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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승 May 01. 2023

스킨쉽했다고 섹스까지 하고 싶은 건 아니야.

이럴 거면 가해자 중심주의가 하자

하준과 이슬은 올해 대학 새내기다.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잔디밭에서 과 동기들끼리 자기소개를 할때 서로를 처음 알았다. 하준이의 짐승 몸매와 깊은 동굴 속 저음 목소리에 반한 이슬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얼굴이 붉어졌다. ‘어떻게 너같이 멋있는 남자를 입학식 때 놓쳤지?’ 하는 의아함을 하준에게 밝히는 것으로 이슬은 고백을 대신했다. 하준은 ‘너는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거절했지만, 영화동아리에서 같이 활동하게 된 그들은 점차 친해진다. 학년별 영화제작에 일 학년 감독은 하준, 촬영은 이슬이가 하게 되었다. 이슬이의 미장센 잡는 구도에 매번 감탄하던 하준은 ‘너의 예술성에 반했다’며 고백을 하기 이르렀고, 본격적으로 그들의 관계는 시작되었다.

     

영화는 홍대 놀이터를 배경으로 찍었다.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촬영 후 자주 근처 호프집에서 뭉쳤다. 그날은 이슬이와 배우들 간 화해도 할 겸 술자리를 가졌다. 술자리가 무르익고 배우들은 이슬이에게 ‘사과’ 주라며 사과로 만든 잔에 소주를 부어 화해를 청했다. 평소 술을 잘 마시지 않는 이슬이였지만, 이날만큼은 마시고 풀고 싶었다. 주거나 받거니 하며 마시다가, 막차시간이 되자 한 둘씩 빠지기 시작해 마지막에는 이슬이와 하준만 남았다. 매번 동기들과 어울리다가 단 둘만 있게 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탐하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하준이는 ‘내가 짐승 같아서 좋다고 했지? 오늘 그 짐승이 되어보지’하며 더욱 거칠게 이슬이를 만졌다. 그러는 중에 이슬이는 술기운이 한 번에 올라오는 걸 느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토할 것 같았지만, 꾹 참고 하준에게 말했다. ‘오늘은 이제 그만하고 집에 가자. 나 너무 힘들어’. 그 후 이슬이 눈을 떠보니 낯선 모텔방이었다. 약간 쌀쌀해서 몸을 더듬어 보니, 티셔츠니 브라니 다  올라가 있었고, 청바지는 후크가 풀린 채로 지퍼만 내려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이슬이쪽으로 돌아누운 하준은 하품을 하며 재미있다는 듯 청바지 후크를 한 손으로 만지작 거렸다.      


‘이거 진짜 안 벗겨지더라(웃음)... 너 그 영화 봤지 거기서도 왜 남자가 여자 속옷이 안 벗겨져서 나중에는 울기까지 하잖아. 어제 내가 딱 그 상태였다니까? 진짜야.. ㅎㅎ 거의 막판에는 울 뻔했어. 잘됐다. 이제 깼으니까 네가 벗어봐’  

   

하면서, 이슬이의 손을 청바지 지퍼 쪽으로 데려갔다. ‘어제 내가 필름이 끊긴 상황이었는데도 내 옷을 벗기고 혼자 뭘 한 거지?’ ‘분명 싫다고 한 기억인데 너랑 섹스하고 싶을 거라고 생각한’ 저 당연하고 당당한 태도는 뭐지? 혼란, 당황, 불쾌, 함이 몰아쳤다. 이슬이는 자신의 의사를 무시하고 몸을 마음대로 한 하준에게 화가 났다. 이슬은 ‘스킨십 했다고 섹스하고 싶은 거 아니야’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의아한 듯 놀라는 하준의 모습을 뒤로한 채 모텔방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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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이는 술에 취해 의식이 없는 이슬이를 모텔로 데려가 섹스를 하려 했다. 어떤가? 하준이의 행동은 연인끼리 뭐 그럴 수도 있지 정도로  넘어갈 수 있는 범위인가? 그러기엔 뭔가 찜찜하다고? 두 가지 면에서? 첫째, 이슬이는 스킨십 도중 거절의 의사를 밝혔지만, 무시되었다. 둘째, 술에 취해 의식이 없는 이슬이는 성적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는 심신상실, 항거 불능의 사람이었다. 이런 이슬이를 함부로 벗기고 만졌다. 그리고 성기삽입까지 시도하려 했다. 명백히 성적으로 폭력(의사에 반한) 행동을 한 것이다. 하준과 이슬 사례는 며칠 전 대법원 준강간 무죄판결을 이야기 식으로 풀어써본 것이다. 요는 이렇다.      


대법원이 지난 27일 만취 상태의 여성을 모텔로 끌고 가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법원이 ‘피해자다움’을 유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 ‘가해자 중심적’ 판결을 했다는 비난이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겨레 사설 2023년 4월 28일).     


이슬이가 피해자 답지 않았나? 스킨십을 했기 때문에? 판사님. 남자 손이라도 잡으면 고추 들이대도 받아줘야 하나요? ‘피해자답게’ 이슬이가 행동했다고 해도 문제다. 이미 실제 사건에서 검찰은 이 사건을 불기소했다. 남성의  폭력적 성은 자연스러운 성적 표출이다. 그들 (남성적) 검찰에게는 폭력은 '박력'으로 에로틱하다.      


검찰에서 거절당한 이슬이의 재정신청을 받아들인 법원은 피해자 다움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피해자 중심, 이슬이가 스킨쉽을 한 행동을 중심으로 봤더니 이건 피해가 아니다.라고 법원은 이해하고 하준이에게 무죄판결을 했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피해자의 행동을 중심으로 판결을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피해자가 약자이기 때문에 그 관점에서 이 사건을 바라봐 달라는 뜻이다. 이슬이가 성적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의사를 밝힐 만한 상황이었나. 이 관점에서 사건을 본다면 하준이의 행동은 ‘폭력’ 그 자체이다.      


이럴 거면 그냥 가해자 중심주의 하면 안 될까? 하준이 행동을 중심으로 보면 의식 없는 여자 끌고 가서 자기 맘대로 강간하려고 한 게 핵심이다. 그럼 이 사건은 ‘준강간’, 강간을 목적으로 한 성폭력이 맞다.


판사님. 피해자 중심주의 이해 안되서 그렇게 할꺼면, 반대로 '가해자 중심주의'하세요. 그래야 사건을 바로보고 정당한 판결을 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설명해야 할까? 답답한 마음에 급히 몇 자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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