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희승 Apr 20. 2023

나희도는 집어치워, 우린 인과응보를 원해

드라마 돼지의 왕 리뷰 (feat, 스물하나스물넷)

돼지의 왕 (feat. 스물하나 스물다섯)

돼지의 왕 (feat. 스물하나 스물다섯)

오늘 돼지의 왕을 끝까지 다 보았다. 몇 년 동안 본 드라마 중에서 제일 재미있었다. 왜냐 주류의 흐름을 꺾은 몇 안 되는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필두로 힐링이니 휴먼에세이니 해서 인간의 삶에 대한 철학과 감동을 주는 메시지가 한동안 출판 시장의 주된 기류였다. 여기 상응하여 멋있는 말이 묻어 나오는 ‘아 인생은 그런 거야’ 같은 류의 드라마들이 몇 년 사이 꽤 인기를 끌고 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삶의 위로를 건네는 따뜻한 휴먼 드라마를 표방하여 주인공 박동훈의 입을 통해서 겉으로는 ‘아무 일도 아니야’ 하면서 속으로는 ‘그렇게 살면 안 돼’라는 잔소리를 마구 날렸다. 펜싱선수의 성공과 사랑을 그린 드라마 ‘스물하나스물넷’은 매회 에세이집에나 나올 법한 멋진 이야기를 등장인물 끼리 주고 받는다.


사진출처 vingle

대사에 답변으로 주인공 백이도는 이렇게 답한다.  “네 응원 다 가질게. 그리고 우리 같이 훌륭해지자.” 극 중 대사들은 ‘인간 성공’이라는 드라마의 중심생각을 극명히 보여준다.      


이처럼 휴먼드라마를 ‘표방’하는 드라마들의 기본 철학은 인간성장이다. ‘열심히 살자. 꿈을 가지자. 노력하면 뭐든지 이룰 수 있다.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자’. 끊임없이 자기를 계발(啓發)하는 의지를 가진 신자유주의적 주체를 보여준다. 신자유주의는 아이엠에프 이후 고용의 유연화를 주축으로 도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한국사회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에게 시절이 어떻게 되었던, 경제가 실패했던, 정치가 우상향하든 간에 ‘개인이 실력을 키우면은 반드시 성공한다. 진짜 문제는 너의 게으른 본성에 있다.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이다’.라는 자기 계발 이데올로기를 전파해 왔다. 취직을 못해도 사회를 탓하거나, 시스템을 문제 삼지 않고 너 자신에게로 문제를 돌리라는 것이다.     


이 지치는 경쟁사회에서 드라마에서 조차 끊임없이 노력하면 너도 주인공처럼 성공할 수 있다고. 교훈을 가장한 지배 이데올로기(신자유주의)의 주입에 신물 났을 때쯤, 만난 게 돼지의 왕이다.  

    

드라마 ‘돼지의 왕’은 진짜 교훈을 준다. 돼지의 왕에서 학교 폭력의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응징받는다. 극 중 국어 과목을 맡고 있는 담임 이면서 가해자 중 한 명인(이경영)이 좋아하는 사자성어로 중심생각을 이야기해 보면, 인과응보因果應報다. 착한 일을 한 흥부가 상을 받고, 못된 짓을 한 놀부 놈이 벌을 받는다. 인류가 지구에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권선징악과 더불어 인과응보는 하늘에서 내려준 마땅히 그렇게 되는 인류의 법칙 같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인과응보가 없다. 가해자가 떵떵거리며 잘살고 피해자는 쉬쉬하며 고통 속에서 잘 못 산다. 힘 있는 가해자들은 성폭력이던 권력형 비리이던 경제사범이던지 정당하게 법적으로 처벌받지 않는다. 성폭력 사건을 보면 예전에는 법이 없어서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줄 알았다. 그리하여 1990년 후반 성폭력 특별법을 처음으로 제정하고, 지난 이십몇 년 동안 몇 차례나 계속 수정해왔다. 그러나 신고율은 여전히 낮고 가해자를 처벌하기는 어렵다. 최근 몇 년간 큰 이슈였던 N 번 방 사건을 필두로 사이버 성폭력이 판을 치고 있지만, 디지털 성범죄 구속률은 2%도 되지 않는다(2018년 경찰청 통계).      


가해자는 응당한 처벌받지 않는다. 법적 처벌은 어려우니 사회적으로 망신을 줘서 처벌하는 미투 운동이 등장했다. 너도나도 미투를 한다. 나도 당했다, 내가 피해자가 아니라, 저놈이 가해자라고 고발한다는 미투 운동.      

법이 없어서 처벌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권력, 즉 공권력을 가해자에게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적인 힘’(법)이 가해자에게 닿지 못한다. 역시 옛말 틀릴 게 없나 보다.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 법치체제의 한계가 아니라 현재 한국 사법체제의 불공정성을 보여준다.    

  

돼지의 왕에서도 이게 드러난다. 가해자들은 가해사실을 잊고 행복하게 지내며, 피해자들은 피해당한 트라우마 속에 고통받으며 산다. 이에 피해자인 주인공 황경민은 가해자들에게 법과 사회, 공권력을 대신에서 사적으로 복수를 하고 이것으로 사회 정의를 구현하려고 한다.      


난 주인공인 학교폭력의 피해자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봤다. 그런데 나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는 아니다. 만일 누가 피해자라면 꽤 ‘통쾌했겠다’ 했다. 만일 가해자가 봤다면? 그는 오늘부터 잠을 자지 못할 수도 있다. 복수당할까 봐. 같은 반 학생을 괴롭히고 있다면 그는 친구를 괴롭히려고 잠시 올린 손을 멈추고 혹시 얘도 나중에 나에게 복수하는 거 아냐?라고 할 수도 있다. 가해자들이나 동조자들도 드라마를 봤다면, 나도 나중에 저렇게 될 수 있겠지 라며 자기 자신의 행동을 검열할 것이다. 그래서 학교폭력이 줄어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이 드라마가 주는 교훈이다. 최근 복수극 ‘더 글로리’의 작가 김은숙은 더 글로리의 집필이유가 바로 이 교훈을 주려는 이유라고 밝혔다. 

    

모처럼 고구마가 아닌 동치미 한 사발을 들이킨 것과 같은 시원한 드라마를 봤지만, 여전히 왜 처벌까지 피해자 개인이 해야 하는지 씁쓸함이 남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르시스트 염미정, 해방 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