁에서 먹고 있었다. 김치는 흐물하다 못해 결대로 찢어지기 직전이었고, 돼지고기 앞다리살에 뭉텅뭉텅 붙어있던 허연 지방은 이미 형체를 잃었으며 네모지게 썰었던 스팸은 귀퉁이가 다 떨어져나갔다. 그 김치찌개를 흑미밥과 함께 눅눅한 조미김에 싸서 우물우물 입에 넣고 전원구조라는 자막을 보고 있었다.

다음 날은 라디오 녹음을 갔다. 1부에서는 1시간 동안 추모 메시지만 전했다. 2부 초대석에서는 라이브코너도 없앴다. 이후 한 달 동안 비공식적으로 추모방송을 했다. 슬프지만 비참하지 않은 애이불비(哀而不悲)의 도를 지키느라 진이 다 빠졌다. 고작 주 1회 2시간 녹음이었는데도 말이다. 재난 이후 언론사 직원들에게도 심리치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태어나서 처음 해본 방송국 놈들에 대한 걱정이었다.

2.
영화 <생일>에서 시각적으로 가장 강렬하게 남은 소품은 수호의 교복이었다. 세월호 유족들과 여러 해 행사를 진행하며 꼼꼼하게 소품들을 준비했을 이종언 감독은 수호의 교복에 아마도 이런 스토리텔링을 숨겨놓지 않았을까.

‘하얀 카라깃에 물들랑말랑 하는 노란 목떼. 새벽부터 열을 내는 다리미가 지난 뒤에 은은하게 남은 온기. 섬유유연제 향기 사이로 아련하게 풍기는 아이들의 살 냄새. 가슴팍에 선명하게 붙은 이름표.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공부하는 아이들이 소화 안될까 제철과일을 갈아 넣은 요거트를 우물우물 마시고 운동화를 꺾어 신고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하는 아이들의 잠이 덜 깬 목소리.‘

야속하게도 교복은 왜 두벌씩 있어야 하는지. 아니 두 벌이어서 다행인지. 당장 내일이라도 입고 나갈 수 있게 옷걸이에 정설스레 걸어둔 교복에는 아마 이런 오감이 담겨 있을 것이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교복‘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생의 감각들.

3.
나는 세월호와 가깝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틀된 김치찌개와 눅눅한 조미김과 흑미밥. 숨 막히는 스튜디오의 공기와 비극에서 겨우 한발자국 벗어난 음악들과는 가깝다. 그것들이 있는한 4월 16일과 떨어지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 내 미각과 청각을 마비 시키 않는다면 세월호를 없애기는 힘들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월호가 내겐 고작 두 가지 감각이지만 유가족에겐 오감이다. 교복의 오감. 뒷굽 꺾인 컨버스의 오감. 앞부분만 새카매진 수학의 정석의 오감 등등. 아마도 생활을 둘러싼 무수한 오감이 그립고 비극적인 스토리텔링을 끝없이 만들어내지 않을까. 물론 나는 결코 모르겠지만 말이다.

4.
들을 생각은 없었지만 피할 수 없는 소음들. 벌써 5년째 아니냐고. 징글징글 하다고. 이제는 그만 좀 하라고. 물론 방법은 있다. 오감을 가진 사람이기를 포기한다면 말이다. 당연히 그럴 수 없으니 사람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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