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음악산책

그늘을 만드는 목소리

전인권밴드 - 내가 왜 서울을 듣다가

by 고요한

8월의 첫째 날이다. 본격적인 휴가철. 해 떨어진 뒤 보면 주차창이 낭낭하다. A4용지에 삐뚜름한 글씨로 ‘여름휴가’라고 써 붙이고 문을 걸어 잠근 가게도 많다. 먹고 살기 힘든 동네지만 휴가는 가야지. 나는 휴가계획이 없다. 그래서 이렇게 정신승리를 위한 글을 쓴다.

지방이 고향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서울토박이인 나는 서울구경하기 좋은 건 일 년에 딱 세 번이라고 생각한다. 설날, 추석 그리고 지금. 휴가 때문에 차들이 서울을 많이 빠져나가 도로도 안 막히고, 대중교통에 사람도 없다. 에어컨은 빵빵하다. 쉬는 가게들도 많지만 그만큼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 어디를 가야하나 결정장애를 겪을 일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인파에 휩쓸려 내가 짐짝인지 사람인지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대신 주인행세하며 서울을 누빌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이때를 놓치지 말고 사대문 안쪽을 돌아다녀야 한다. 바삐 움직이던 사람들에 가려 보이지 않던 골목골목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다만 익선동은 피해야 한다. 이제 힙하지 않으니까.

누가 댓글을 달았다. 전인권 목소리에는 그늘이 있다고.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홀로 있고 싶던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그의 목소리가 만든 짙은 그림자에 몸을 숨기곤 했다. 지금 다시 들으니 한여름 무더위를 피하기 위한 그늘로도 손색이 없다. 내일은 코인노래방을 가야지. 질러넷은 38948. 금영에는 없다.



전인권밴드가 2014년 발표한 [2막1장]의 수록곡이다. 2013년 들국화가 잠깐 재결합했지만 다시 각자의 길을 떠났다. 그리고 전인권이 본인의 이름을 건 밴드로 10년 만에 발표한 앨범. ‘걱정말아요 그대’가 10년 만에 빵 터진 것처럼 이 곡도 10년을 묵혀야 할까. 그러면 아직 7년이나 남았는데....




전인권밴드 – 내가 왜 서울을

하늘이 푸르고 태양이 빛날때
이 세상을 향하여 노래를 불렀죠

어두운 뒷골목도 내노래 아니예요
그 모두를 사랑한 여인이 떠났어요

내가 왜 서울을 사랑하지 않겠어요
내사랑 떠나간 종로 거리를

내가 왜 서울을 사랑하지 않겠어요
그모든 아픔을 그 누가 담겠어요

철길을 따라서 나홀로 걸을땐
나도 몰래 외로운 눈물이 흘렀죠

가을낙옆 길가에 외로운 화가들
자유를 위하여 만들어진 길이죠

내가 왜 서울을 사랑하지 않겠어요
내사랑 만나던 신촌 거리를

내가 왜 서울을 사랑하지 않겠어요
그모든 아픔을 그 누가 담겠어요

잊을수 없어요
잊을수 없어요
잊을수 없어요
그모든 아픔을 그 누가 담겠어요


음악듣기: https://youtu.be/yg-Al_Mareg

keyword
고요한 영화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에디터 프로필
구독자 276
매거진의 이전글취급주의 '추억의 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