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개새끼’만 만나요

서문 2

by 이승민


‘힌트가 있었는데...’ - 관계의 시작


썸 탈 때 이미 그의 견(犬)성을 눈치 까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몸터치 하면서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성격. 팔뚝 안쪽 살이 두부같이 부드럽다면서 슬쩍 꼬집는다. 본인은 귀엽다고 한일인데 당한 나는 얼얼하다. 나중에 보니 시퍼렇게 멍까지 들었다. ‘힘조절을 잘못했나. 뭐 실수겠지'라고 애써 모른 척, 은근슬쩍 넘어간다. 하물며 주변에서 얘기도 들려온다. “아니 내가 이런 말 하고 다니는 사람은 아닌데, 혹시나 해가지고. 하도 와이프 머리 쥐 뜯어놔 가지고 이혼당했대잖아. 찍소리도 못하고” 이혼 사유가 웬일 허락 없는 신체훼손이라니?!! 그와 나를 아는 여자 지인들은 쉬쉬 하면서도 은근슬쩍 내게 그 사실을 흘려준다. 그와 썸 타는 나에게 힌트를 주는 거겠지.. 고마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썸탄지 얼마 되지 않아 배가 아파 근처 대학병원에 갔을 때였다. 혼자 진료 봐도 되는데 그는 굳이 오겠다고 로비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의료진에 환자에 보호자들 까지 대학병원답게 병원 로비는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거기에 지속되는 복통까지 겹쳐 통증을 잊으려는데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기에 그가 온다는 사실 또한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쪽에서 다가오는 한 장신의 남자. 옷이 날개라더니 하이얀 의사가운을 펄럭이며 다가오는 그. 멋.있.다. 가운 앞주머니에 실로 꿰매진 신경외과 전문의.. 내 마음속에도 박음질된다. 평소 즐겨보는 슬의생 드라마 속 주인공들보다 더 지적여 보인다. 평소에 끼지 않는 얇은 금색 안경까지 그의 흰 피부와 어울려 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 굳이 서울대의대 출신이라는 걸 떠올리지 않아도 그의 지성은 스마트한 외모에 물씬 묻어났다.


지성과 외모 거기에 다정한 성격까지. 도대체 단점이랄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해 보이는 그의 매력에 점차 빠져들고 있다. 잘생긴 의사 선생님을 남자 친구로 두려는 욕심에 눈이 멀어 사방이 어두컴컴하다. 그의 폭력성은 이제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해 저문 시골길, 어슴푸레 켜진 가로등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그에게로 돌진. 마치 불빛이라곤 거기밖에 없는 듯이. 재빠른 날갯짓에 비해 날개는 다소 무거워 보인다. 불안한 자신감이 그 위에 얹혀있다.


‘어디 가서 이런 의사를 또 구해. 열쇠가 몇 개는 돼야 된다잖아. 우리 집은 서울에 집 한 칸 없는데. 이 정도면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지 뭐. 그 여자는 오빠를 무시했다고 했잖아. 화가 나서 그랬겠지. 나는 오빠한테 잘할 거니까, 나랑 사귀면 안 그럴 거야. 세상에 태어나서 나처럼 좋아한 여자 없다고 했잖아. 좋아하는 여자한테는 안 그런다고 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스스로에게 불안을 설득 당한채, 짐짓 날개를 펴고 불 속으로 비상한다. 그렇게 관계는 시작된다.

———


‘내가 잘하면 돼’ - 관계의 지속


연인관계로 지내니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다. 견犬성은 이미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었다. 눈뜨고 감을 때까지 뭘 하는지 보고하는 건 둘째치고 본인이 하고자 하는 대로 두지 않으면 갑자기 어깨를 밀치거나 팔을 세게 잡는다던지 해서 내 의견을 묵살시켰다.


사귄 지 백일이 되는 날 애들처럼 우리도 기념일을 챙기자며 그가 집으로 초대했다. 풀옵션 주상복합답게 주차장부터 집안구석구석까지 세련되면서도 편리한 그의 집. 은은한 베이지 톤의 가구에 주황색이 감도는 따뜻한 조명까지 집안의 코지한 기운이 혼자 사는 남자집에 온다는 긴장마저 풀리게 했다. 그는 손수 앞치마를 두르고 치익~치익~ 맛있는 소리를 내가며 스테이크를 구웠다. 어금니 사이로 흐르는 고소한 육즙이 사라질까 혀로 연신 닦아가면서 먹는다. 그가 주는 오크 향 레드 와인마저 약간은 느끼할 수 있는 소의 기름끼마저 닦아주니 이곳이 천국이구나 싶었다. 그가 계속 따라주는 와인에 좀 취한 듯했다. 반 병이 넘어가자 속이 울렁거리고 약간 어질어질했다.


“오빠 나 이제 그만 마셔야 될 것 같아, 속이 울렁거려”, 한 손으로는 배를 문지르고 다른 쪽으로는 거절의 표시로 손을 저으며 그에게 말했다.

“로제나 화이트로 줄까 좀 가벼운 걸 마시면 괜찮아”


그는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기다랗고 폭이 좁은 잔에 청포도로 만들었다는 상큼 달콤한 디저트 와인을 따라왔다. 예의상 한 두 모금 마시고 이번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더 이상은 못 마시겠어. 다른 날 또 마시자”. 하고 고개를 돌리니 홍당무처럼 벌건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차차... 그에게 내 의견을 말할 때는 최대한 애교를 부렸어야 하는데. 아 너무 완곡하게 말했나’ 하며 후회가 밀려들어 왔다.


그러나 물은 이미 엎어진 뒤. 그는 아무 말 없이 마시던 와인잔과 병을 모두 싱크대로 던져 버렸다. “와장창...” 잔과 병이 서로 뒤엉켜 요란하게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깨진 잔의 파편이 여기저기로 튄다. 내 발등 위까지. 흐르는 피를 보자, 그가 원망스럽다. “깰 것까지는 없잖아” 나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깨진 유리들을 치우려고 일어난다. “너 발등에 피난다고!!! ” 성대에 확성기라도 꽂은 듯 쩌렁쩌렁한 그의 목소리가 집안 전체에 울려 퍼졌다. 순간 움츠러든다. “아니 난 그냥 치우려고..” 기어드러 가는 목소리로 말을 하며 발을 옮긴다. 그 순간 그가 내 어깨를 세게 확 밀쳤고, 난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밀친 어깨가 욱신거리고 꼬리뼈는 얼얼했다. 발등에 흐르는 피는 멈출 기미가 없다. 딱히 아프지는 않다. 다만 마음이 지옥일 뿐. 온통 ‘이제 어떡하지’라는 걱정과 불안으로 가슴속이 타 들어간다. 이쯤 되면 실수가 아니라는 건 분명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칠까 나를 안아 소파로 옮기고 발등의 상처를 치료해 주는 그를 보니.. ‘미안하다고 순간 욱해서 그랬다’고 다 큰 남자의 맺힌 눈물을 보니.. ‘헤어져야 하나’ 모질려고 했던 마음이 이네 풀어진다.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아직 연애 초기여서 그래. 사귀다 보면 서로에게 적응도 하고. 내가 아까 그렇게만 말하지 않으면 됐잖아. 애교 넣어서 최대한 부드럽게 말해야 했어. 앞으로 하자. 그렇게 하면 안 그러겠지’


그의 문제는 내 문제가 되었다. ‘내가 잘하면 된다’ 생각하니 모든 게 쉽다. 마음도 편했다. 이제 내 문제인데 그도 도와준다고 했다. 노력한다고. 고마운 일이다. 거기에 그의 안 좋은 가족상황이나 일적인 문제도 그의 폭력을 나 자신에게 변명하는데 한몫 단단히 거든다. 이 문제들만 해결되면 그는 좋아질 것이다. 그의 문제라면 매우 긍정적이 되어가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앞으로는 괜찮아질 거야 반복되며, 그렇게 관계는 지속된다.

———


‘다른 남자들도 다 개새끼’ - 관계의 끝?


녹아버린 아스팔트가 점점 빙판길로 바뀌고 그 길에 벚꽃이 흩날린다. 절이 지나고 해마저도 바뀌었지만 그의 견(犬)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던데 이토록 삶의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니. 다행인 건 아직 지지고 볶고 할 정도로 내 머리털은 남아있다. 단지 티 안나는 머리만 때리는 그. 야비한 지성이 비겁하다. 졸렬한 비겁함 뒤에 숨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야만성에 이따금 두렵다. 내가 맞고 살 줄이야?! 물음표는 스스로에게 의문을 표하는 것이고 느낌표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놀라움과 경의의 표시이다.


누가 맞고 산다 하면 미쳤냐고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맞고 사냐고. 당장 달려가 뜯어말리며 죽기 전에 나오라고 여성학자 정희진의 나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책을 사줬을 거다. 나 자신에게는 그렇게 못하면서. 쩝. 난 여성단체에서 가정폭력 상담사로 일한 적도 있고, 여성학 책을 달달 외우며 이론으로 중무장한 채 무지몽매한 남자들을 계몽하는데 앞장서기도 했었다. 전투적인 페미니스트라며 남자애들이 내 앞에서 쉬쉬하며 말도 못 붙일 때도 있었다. 그런 내가 남자한테 맞고 산다고? 하! 기가 막히고 코까지 막히네. 왜 그러고 사는지... 예전엔 맞고 사는 다른 여자들이 납득이 안 됐다. 그런 여자들과 나를 동일시하니 엄청 답답해져 왔다. 차가운 이성으로 점철된 전두엽이 명령을 내린다. ‘당장 헤어져. 뭐 하는 짓이야’. 감정을 처리하는 소뇌가 훌쩍인다.


‘때려서 그렇지 다른 건 다 괜찮아. 심하게 때리는 것도 아니고 한두 대.. 그것도 가끔씩. 나 곤란할까 봐 안 보이는 데만 때리잖아. 화날 때만 무섭게 굴고 그런 거지. 풀리면 얼마나 잘해주는데. 다른 남자들처럼 바람피우고 그런 것도 아니잖아. 분노조절이 좀 안돼서 그렇지 다른 건 얼마나 잘해줘. 애들도 엄청 부럽다고 그러고. 맨날 사랑한다고 해주고 우리 엄마한테도 잘하고. 그러면 됐어. 세상에 단점 없는 남자 없어. 이 정도면 양반이야. 다른 남자들도 다 그래. 다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그는 정말 잘한다. ‘세상에 없는 착한 남자’ 드라마 주인공은 송중기가 아니라 그가 되었어야 했다. 때리고 나면 한 두 달은 진짜 사랑밖에 난 몰라다. 그래서 다들 맞고 ‘살아지는구나’ 납득이 되었다. 맞을 때 그런 생각을 종종 했다. ‘지금만 참으면 앞으로 한 두 달은 꽃길만 걸을 수 있어. 괜찮아. 곧 지나갈 거야’. 그러면서도 아프다. 앞으로 더 맞을까 봐 무섭다. 평소에 온화한 그의 언사에도 화날 때 벌게진 얼굴이 떠올라 심장이 벌렁거린다. ‘왜 그래? 하며 머리를 쓰다듬을 때도 깜짝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때리는 줄 알고... 휴...


폭력은 남성이 저질렀지만, 떠나지 못하는 사람은 나였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나는 맞기로 선택했다.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 밤만 되면 툴툴거리고 화를 냈다. 저녁때까지는 편했다. 저녁 먹을 때쯤부터 가슴이 쿵쾅거리고 이따 화를 낼까 두려워졌다. 오전에 만나면 저녁때까지 아홉 시간 편안하고 한 시간 힘든 셈이다. 단순한 산수라고 생각했다. 9-1=8이니까. 8시간은 행복한 셈. 결국 내가 한 산수는 틀렸다. 결국 한 시간의 고통은 행복한 여덟 시간마저 집어삼켰다. 제대로 고통의 강도를 넣어서 계산해 보면 1-9=-8 아니 0-9=-9. 그와 있는 모든 시간은 마이너스, 곧 불행이었다.


처음에는 괜찮아지겠지라는 안일한 태도로 그의 폭력성을 무시했다고 생각했다. 혹은 폭력적인 그의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거나, 마주 볼 용기가 없었을 수도 있다. 그걸 인정하면 혼자 남겨질 테니까. 외로운 혼자보다 괴로운 둘을 선택해 버렸는지도. 시간이 흐르면서, 각종 개새끼들과의 관계를 이어갔던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오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랑 사귀면 다르겠지’. ‘내가 그 남자를 변화시킬 수 있을지도 몰라’. 마치 스스로를 마더 테레사로 착각하는 모양이다. 얼마나 큰 착각인지, 그 허무맹랑함이 자신을 지옥으로 끌고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무지에서 깨어나라’라는 니체의 간언처럼, 자신을 모르는 나의 무지부터 깨야 할지도 모르겠다. 왜 '개새끼'들만 좋아라 하며 떠나지도 못하는지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분석은 3편에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제가 ‘개새끼’를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