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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마블>은 증명할 필요가 없다니까

히어로무비에 대한 나태한 비평에 대한 반론

by 고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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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캡틴 마블>이 어떤 것도 증명하지 못했다는 어느 유명한 유튜버의 리뷰를 봤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사상 가장 못 만든 졸작. 가장 강한 히어로가 등장하는 가장 약한 영화.’라고 악평을 했다.


영화와 관련된 이슈들을 배제한 채 오로지 영화의 내용만으로 리뷰를 했다는데. 과연 그 관점이 제대로 반영됐는지 의문이다. 특히 영화의 단점으로 1)세계관 최강자에 대한 의문 2)존재감 없는 빌런을 꼽았는데 같은 영화를 본 사람으로서 굉장히 동의하기 어렵다.



2.

우선 1)세계관 최강자에 대한 의문에 대한 생각이다. 영화 속에서 본인의 능력을 자각한 캡틴 마블을 보고 이렇게 외친 사람이 있던가. ‘우와 저 여자가 20년 후에 인피니티 건틀렛을 낀 우주최강 타노스를 때려잡을 MCU 세계관 최강자야!’


가장 가까이서 그녀를 관찰한 쉴드의 수장 닉 퓨리도 감히 떠올리지 못할 말이다. 애초에 이런 기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내재적 관점에서 한참 벗어나 MCU 세계관을 통달한 전지적 시점에서 나올 평가이기 때문이다.


또한 닉 퓨리가 한쪽 눈을 잃기 전의 과거 시점에 완전체인지 모를 본인의 힘을 캡틴 마블만 증명할 필요도 없다.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진정한 천둥신으로 각성하며 어벤져스에서 가장 강력한 멤버가 된 토르조차 단독작품이 아닌 <어벤져스: 인피니트 워>에 도달해서야 타노스의 가슴팍에 도끼를 꽂아 넣을 정도의 힘을 얻었다.


<어벤져스: 엔드 게임>에서 캡틴 마블이 어떤 사건을 겪으며 무슨 힘을 얻을지 모르는 상태인데 단지 단독작품에서 그만큼의 능력을 갖췄는지 모르겠다고 평가를 끝내버리는 건 end game을 ‘이젠 가망이 없어’라고 번역한 것과 비슷한 오역이다.



3.

그렇다면 2)존재감 없는 빌런이 이 영화의 단점일까. 사실 이 부분의 해석이 가장 큰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묻고 싶다. 그럼 이 영화의 빌런은 어떤 모습을 하고 등장해야 하는가. 영화를 도식화해봤다.


1)영화의 주제는 무엇인가?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여성 히어로의 각성.

2)캐롤이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시기와 장소는 어디인가? 그녀가 발을 내딛은/딛고 있는 과거와 현재

3)캐롤 댄버스에게 시련을 주는 이들은 누구인가? 불합리한 사회구조를 재생산하는 권력구조와 규율을 강요하는 직장상사

4)그들이 정체성을 혼란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녀의 힘을 통제해서 자신들의 도구로 사용하려고

5)캐롤 댄버스가 시련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기존의 시스템을 거부하고 본래 갖고 있던 능력을 발휘 한다


정리하자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여성은 남성에 비해 육체적 능력이 떨어지고, 감성적이라 자신의 능력을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성적인 남성의 지도가 필요하다’며 캐롤의 능력을 구속하는 빌런을 어떻게 형상화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런 빌런 하나를 때려잡는다고 캐롤로 형상화 된 여성에게 씌워진 가부장제의 족쇄가 한 순간에 사라질까.


단독 빌런의 존재감이 적거나 옅어도 충분히 훌륭했던 히어로 무비를 우리는 여럿 보아왔다. 히어로무비 중 로튼토마토와 메타크리틱에서 가장 높은 평점을 받은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쳐패스트>(이하 데오퓨),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이하 윈솔)가 그 예시다.


<데오퓨>의 빌런은 뮤턴트를 식별해 사살하는 센티넬을 만든 트라스크 박사인가, 뮤턴트들에게 닥칠 재앙을 막기 위기 위해 그를 죽이려한 매그니토인가. <윈솔>의 빌런은 스티브 로저스를 궁지에 몰아넣은 버키 반즈인가. 헬리 캐리어와 알고리즘을 이용해 히어로를 몰살시키려한 하이드라의 첩자 피어스 국장인가.


두 영화 모두 한 명을 빌런이라 말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두 작품 모두 ‘우리’와 다른 ‘타인’을 위험으로 간주하고 구분해서 차별하려고 한 시스템이 빌런인 탓이다. 두 작품에서는 단독 빌런의 존재감이 두드러지지 않은 것이 본인들이 만들고 있는 영화의 주제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는 증거다. 히어로든 평범한 시민이든 여성들은 모든 장소에서 매순간 차별과 싸워나가야 한다. 이를 도르마무 같은 우주적 존재로 표현할 것인가. 때문에 ‘빌런 없는 히어로무비’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캡틴 마블> 제작진의 가장 탁월한 결정이다.



4.

물론 <캡틴 마블>이 완벽하다는 건 아니다. 액션연출이 부족했다는 지적에는 공감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잔다르의 모든 군사력을 동원해 막아내야 했던 로난의 함대를 혼자 힘으로 박살낸 정도의 능력을 조금 더 부각시켰다면 좋았겠지만, 이는 단순히 연출의 문제일 뿐 증명의 부재까지 언급하기는 다소 이르다.


중심에서 밀려난 주변인들. 여성과 난민과 흑인 그리고 고양이(?)와의 연대를 통해 당당하게 외친 독립선언도 멋있었지만 이에 그칠 게 아니라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처럼 디스토피아를 박살내는 데까지 가지 않은 것도 아쉽다.


하지만 위의 반박처럼 자신감 넘치는 여성 히어로가 등장해서 ”너에게 증명할 것은 없어“라고 외치는 시대에 개봉한지 15년이 다 되어가는 <다크나이트>의 그림자에 갇혀 ‘무릇 히어로 영화의 빌런은 이래야한다’라고 외골수 비평만 반복하는 건 그간 발전해온 히어로 무비의 다양한 연출방식에 대한 이해와 해석 없이 고루한 과거의 비평틀만 고집하는 나태함의 증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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