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 – 가질 수 없는 너 듣다가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이번주 방송을 봤다. 윤종신, 박정현이 나오는 음악 프로그램은 어지간하면 챙겨보려고 노력하는데, 이번에는 둘 다 나온다니 안 볼 수가 없었다. 윤종신은 박정현과 함께 미스미스터의 ‘널 위한거야’를. 유희열은 거미와 함께 뱅크의 ‘가질 수 없는 너’를 리메이크했다. 리메이크 전에 10~40대 각 25명, 총 100명에게 인지도 조사를 하는데 가질 수 없는 너는 10대에서 –4, 20대에선 –1표를 받아 95표를 기록했다. 역대 2위라고 한다.
‘가질 수 없는 너‘ 이전에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곡은 98표를 얻은 izi의 ‘응급실’이다. 내 또래라면 노래방에서 진짜 질리도록 들어서 이제 부르지 않기로 암묵적 합의에 도달한 노래다. 그런데 한켠으로 의문이 생긴다. 곡의 생명력이란 노래방보다는 라디오로 결정된다고 믿는 편이라 라디오에서 들어본 기억이 드문 응급실의 무지막지한 인기를 실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가질 수 없는 너‘는 라디오고 노래방이고 가리지 않는다. 지금도 잊을 만하면 나오는 곡이라 은근히. 아니 당연히 100표를 기대했다. 물론 내 기대는 처참히 깨졌다.
가질 수 없는 너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방송에서 깨진 건 그럴 수 있다. 음악도 안 듣고 노래방도 자주 안 가는 10대는 충분히 모를 수도 있으니까. 정말 놀란 건 내 주변에도 가질 수 없는 너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거다. 나보다 어리긴 하지만 별로 차이도 안 나고, 나름 라디오 좀 들었다는 사람인데 후렴구를 말해도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제 정말 발라드(+록발라드)의 시대는 끝난 건가. 아니면 단지 가질 수 없는 나라는 한 곡이 아재들의 노래로 편입 된건가.
마침 올해 가온챠트 결산이 나왔기에 탑50을 훑어봤다. 최신 곡을 잘 모르는 나였지만 발라드라고 부를 만한 곡이 나얼의 ‘같은 시간 속의 너’와 임창정의 ‘또 다시 사랑’ 그리고 엠씨더맥스의 ‘그 남잔 말야’ 정도라는 건 알겠더라. 나머지는 댄스와 랩, 힙합의 차지였다. 아무리 장르구분이 희미해진 시대라고 하지만 변진섭, 신승훈을 필두로 조성모, 이수영 등이 연말 시상식에서 대상을 차지하며 젊은 사람들의 노래로 주목받아온 순간과 함께 자라온 내게는 지금의 현상이 굉장히 생소하다.
섣부른 예상이지만 어쩌면 발라드는 트로트의 길을 걸을지도 모르겠다. 트로트 역시 처음 나왔을 때는 민요나 가곡같은 아재들의 음악을 뒤로하고 젊은이들이 즐겨 듣던 음악의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다. ‘트로트는 나이를 먹어야 그 맛을 알아’라는 수식어를 달게 될 날을 상상하진 않았겠지. 그렇다면 언젠가 우리도 젊은 세대에게 ‘발라드는 나이 먹을수록 좋아’라는 말을 하게 될 운명을 피하긴 어려울 것 같다. 그리고 그 순간이 바로 젊은 발라드의 최후의 날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상상하기 싫지만, 싫은 상상이라고 현실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오히려 슬픈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
1995년 발표한 뱅크 1집 [The Bank]의 타이틀곡이다. 곡의 유명세에 비해 뱅크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게 없다. <슈가맨>에서 정시로가 밝히길 뱅크란 이름의 기원은 ‘음악에 대한 감동을 이자쳐서 드리고 싶다‘는 뜻이라 한다. 위키를 찾아보니 성균관대학교 철학과 출신으로 대영AV 작곡가 및 디렉터였던 정시로의 프로젝트의 그룹이라고 한다. 사실 가수로 데뷔할 생각이 없었지만 ‘가질 수 없는 너’를 받기로 한 가수가 잠수 타는 바람에 직접 부르게 됐다고 한다. 될놈은 뭘 해도 된다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사랑받는 곡이니 연금을 탄 거나 다름없다. 현빈, 박완규, <응답하라 1994>에서 하이니가 리메이크했으며 최근엔 <복면가왕>에서 클레오파트라가 부르며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다.
뱅크 – 가질 수 없는 너
술에 취한 네 목소리 문득 생각났다던 그 말
슬픈 예감 가누면서 네게로 달려갔던 날 그 밤
희미한 두 눈으로 날 반기며 넌 말했지
헤어진 그를 위해선 남아있는 네 삶도 버릴 수 있다고
며칠사이 야윈 널 달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마지막 까지도 하지 못한 말 혼자서 되뇌였었지
사랑한다는 마음으로도 가질 수 없는 사람이 있어
나를 봐 이렇게 곁에 있어도 널 갖진 못하잖아~
눈물 섞인 네 목소리 내가 필요하다던 그 말
그것으로 족한거지 나하나 힘이 된다면 네게
붉어진 두 눈으로 나를 보며 넌 물었지
사랑의 다른 이름은 아픔이라는 것을 알고있느냐고
며칠 사이 야윈 널 달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마지막까지도 하지 못한 말 혼자서 되뇌였었지
사랑한다는 마음으로도 가질 수 없는 사람이 있어
나를 봐 이렇게 곁에 있어도 널 갖진 못하잖아
음악듣기: https://youtu.be/iwePzJLYBw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