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 고래 듣다가
“음악간질”이라는 말이 있다. 신경과 전문의이며 작가로 유명한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나오는 단어다. 간질(이제 뇌전증이 올바른 표현이지만 본문에 쓰인 대로 인용)은 뇌기능에 문제가 생겨 환자가 통제할 수 없는 발작을 일으키는 질병이다. 음악간질은 뇌기능 장애로 특정 곡이 환자의 통제를 벗어나 끊임없이 재생되는 경우를 말한다.
음악간질의 첫 번째 특징은 다양한 원인으로 생겨나는 일반적인 간질과 달리 발병부위가 ‘관좌엽’으로 정해져있다는 점이다. 관좌엽이 음과 음악표현에 관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환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마치 라디오를 켜놓은 것처럼 귓속에서 음악이 생생하게 울려 퍼진다고 한다. 음악간질 환자가 아닌 우리가 머릿 속에서만 ‘암욜맨’을 무한재생하던 경험과는 전혀 다르다.
관좌엽은 음악간질의 두 번째 특징에도 관여한다. 관좌엽이 음악표현만 관여하는 게 아니라 기억과 경험의 ‘회상’을 담당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이때의 회상 또한 음악이 귓속에서 울리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문제는 어떤 기억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점이다. 사례로 소개된 A는 어린 시절에 듣던 음악이 재생되어 돌아가신 엄마 품에 안긴 순간으로 돌아갔지만 B의 경우 어떤 긍정적 기억도 없는 곡이 재생되어 짜증만 유발된다고 했다.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인간은 음악을 들으며 자연스레 과거 회상하도록 태어난 존재라는 사실. 우리의 최우선 과제는 뇌진탕이나 혈전으로 관좌엽에 이상이 생기지 않도록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의 뇌가 불행한 기억으로 가득 찼다고 단정할 순 없어도 적어도 행복한 기억만 담고 있는 곳은 아니니까. 알프레도 히치콕의 영화 <레베카>에 이런 대사도 있지 않던가.
“가끔 추억의 병들이 악마를 담고 있다가 미칠 듯이 잊고 싶은 순간에 튀어나오기도 한다오“
2011년 발표한 앨범 [백야]의 수록곡. 윤계상, 한지혜가 주연을 맡은 KBS 드라마 <태양은 가득히>에 OST로 쓰이기도 했다.
짙은 – 고래
내 맘이 내 맘을 다잡지 못하는 날에
더 깊은 곳으로 날 데려갈 때
언젠가 날 울렸던 아름다운 모습으로
오늘 밤 꿈속에 다시 나를 찾아와
이제와 내게 또 무슨 말을 원해
무슨 맘을 기대해
이제야 내게도 희미할지라도
가야 할 길이 있는데
아무것도 아닌 너
내게서 사라져 가는 뒷모습
바다의 바닥에 밤이 다시 찾아오면
그 깊은 수압에 날 누르는데
언젠가 날 불렀던
기억 속의 이름들로
오늘 밤 꿈속에 다시 나를 찾아와
이제와 내게 또 무슨 말을 원해
무슨 맘을 기대해
이제야 내게도 희미할지라도
가야 할 길이 있는데
아무것도 아닌 너
내게서 사라져 가는 뒷모습
음악듣기: https://youtu.be/6xN9vHzH8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