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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소 쿠아론과 다르덴 형제 중 누가 더 낫냐?

<로마>와 <더차일드>를 통해 본 윤리적인 문화소비

by 고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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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와 <더 차일드>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와 다르덴 형제의 <더 차일드>에서 내가 발견한 공통소재는 '원치 않는 아기'다. 두 영화 모두 원치 않는 아기로 인해 발생한 주인공의 변화를 다룬다.


<로마>에서 클로에는 잠깐의 실수로 원치않는 임신을 한다. 아이의 아버지인 페르민은 클로에의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고향으로 도망간다. <더 차일드>의 주인공링 10대 소년 브뤼노는 소냐와의 사이에서 원치 않는 아이가 생긴다. 소매치기로 입에 풀칠을 하는 브뤼노는 푼돈을 받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아이를 팔아버린다.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클로에는 유산을 하고 떠난 여행에서 바다에 빠진 (거의 사회적 자녀인)주인집의 두 아이를 구한 뒤 '사실 아이가 태어나지 않기를 바랬다'고 고백한다. 브뤼노는 애타게 아이를 찾는 소냐의 모습을 보며 뒤늦게 잘못을 깨닫는다. 그리고 브로커였던 불량배에게 목숨을 위협 당하고 경찰에 쫓기는 고생 끝에 (생물학적 자녀인) 아이를 다시 찾아온다.


가부장사회의 폭력성을 묘사하고 모성애의 신화를 탈피하며 연대의 힘을 보여준 <로마>. 사회안전망의 부재로 인해 악인이 될 수 밖에 없는 빈곤층의 구조적 문제를 고발하지만 인간상의 회복을 그린 <더 차일드>. 그렇다면 어느 영화가 더 훌륭한 영화일까? 참고로 <로마>는 올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고, <더 차일드>는 2005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얼마 전의 나라면 둘은 서로 다른 가치를 지닌 명작이라고 평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더 차일드>처럼 가해자의 개과천선보다 <로마>같이 피해자의 연대를 이야기 하는 작품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싶다.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은 <로마>같은 영화가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현실에서 가해자가 개과천선 하는 경우가 가끔이고, 피해자의 연대가 승리하는 일은 더 드물다면 가상의 세계에서라도 일어나기 어려운 일을 꿈꾸고 싶다.


당연한 말이지만 영화를 비롯한 모든 예술의 주제가 피해자의 연대가 되어야한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같은 주제를 다루더라도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서사를 피하는 노력을 기울인 작품에 가산점을 주고싶다.


기계적 언더도그마라는 비판도 있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고작 영화 한 편에 마음대로 가산점을 준다고 해서 사회에 무임승차자가 한순간에 급격히 늘어나 나라가 거덜날 확률보다는 <로마>처럼 국가폭력의 피해자, 비혼모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환기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윤리적인 문화소비가 사회적자본을 더 많이 '낳는다'는 게 요즘의 내 입장이며 또한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반성이기도 하다. 혼란스러운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여러분도 쿠아론의 <로마>를 늦기 전에 극장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영화 #알폰소쿠아론 #로마 #다르덴형제 #더차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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