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은 패배가 아니다. 그것은 내 안의 리듬을 다시 듣는 행위다.”
2010년 7월 1일 새벽.
눈을 떴다. 아니, 정확히는 ‘떠져버렸다’가 맞다.
몸이 내 의지보다 먼저 깨어났다. 세상이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방이, 천장이, 공기가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었다.
배 위에서 자는 것처럼, 바닥이 출렁였다. 멀미가 밀려왔다.
눈을 감으면 더 어지러웠다. 눈을 뜨면, 세상이 내게서 멀어졌다.
나는 침대 끝을 붙잡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중심을 잃은 몸은 나를 허락하지 않았다.
손끝이 차가웠고, 온몸의 피가 한순간에 위로 쏠리는 느낌이었다.
‘이게 뭐지?’ 그때까지는 단순한 빈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나도 세상은 멈추지 않았다.
그날, 나는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순간’을 처음 경험했다.
옆방에서 자던 남동생을 불렀다.
“나… 이상해. 일어날 수가 없어.”
새벽 네 시쯤, 아직 바람이 차가운 시간이었다.
택시를 부르려 했지만, 일어나 앉을 수도 없었다.
결국 우리는 걸었다. 아니, 기었다.
벽을 짚고, 신발을 질질 끌며, 엉금엉금 새벽의 골목을 지나 응급실로 향했다.
걸음마다 세상이 기울었다.
그렇게 몇십 미터를 가는 데 십 년이 걸린 것처럼 느껴졌다.
응급실의 문이 열리자, 코끝을 찌르는 소독약 냄새가 덮쳤다.
차가운 형광등 불빛 아래, 간호사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환자분, 어디가 불편하세요?”
나는 대답 대신, 팔을 잡고 버텼다.
멀리서 ‘삐삐’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의 심전도.
나는 그 소리가 내 심장 소리인 줄 알았다.
의사는 내 손목을 잡고 혈압을 쟀다.
“혈압 괜찮아요. 맥박도 정상이네요.”
잠시 뒤, 그는 말했다.
“아마 스트레스성 어지럼증 같아요. 하루이틀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
그 말에 이상하게 화가 났다.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라는 말이 나를 위로하지 못했다.
나는 쉬어본 적이 없었다.
멈춘 적이 없었다.
늘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돌보며, 완벽한 진료를 위해, 누군가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
늘 내 교감신경은 깨어 있었다.
그런데 정작 나를 달래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응급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고, 나는 그 위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죽을 것 같지만, 아무도 내 고통을 몰랐다.’
그날의 절망은 두려움보다 깊었다.
몸이 보내는 경고를 무시해온 지난 시간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몸의 언어’를 들었다.
“제발, 이제 멈춰줘.”
다음 날 아침, 나는 진료실에 나가지 않았다.
대신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휴대폰을 꺼두고, 커튼을 닫았다.
밖에서는 새소리가 들렸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쉼’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멈추는 법’을 몰랐다.
병원에서도, 집에서도, 머릿속에서도 나는 늘 달리고 있었다.
이젠 멈추고 싶었다.
그런데 어떻게 멈추는 걸까?
그날 밤, 우연히 서랍 속에서 라벤더 오일을 발견했다.
예전에 수면 보조용으로 선물받고 잊고 있던 작은 병이었다.
뚜껑을 열자, 부드럽고 따뜻한 향이 방 안에 퍼졌다.
그 향은 소독약 냄새와는 달랐다.
살아 있는 냄새였다. 사람의 체온이 느껴졌다.
나는 그 향을 맡으며,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내 몸이 한숨처럼 “후…” 하고 내쉬는 것을 느꼈다.
그날 이후, 나는 하루에 세 번 향을 맡기로 했다.
아침엔 라벤더 1방울을 손목에 바르고 심호흡 10초,
점심엔 물 한잔 후 복식호흡 3회,
밤엔 향기 없는 고요 속에서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괜찮아, 오늘은 잘 버텼어.”
라벤더의 리날룰(linalool) 분자는 후각신경을 통해 뇌의 시상하부에 작용하여
교감신경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킨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이런 생리학적 지식보다 더 단순한 이유로 그 향을 선택했다.
그 향은 ‘내가 살아있다’는 감각을 되돌려주었기 때문이다.
어지럼, 불안, 심계항진, 구토…
그 모든 감각 속에서 단 하나의 ‘안정’만이 내 몸을 잠시 멈춰세웠다.
그건 바로 향이었다.
나는 그날 깨달았다.
몸은 나를 배신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없이 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나는 그 신호를 무시했고, 몸은 결국 나를 멈추게 만들었다.
멈춤은 포기가 아니었다.
멈춤은 회복을 위한 첫 의식이었다.
49일 회복 루틴의 첫날, 나는 그렇게 멈추는 법을 배웠다.
눈을 감아도, 세상이 돌지 않았다.
내가 조금씩, 나를 되찾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