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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카피 Jan 02. 2025

059. 먼저, 너의 날을 기도하게 되었다

나도 엄마 다 됐네



어김없이 새해가 찾아왔다. 12월 31일을 송구영신예배로 보내고 교회에서 1월 1일을 맞이한 아이들은 졸린 눈을 꿈뻑이며 기뻐했다. 

"나 이제 8살이야."

옆에서 듣던 둘째가 새침하게 콕 찌른다.

"만 나이는 아직이다."

두 자릿수도 안된 꼬꼬마들이 한 살을 더 먹었네 덜 먹었네 투닥거리는 소리가 우습기 그지없다. 행복하게 우스운 새해가 찾아왔다. 


올해도 자연스럽게 기도를 했다. 우리 첫째는 이제 1학년이 되는데 적응 잘하게 해 주세요. 둘째는 더 씩씩하게 해 주세요 등등.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어떤 상황에도 모든 기도는 아이들이 우선이라는 걸 말이다. 픽- 웃음이 났다. 나도 엄마 다 됐네. 


분명 처음은 낯설었을 것이다. 내 밥보다 아이 밥을 먼저 챙기는 일. 내 옷보다 아이 옷을 먼저 챙기는 일. 내 잠보다 아이 잠을 먼저 챙기는 일들이 말이다. 

농담스럽게 엄마들끼리 하는 얘기가 있다. 애들이랑 외출하다 거울을 보면 나만 후줄근하다고. 애들은 장갑, 목도리, 귀마개 다 하고 나가는데 엄마만 헐벗었다고. 


3년 전인가. 오랜만에 남편이 일찍 퇴근해서 온 가족이 저녁 산보나 나가자 한 적이 있었다. 난 으레 그렇듯 아이들을 챙기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평소처럼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단지로 나왔다. 그때 남편이 기겁을 하며 말했다. 

"집에서 입는 핫팬츠를 밖에 입고 나오면 어떡해?!"

그 눈빛은 진정 어이없었고 그 어조는 진정 탓하는 투였다. 

"아니 나도 몰랐어. 애들 챙기느라 난 몰랐지."

허둥지둥.


물론 그 현장에서 나를 이해 못 했던 남편은 그 주 주말, 홀로 아이 둘을 케어한 후 100% 이해로 돌아섰다.

"와, 진짜 정신없는 하루였어. 정신이 없어서 나 같으면 옷 벗고 나갔을지도 몰라."


그렇다.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 뇌의 프로세스와 근육반응의 우선순위가 바뀐다. 내 몰골을 따지기 전에 아이가 나가서 추울까 더울까 그게 먼저다. 저녁에 뭐 먹지?라는 질문은 아이들 뭐 먹이지?라는 뜻이다. 그 안에 난 뭐 먹지는 거의 없다. 


모성애 같은 거창한 단어를 붙일 필요도 없다. 나보다 작고 내가 책임져야 하는 존재이니까. 그게 거의 전부다. 나는 종종 이렇게 비유한다. 회사에서 월급 받고 일하는데 책임감 없이 일하면 회사 짤리는 거지. 육아라고 뭐가 다를까.

너 먼저, 이건 책임이 8할이다. 


하지만 1월 1일을 시작하며 아이들을 위한 기도를 되뇌며 조금 다른 느낌을 느꼈다. 너희가 먼저가 아니면 안 되는구나 이젠. 엄마인 내가 안심하려면 먼저 너희가 안전해야 하고 잘돼야 하는구나. 

어른들 말에 틀린 거 없다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프고 먹는 거만 봐도 배부르다는 건 진실인 듯하다. 힘들지 않은 게 아니고 고민이 없는 게 아니지만 그래도 수년 동안 해내는 걸 보면 뭔가 보상이 있긴 있는 듯도 하다. 


그래서 올해도 아이들의 기도를 먼저 했다. 건강하게 해 주세요. 행복하게 해 주세요.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잘 놀고 잘 이겨내게 해 주세요. 그리고 행복하게 해 주세요. 더불어 저도 같이 그러면 좋겠네요. 이렇게.


진심으로 나도 엄마 다 됐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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