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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의 침묵>보다 <살인의 추억>에 끌리는 이유

'악의 평범성'을 넘어 '악의 편재성'을 바라보자

by 고요한

1.

봉준호 감독이 처음 구상한 <살인의 추억> 엔딩씬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도시의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봉 감독은 첫 구상이 상투적이라며 스크린을 뚫고 나올 듯 정면을 바라보는 두만(송강호)의 얼굴을 클로즈업 하는 것으로 라스트신을 바꾼다.


상투적이라고 말한 라스트신의 대표작은 아마 <양들의 침묵>일 것이다. 탈옥에 성공한 렉터 박사(안소리 홉킨스)는 승진축하파티 중인 스털링(조디 포스터)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저녁 식사로 옛친구를 먹어야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는다. 깔끔하게 정장을 빼입은 렉터박사는 천천히 줌아웃 되며 군중 속으로 사라진다. 마치 먹잇감을 찾아 양떼 사이로 숨는 늑대처럼.


2.

제주도에서 전 남편을 무참히 살해한 잔혹한 범죄방법이 공개됐다. 하지만 의문이 든다. 시체를 조각내고 믹서에 갈아 여행용 가방에 옮겼다는 사실. 범죄현장을 청소하기 위해 샀던 표백제를 마트에서 환불하는 장면을 굳이 봐야 할 이유가 있나. 하루 종일 친절하게 이를 설명하는 언론은 동일범죄를 계획 중인 살인마에게 모범적인 범죄방식과 낭비 없는 계량을 교육하기 위해 존재하는가


더 큰 의문은 피의자의 신상공개다. 평생 교도소 밖으로 나올 일 없는 형량이 구형될 확률이 높은 범죄자의 얼굴을 알아서 얻는 이득이 있을까. 당장 어제 점심 먹은 식당의 종업원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게다가 ‘식인을 즐기는 렉터 박사’처럼 평범한 우리와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존재만 범죄를 저지르는 건가. 렉터 박사처럼 군중 속에 숨어 있는 이질적인 존재를 색출한다면 우리의 삶은 안전할까.


3.

이동진 평론가와의 인터뷰에서 봉 감독이 밝힌 <살인의 추억> 라스트신의 콘셉트는 ‘과거의 화살’이다.


‘과거의 화살’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데 첫째는 스크린 너머에 있을지 모를 범인에게 쏘는 것. 두 번째는 과거의 비극을 잊고 평범한 시민이 된 두만의 명치로 꽂히는 것이다. <살인의 추억>의 가장 큰 성취는 '악의 평범성'을 뛰어넘어 '악의 편재성'을 우리에게 각인시켰다는 점이다.


하지만 두만의 얼굴을 기억하는 우리가 반인륜적인 범죄를 겪을 때마다 날린 ‘과거의 화살’들은 결국 어디로 향했는가. 우리들의 명치를 때리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고 일깨우는 대신 혹시 이미 수감된 살인마들을 확인사살 하는데 낭비되고 있지는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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