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새끼, 개새끼.. 내가 만났던 놈들은 다 개새끼
‘나의 해방일지’에서 염미정이 했던 대사가 하루종일 머릿속을 자꾸 맴돌았다. 개새끼... 혼자 멍청히 중얼거린다. 씹새끼. 십팔새끼. 좇같은 새끼. 쌍놈의 새끼도 아니고 개새끼... 뭔가 이 느낌적인 느낌. 씹이나 십팔새끼는 ‘씹’이 좀 여성성기비하 여서 입 밖으로 낼 때 죄책감이 든다. 다른 놈의 새끼들은 좀 길어 말하다 화가 사그라든다. 분노를 한 번에 몰아 터트리는 느낌이 없다. 통으로 말해야 시원한데. 중간에 스타카토처럼 강세를 줘서 끊어 말해도 안 된다. 개! 새! 끼! 뭔가 따로 노는 느낌. 한 번에 입에서 임팩트 있게 바로 확 하고 튀어나와 버려야 한다. 그러다... 역시 그놈이 떠오른다. 그때 속에서 불길이 솟아오르고, 저 내장의 아주 깊숙한 곳에서 화를 모으고 모아 한 번에 개새끼! 하고 내 질러버린다. 눈을 위로 치켜뜨면서 욕을 먹어야 마땅한 그를 떠올리며 개새끼!! 아.. 이제 좀 시원하네.
원래 ‘새끼’가 들어가는 욕을 좋아하지 않는다. 뭔가 연좌제스럽다고나 할까. 죄는 그놈이 지었는데 왜 어미에 비를 욕하나. 주로 욕을 세게 표현하는 접두어 ‘개’도 별로다. ‘개’가 얼마나 인간을 이롭게 하는 동물인데, 그런 자에게 ‘개’는 욕이라기보다 존칭에 가깝다. 꼭 앞에 ‘개’를 쓰고 싶다면 ‘개보다도 못 한’을 추천한다. 사실 그런 자들이 너무 많아 욕이 안될 수도 있겠지만은.
욕 ‘개새끼’는 생물학과 역사적 맥락을 지닌다. 일단 포유류 개는 ‘근친상간’을 한다. 지 에미애비랑 붙어먹는 개, 같은 자는 성(性)적으로 문란해 욕이 된다. 문란(紊亂)은 도덕이나 사회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을 지칭할 때 쓴다. 공동체 윤리를 무시한 채 지꼴리는 대로 성욕을 채워서 멸시받아야 하는 미개인을 분류할 때 접두어 ‘개’가 으레 붙는다. 거기에 ‘새끼’까지 붙는다.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열등한 계급에서 태어나 그 미천한 신분을 이어받은 자, 그리하여 ‘새끼’도 욕이 된다.
‘개새끼, 개새끼.. 내가 만났던 놈들은 다 개새끼’. 노래가사 후렴구처럼, 염미정의 대사가 입에 쩍쩍 붙는다. 감칠맛까지 난다. 내가 만났던 놈들도 다 개새끼. ‘가스라이팅. 폭언. 금품갈취, 양다리 혹은 문어다리, 폭행, 추행’ 등등. 사귈 때 한 이런 잘못된 행동으로도 이들은 개새끼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나와 사귀기 전에도 그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내가 원래 개새끼를 사귄 것이다. 개새끼인 걸 몰랐냐면 그것도 아니다. 내 취향이 개새끼이다. 소크라, 테스 형의 명언이 떠오른다. ‘너 자신을 알라’. 이걸 처음부터 알았다면 내 연애사는 개판이 되지 않았을 텐데... 쩝...
왜 개새끼만 골라 사귀냐고?
그냥 개새끼를 사귄 게 아니다. ‘서울대생’ 개새끼, ‘전문직’ 개새끼, ‘돈 많은’ 개새끼 등등. 따옴표 단어는 남자를 폼나게 한다. 멋져 보인다. ‘개새끼’를 잊을 만큼. 따옴표는 그 남자가 가진 사회적 자원 및 계급을 보여준다. 우선 이런 자원을 가진 남성에게 ‘선택당한’ 나도 이들과 비슷한 자원을 가진 걸로 보인다. 나를 돋보이는데 이만한 연애도 없다. ‘여자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말이 있다. 있는 집 뒤웅박에는 쌀이 담기지만, 없는 집은 거기에 여물을 담는다. 어떤 남자와 관계를 맺느냐가 여자의 계급을 결정한다는 말이다.
즉, 사장님이랑 결혼하면 사모님이 된다. 그리하여 ‘사장님 개새끼’랑 사귄다. 남들은 이놈이 사장인 줄만 알지 개새끼 인 줄은 모르니, 결혼하면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사모님 소리를 듣겠다, 뭐 이런 공산이다. 전문직 남성과의 결혼으로도 사모님이 된다. 판사 사모님, 의사 사모님 등등. 전 근대적인 발상인가? 의사가 그리 좋으면 네가 의사가 되지? 남자에 빌붙어 인생을 살려하냐?라는 개인적 성찰 뒷 따른다. 반성보다는 사실 이들의 ‘개새끼’ 짓에 지친 나머지 이들과 헤어지고, 어느 정도 수동으로 나는 진화한다.
더 이상 남성계급에 편승하지 않고 스스로 계층의 사다리를 올라가려 했다. 그때는 뭔가 실체가 있는 물질적 자원을 가진 남성보다는 ‘사랑’이 으뜸이었다. ‘사랑’을 채워줄 만한 남성들을 주로 만났다. 날 굉장히 ‘사랑한다는’ 개새끼, 나한테 ‘착한’ 나이스한 개새끼, 같이 있으면 편안한 ‘성격 좋은’ 개새끼 등등. 어떤 것도 극복할 수 있는 ‘사랑’, 진정한 로맨스의 실현. 이게 내 궁극적인 목표였다.
어쩌다 ‘개새끼’에게 넘어가게 되었는지는 너무 쉽다. 일단 이들이 던저주는 미끼를 덥석 문다. 거리의 철학자 강신주는 한 강연에서 집에서 푸대접을 받고 자란 여자들은 밖에서 남자가 밥 한 끼만 사줘도 너무 고마워서 홀랑 넘어가 버린다고 했다. 여기서는 밥이 미끼다. 난 로맨스를 원하니, 좀만 날 좋아한다고 해도 홀딱 넘어간다. 개새끼여도 ‘날 사랑한 데잖아’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뭐 몇 번 만남이야 그렇다고 손 쳐도 왜 썸 탈 때 예고편이 있었는데, 연애라는 본편으로 넘어갔는가가 문제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