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세 - 소녀 듣다가
2박 3일 동안 속초로 여행을 다녀왔다. 계획은 즉흥적이었다. 7월? 8월? 정확히는 기억 안 나는데, 자몽에이슬을 처음 마시고 너무 맛있다며 두당 5병을 채우자고 객기를 부리다가 멤버들이 모두 만취한 날(나는 다음날 숙취 때문에 너무 괴로워서 30대가 되어 처음으로 응앙응앙 울었다). 그러니까 을지로 육미에서 막회무침을 앞에 두고 의기투합한지 거의 반년 만이다. 여행은 변동이 많았다. 처음엔 5명이었던 여행 멤버는 10명이었다가 6명이 됐다가 8명이었다가 7명이 됐다가 결국 6명으로 마무리 됐다.
나는 뭔가 배우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아니다. 여행에서 보는 게 있다면, 여행지가 아닌 곳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게 있다고 믿는다. 당장에 이번 여행 때문에 <샤이닝> 스크린 상영을 포기했다. 부지런하거나, 운이 좋으면 어디서든 깨닫고 배우는데는 지장이 없다. 말은 번드르르하게 했는데 언제나 그랬듯 먹고 마시고 취하는데 의미를 두었다는 뜻이다. 깨어있던 시간의 반은 ‘으으~’로 보냈고 나머지 절반의 절반은 ‘짠!’으로 채웠다.
똑같은 패턴이었지만 새롭게 시도한 건 있었다. 선물증정이다. 만원 안팎으로 의미 있는 선물을 하나씩 사와서 여행 마지막 밤에 선물을 안겼다. 아직 2015년이 20여일 남았지만 친구들과 보낸 올해의 베스트라면 이때를 꼽고 싶다. 고심에 고심을 더한 끝에 준비한 무쓸모한 선물들. 그 선물을 받고선 어김없이 실망하며 빡쳐하는 고마운 반응 덕분에 가장 많은 웃음을 남길 수 있었다. 자주하면 금세 식상해질테니 아껴뒀다가 내년 연말에 꼭 다시할거다.
그러고 보니 6인 이상 여행을 떠난 지 오래됐다. 2011년이 마지막이었던가. 학교 다닐 때는 엠티다 뭐다 해서 1년에 두 번은 간 것 같은데 사회인이 되고 보니 날짜 맞추기가 어렵다. 서울에서도 시간 맞추기 힘드니 당연한 일일까. 경사나 조사에서나 다 같이 얼굴 보며 놀까. 30대에는 친구 만나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더니 초입에서부터 그런 징조가 보인다. 잔치라도 자주하면서 얼굴 까먹지 않게 신경 써야한다.
다음 여행은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술김에 벚꽃이 흐르러지는 3월말이나 4월초쯤 다시 한 번 자리를 마련하자고 굳은 맹세를 했지만 계획이란 놈은 현실과 만나면 항상 실컷 두드려 맞고 댓자로 뻗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또 다시 벌떡 일어설 수 있는 것도 계획이라는 이름의 희망과 꿈, 기대라는 놈이니 내년 봄을 기다릴 수밖에.
1985년 발표한 3집 [난 아직 모르잖아요] 수록곡이다. 속초여행 중에 차 안에서도 숙소에서도 <응답하라> 시리즈에 쓰인 곡들을 참 많이 들었다. 1997의 곡들은 유행가, 1994는 한국가요의 황금기에 나온 곡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1988은 두 시대를 품은 투박하지만 더욱 가치있는 원석과 마주한 느낌이다.
이어서 나올 4집 [사랑이 지나가면]이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지만 이 앨범을 통해 이문세-변진섭-신승훈-조성모로 이어지는 한국 발라드 전성기가 시작됐다. ‘파랑새’라는 어정쩡한 히트곡 하나만 남긴 채 본업인 가수보다 입담 좋은 DJ로 더 유명했던 이문세가 영혼의 단짝인 이영훈을 처음 만난 앨범이기도 하다.
이문세는 당시 엄기호(확실하지 않음)의 소개로 역시 무명 작곡가였던 이영훈을 만나서 곡을 하나 달라고 한다. 습작 여러개 중에 처음으로 쳐줬던 곡이 바로 ‘소녀’의 앞부분이라고 한다. 트로트풍의 80년대 발라드를 벗어나 클래식과 접목한 고급스러운 발라드로 이문세-이영훈 콤비는 단숨에 젊은 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최근에는 <응답하라1988>의 삽입곡으로 오혁이 리메이크해서 챠트 1위를 기록했다. 가창력이야 말할 게 없지만 ‘소녀’의 시작을 알리는. 그리고 이문세와 이영훈의 만남이 시작된 역사적인 인트로가 싹 날아가서 원곡의 감성에는 절대 못 미친다는 생각이다.
이문세 - 소녀
내 곁에만 머물러요 떠나면 안돼요
그리움 두고 머나먼 길
그대 무지개를 찾아올 순 없어요
노을진 창가에 앉아
멀리 떠가는 구름을 보면
찾고 싶은 옛생각들 하늘에 그려요
음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속에
그대 외로워 울지만
나 항상 그대 곁에 머물겠어요
떠나지 않아요
노을진 창가에 앉아
멀리 떠가는 구름을 보면
찾고 싶은 옛생각들 하늘에 그려요
음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속에
그대 외로워 울지만
나 항상 그대 곁에 머물겠어요
떠나지 않아요
음악듣기: https://youtu.be/5twaDXnBnm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