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 ― 밤이 두려웠던 이유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냄새가 바뀔 뿐이다.”

by 차가운무스탕

밤은 누구에게나 하루의 끝이지만,
그때의 나에게 밤은 ‘다시 시작되는 공포’였다.
낮 동안은 괜찮았다. 환자와 이야기하고, 진료 기록을 쓰고, 일상 속의 긴장감에 몸을 맡기면
어느 정도 나를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해가 지고 불빛이 잦아들면, 내 안의 또 다른 세상이 깨어났다.


불이 꺼지고, 방이 조용해지는 그 순간,
몸이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건 잠으로 향하는 이완이 아니라, 바닥으로 꺼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내 몸이 지구의 중심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감지 못했다.
눈을 감는 순간, 까만 블랙홀이 나를 삼켜버릴 것 같았다.
온몸이 무중력 상태가 되면서, 가슴 한가운데서 알 수 없는 ‘추락감’이 올라왔다.


그 공포는 생각보다 물리적이었다.
심장은 쿵쾅거리며 내 가슴을 두드렸고, 숨은 갈비뼈에 걸린 듯 막혔다.
가만히 누워있으면 금방이라도 질식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매번 새벽녘이면 벌떡 일어나, 배란다로 달려갔다.
창문을 열면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그제야 비로소 숨이 조금 트였다.
나는 손으로 가슴을 눌렀다.
심장이 터질 듯 뛰고 있었다.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
그 말을 반복하며, 내가 아직 존재한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확인시켰다.


이건 단순한 불면이 아니었다.
그건 자율신경이 균형을 잃은 밤의 전쟁이었다.
낮 동안 과열된 교감신경은 밤이 되어도 꺼지지 않았다.
몸은 잠들고 싶은데, 신경은 여전히 싸움을 계속했다.
마치 불이 꺼진 집 안에서, 유일하게 남은 전등 하나가 끝까지 버티는 것처럼.
나는 그 전등의 깜빡임 속에서 잠을 잃었다.


그때 나는 몰랐다.
수면은 단순히 눈을 감는 행위가 아니라, 신경이 안심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교감신경이 ‘위험 없음’을 인식해야만 부교감신경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그때는 오직 몸으로만 배워야 했다.


잠들기 전, 내 몸은 늘 경계태세였다.
심장은 감시병처럼 뛰었고, 호흡은 얕고 빨랐다.
마치 무언가 나를 덮칠 것 같은 공포가 실체 없이 다가왔다.
그 공포의 본질은 “내 몸을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었다.
내 안의 시스템이 나를 지켜주지 못할 것 같은 불신.
그건 가장 깊은 외로움이었다.


그래서 나는 밤마다 작은 의식을 만들었다.
향기 하나, 문장 하나, 호흡 하나.
모든 것을 단순하게 만들어야 했다.
너무 복잡한 건 더 큰 불안을 불러왔다.


처음엔 침대 옆에 라벤더를 두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향은 **‘진정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리듬을 만드는 신호’**라는 걸.
그래서 다음부터는 향을 뿌리지 않고, 맡기만 했다.
향기를 맡으며 4초 들이마시고, 7초 멈추고, 8초 내쉬었다.
‘4-7-8 호흡법’.
처음엔 코가 아닌 목으로 향이 들어오는 듯했고,
몇 번을 반복하자 심장의 박동이 조금씩 느려졌다.
내 몸이 향을 ‘위험이 아니다’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향기의 분자는 코를 거쳐 바로 변연계로 간다.
거기엔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편도체와 해마가 있다.
이 작은 경로가 내 자율신경의 숨구멍이었다.
라벤더와 베르가못의 조합은 나에게
‘이제 싸움을 멈춰도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향을 맡으며 이렇게 속삭였다.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
이 문장은 주문이자 구조 신호였다.
내가 나를 붙잡기 위해 던지는 밧줄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밤을 두려워하는 대신,
‘밤을 견디는 법’을 배웠다.
두려움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두려움을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건 큰 변화였다.
공포의 순간에 ‘멈춤’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몸이 다시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는 신호였다.


이제는 잠들기 전, 라벤더를 손끝에 묻혀 코끝에 대고
깊게 들이쉰다. 그리고 한마디를 남긴다.
“오늘도 잘 버텼어.”
그 한 문장으로, 교감신경은 잠시 내려놓는다.
그리고 부교감신경은, 내 몸을 다시 감싸준다.


밤이 두려운 이유는
어둠이 아니라, 몸의 불안이 빛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나는 그 어둠 속에서도 향기의 빛을 찾는다.
그 향은 언제나 말한다.
“괜찮아, 이제는 숨을 쉬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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