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음악과 라디오를 좋아할 수밖에 없던 속사정을 고백한다.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이야기다. 나는 평생 내 방을 가진 적이 없다. 남들 다 하는 등록금대출은 없었지만 서울 변두리라도 집을 한 채 물려받는다거나 하는 정도는 꿈도 꾸지 못할 그 정도. 빈곤하지는 않지만 풍족하지도 않은 딱 서민의 정규분표.
내 방이 없으니 사생활도 없었다. 같은 방을 쓰는 동생 때문에 전화통화를 마음 놓고 한 적이 없다. 동생이 방에 들어오면 급히 통화를 마쳤고 부득이한 경우에는 새벽에라도 옷을 챙겨 입고 옥상으로 향했다. 원래 통화를 안 좋아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문자와 카톡을 우선할 수밖에 없었다.
방문을 닫아도 거실의 TV소리가 가감 없이 흘러들었는데 거기에는 등록금 걱정, 연체된 고지서 납부, 국민연금 수령액 계산처럼 몰랐으면 하는 부모님의 걱정이 항상 섞여있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심장을 쥐어짜는 가사, DJ들도 목매이게 하는 어떤 사연들도 스튜디오와 송신탑에서 떨어진 만큼 안전하게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2. <기생충>을 보며 언젠가 ‘스피커 볼륨을 줄이라’는 충고를 들었던 게 떠올랐다. 소리는 귀를 막아도 들린다는 이유였다. 이를 적용했을 때 ‘선을 넘지 마라’는 표현은 다분히 시각적이다. 그렇다면 냄새는? 어느 정도 떨어져 있어야 냄새가 선을 넘지 않을까. 1m? 2m? 라면을 먹고 치워도 나는 경우처럼 눈에 보이지 않아도 냄새만 남는 경우는?
따라서 직접 살을 부대끼는 사람인 운전기사, 과외선생, 가정부의 소리와 냄새를 없앨 수 없다면 선을 지키라는 명령은 애초에 불가능한 요구다. 물론 영화를 보는 관객도 그 불가능한 요구에 당연하다는 듯 수긍하고, 목구멍이 포도청인 기택 역시 불가능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전전긍긍하지만 말이다.
영화에서 정작 명확하게 선을 넘는 건 박 사장 부부뿐이다. 박 사장(이선균)은 바퀴벌레처럼 탁자 밑에 숨어든 기택가족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채 빈곤층에 대한 편견을 ‘소리’내어 말한다. 다송의 생일파티를 준비하는 연교(조여정)는 앞좌석에 맨발을 올린 본인은 생각도 않고 기택을 흘낏 보고는 얼굴을 찌푸리며 창문을 연다.
이처럼 내로남불을 일삼던 박 사장 부부가 파국을 맞이한 건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 한국사회의 당연한 결말일지 모르겠다.
3. 음성이 없어도 영화는 만들 수 있지만 시각요소가 없다면 영화는 성립되지 않는다. 많은 분석이 보여주듯 <기생충>은 계단이라는 대표적 시각요소를 통해 시네마틱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봉 감독답게 클래식하고 친절한 상징의 사용으로 이미 나온 감상들에 더할 말은 없다고 본다.
내가 집중한 것은 오감의 충족이다. 봉 감독은 손에 잡힐 것 같은 정교한 미장센으로 손에 잡힐 것 같은 빈곤을 포착했다. 물론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촉각적 만족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고 본다. 또한 메시지를 선명하게 드러나는 ‘냄새’라는 후각적 요소와 그것에 타당성을 부여하는 ‘대화’를 통해 청각적 요소까지 건드리며 오감을 충족시켰다.
봉 감독은 칸으로 출국하기 전에 <기생충>이 한국적인 정서를 담고 있어 외국인들이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기우와 달리 <기생충>이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유는 이처럼 시각매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오감을 건드리는 정교한 구성이 뒷받침 됐기 때문일 아닐까 한다.
Part.2 - <기생충> 관객을 위한 가장 완벽한 선곡
내가 겪은 빈곤을 서두에 고백한 것처럼 <기생충> 감상평에는 디씨인사이드 흙수저갤러리처럼 유독 빈곤의 경험담이 많다. 하여튼 <기생충> 관객에게 한 마디라도 더 보태고 싶은 감정적 울림까지 선사한 좋은 작품이자 잊고 싶은 괴로움까지 끄집어내는 (악)독한 작품이라는 의미이지 않을까. ‘불행한 가족은 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톨스토이는 오늘도 연전연승이다.
정서적 치유에는 국가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인 음악이 특효약인데 <기생충>에는 감히 이보다 어울리는 선곡은 없으리라 본다. <기생충>의 음악감독인 정재일과 판소리꾼 한승석. 극작가 배삼식이 함께 ‘바리데기 설화’를 모티브로 만든 국악 크로스앨범 <바리abandoned>의 수록곡 ‘빨래 Ⅲ’이다. 2014년에 처음 이 앨범을 접했을 때부터 써먹고 싶었는데 이제야 꼭 맞는 자리를 찾았다.
한승석 & 정재일 (Han Seung Seok & Jung Jaeil) - 빨래 MV
한승석&정재일 - 빨래 Ⅲ
비지땀, 식은땀, 피고름, 살비듬, 누우런 흙먼지, 시커먼 기름때, 시큼한 땀냄새, 고릿한 발냄새, 비린내, 지린내, 노린내, 구린내, 사느라 부대껴 갖은 때에 절어, 사느라 자욱이 온갖 냄새 절어, 거리로 나서는 그대, 집으로 돌아오는 그대, 그대가 벗어놓은 한 겹의 허물, 그대가 묻혀오는 뜬 세상 먼지, 얼룩덜룩, 구질구질, 시큼시큼, 꾸덕꾸덕, 때에 절고 냄새 배어 남루해도, 아이야 괜찮다, 괜찮고 말고. 먼지 자욱한 뜬 세상, 허물 없는 목숨이 어디 있으랴.
사는 일 구질구질 냄새 나고 더럽다고 울지 마라 아이야, 괜찮다. 살다 보면 얼룩덜룩 때도 묻는 것. 살아있으니 이럭저럭 때도 타는 것.
오늘은 볕도 좋고 바람결도 선선해라. 찐득한 원망도 찌들은 설움도 팍팍한 가슴도 꽉 막힌 세상도 방망이 탕탕 쳐 맑은 물에 훌렁 헹궈 주물주물, 바락바락, 꼭꼭 짜고, 탈탈 털어 노란 볕에 잠시 잠깐 널어나 보세. 저 바람에 한들한들 말려나 보세. 아히야 나니누 나니노 나니너 나니나 너 나아 빨래야 빨래도 참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